사회·경제적 사유?.. 기준 애매한 낙태죄 개정안

2020. 11. 24.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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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는 사람 낙태는 살인이다 <11>
이용희 바른교육교수연합 대표가 지난 11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실상 낙태를 전면허용한 정부의 낙태죄 개정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국민일보DB


헌법재판소의 형법상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후 정부는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형법은 국가형벌권의 발동이라는 측면에서 국민의 기본권을 가장 심하게 침해하는 법률이다. 따라서 기본권 제약이 강한 법률일수록 법률 문언은 그 법률의 대상자들이 어디까지가 불법이고 어디까지가 합법인지 예측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 낙태죄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회적 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24주 이내까지 허용하는데 그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정부 개정안에 따르면 낙태행위의 위법성을 조각시키는(위법성이 소멸되는) 사유는 사회적 경제적 사유다. 하지만 정부 개정안을 뚫어지게 바라봐도 그것이 무엇인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통상의 해석방법에 따라, 또 건전한 상식과 통상적 법감정을 가진 사람을 기준으로 했을 경우 꼬물꼬물 움직이는 태아의 생명을 박탈할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사유가 무엇인지 도통 생각나지 않는다.

보건복지부에서 2018년 낙태를 한 주된 이유를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강간·준강간에 의한 임신이 0.9%였으며, 건강 문제가 9.1%였다. 그리고 ‘학업 직장 등 사회생활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가 33.4%였으며, 경제적으로 양육이 힘든 경우(고용 불안정, 소득이 적어서)가 32.9%였다. 자녀 계획(자녀를 원치 않아서, 터울 조절 등)이 31.2%였다. 강간 준강간 건강상 사유를 제외한 90%의 낙태 사유가 사실상 사회적 경제적 사유였다.

그런데도 정부 법안은 ‘사회생활의 지장’ ‘경제적 어려움’ ‘자녀 계획’ 등은 추상적일 뿐 아니라 지극히 주관적인 용어를 사용한다. 즉, 사회적 경제적 사유라는 용어는 형법 용어로, 규범으로 기준화하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뜻이다.

법이 추구하는 것은 구체적 타당성과 함께 법적 안정성이다. 문제는 사회적 경제적 사유가 법적 안정성을 심각하게 침해할 뿐만 아니라 개별적 타당성을 고려하기에도 지나치게 자의적이라는 데 있다.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달라서 보편타당하게 안정적으로 법 적용을 하는 데 불안정성과 모호성이 크다는 말이다.

이러한 불명확성 때문에 ‘이번 낙태죄 개정안이 태아의 생명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낙태를 전면 허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이다.

다른 문제점은 사회적 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와 임신부의 요청에 의한 낙태를 별개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독일 덴마크 핀란드 헝가리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스웨덴 아일랜드 등의 국가에서는 임신 12주까지는 임신부의 요청으로 낙태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임신부의 요청 사유에는 사회적 경제적 사유가 포함된다.

정부의 낙태죄 개정안은 임신부의 요청에 의한 낙태 사유와 사회적 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 사유를 별개로 본다. 그리고 14주까지는 임신부 요청으로 제약 없이 낙태할 수 있도록, 24주까지는 사회적 경제적 사유에 의한 경우 낙태를 허용하자고 한다.

하지만 이 법안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임신부의 요청에 의한 경우와 사회적 경제적 사유를 정말 별개의 사유로 봐야 하는지 회의적이다. 헌재가 사회적 경제적 사유에 의한 경우로 10가지를 예시한 바 있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그 10가지 사유와 임신부의 요청은 같아 보인다.

헌재가 예시한 사유는 첫째, 학업이나 직장생활 등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 우려이고 둘째, 소득이 충분하지 않거나 불안정한 경우다. 셋째, 자녀가 이미 있어서 더 이상의 자녀를 감당할 여력이 되지 않는 경우이고 넷째, 부부 어느 일방이 양육을 위해 휴직하기 어려운 경우다. 다섯째, 상대 남성과 교제를 지속할 생각이 없거나 결혼 계획이 없는 경우, 여섯째, 상대 남성이 명시적으로 육아에 대한 책임을 거부하는 경우, 일곱째, 다른 여성과 혼인 중인 상대 남성과 사이에 아이를 임신한 경우, 여덟째, 혼인 파탄상태에서 배우자의 아이를 임신했음을 알게 된 경우, 아홉째, 아이를 임신한 후 상대 남성과 헤어진 경우, 열째, 결혼하지 않은 미성년자가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경우다.

정부가 내놓은 낙태죄 개정안의 또 다른 문제점은 강간 또는 준강간 등 범죄로 임신된 태아를 낙태하는 경우와 사회적 경제적 사유로 낙태하는 경우를 법적으로 동일하게 본다는 것이다. 이것은 법익균형을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다.

범죄로 임신한 태아를 낙태하는 경우와 소득이 충분하지 않거나 자녀가 있어서 더이상 자녀를 원하지 않아 태아를 낙태하는 경우가 어떻게 동일하단 말인가.

이번 정부의 낙태죄 개정안은 낙태를 전면허용하자는 방향으로 보인다. 하지만 죽여도 될 만한 생명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모든 생명은 태어나기 위해 잉태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 그 과정을 거쳤다. 그것이 창조질서다.

권우현 자유와인권연구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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