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위로가 되는 사진찍기 [정동길 옆 사진관]

권도현 기자 2020. 11. 2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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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하늘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억새밭 사이를 걷고 있다.


4년 동안의 사진기자 생활을 하면서 선배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 ‘사진기자는 계절을 앞서간다’는 말이었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 봄꽃을 찾아나서고, ‘아직 늦여름 아닌가’하는 의심에도 단풍을 렌즈에 담아왔다. 노랗게 핀 봄꽃, 한여름 푸르른 녹음, 가을 억새나 단풍 같은 풍경을 통해 독자들에게 계절의 아름다움을 전달함과 동시에 ‘이곳에 가면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으니 한 번 가보세요’라는 의미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억새밭 사이를 걷고 있다.


하지만 올해는 계절의 풍경을 담는게 조심스러웠다. 몹쓸 전염병으로 인해 모두가 거리두기를 하는 와중에 계절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적절한 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예년과 같은 풍경을 찍은 사진기사 댓글에는 거리두기를 무시한 기사라는 비판도 많았다. 그럼에도 셔터를 눌렀던 건 독자들에게 매일 바이러스가 덮어버린 사진들을 벗어나 계절의 아름다움이 담긴 사진 한 장으로 조금의 위로라도 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하늘공원 억새.


오늘(23일) 갔던 서울 상암동 하늘공원 억새밭 역시 예년 같으면 가을에 꼭 한 번 사진 취재를 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 역시도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지난 9월 26일부터 11월8일까지 44일간 출입이 제한되었다.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하늘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억새밭 사이를 걷고 있다.


“거봐 와보길 잘했지.” 커플로 보이는 두 사람이 억새밭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진 날이었지만, 억새는 시민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 아쉬운 듯 마지막 남아있는 가을을 보여주는 듯 했다. 가을 끝자락 억새는 조금 일찍 갔던 예년과는 달리 키도 부쩍 많이 커있고 보다 풍성했다. ‘앞서가는 계절’ 대신 ‘마지막 남은 가을’을 렌즈에 담았다.

고양이 두 마리가 햇볕에 휴식을 취하고 있다.


공원관계자에게 확산세로 인해 다시 폐쇄 되지는 않을 지 묻자, “아직 확정된 것은 없지만, 확산 추세에 있는 만큼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내년 봄에는 고약한 바이러스가 물러가 마스크를 벗고 마음껏 봄꽃의 향기를 맡을 수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2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하늘공원을 찾은 시민들이 억새밭 사이를 걷고 있다.

권도현 기자 lightro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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