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화구 안에 물이 고이는 물영아리오름

신병철 2020. 11. 2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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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철 기자]

지난 13일 금요일, 금요일에 오름 올라가는 표선에 사는 네 부부 모임인 금오름나그네가 물영아리오름에 올랐다. 금오름나그네는 서귀포시에서 노지탐험대에 뽑혀 지원을 받고 있다. 오늘은 우리의 활동을 취재한다고 해서 취재하기 쉬운 물영아리오름을 오르기로 한 것이다.

취재팀을 오후 3시에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가시리슈퍼 앞에서 2시 40분에 만났다. 네 부부 8명이 모두 참여했다. 물영아리오름 주차장에 3시에 도착했다. 취재팀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의 활동에 대한 인터뷰 형식의 취재가 있었다. 금방 끝났다. 우리는 물영아리오름을 향하여 걷기 시작했다.
 
▲ 물영아리오름 입구에서 보는 물영아리오름은 펑퍼짐해서 둘레가 상당히 넓다.
ⓒ 신병철
물영아리오름 주변 오름은 거의 다 올랐다. 이전에 이 오름을 2번 정도 올랐던 적이 있다. 정상으로 계단이 조성되어 있어서 오름 올라 가는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제쳐두고 있었던 것이다. 미리 조사해 보니 올라가는 길이 다양했다.
물영아리오름은 비고가 128m로 별로 높지 않다. 그러나 둘레가 상당히 넓다. 4km가 넘는단다. 그러니 전체 모습이 펑퍼짐하다. 아래자락에는 초지가 넓게 조성되어 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소나 말을 방목해 왔다고 한다.
 
▲ 물영아리오름 안내도 중잣성길안내지도인데 물영아리오름 탐방을 계획하는데 적합하다.
ⓒ 신병철
입구에서 조금 올라갔더니, 중잣성생태탐방로 안내지도가 나왔다. 중앙 계단길만 기억하는 우리는 새로운 길이 있다는 사실에 신이 났다. 간단한 의논 끝에 오른쪽 중잣성생태탐방로로 갔다가 물영아리오름 정상으로 올라가기로 정했다. 
잣성은 조선시대 제주도 중산간 목초지에 쌓아 만든 목장 경계용 돌담이다. 위치에 따라 하잣성, 중잣성, 상잣성을 나뉜다(안내글 참고). 대체로 중잣성 바로 옆에 길을 만들었다. 기존 등산로와 겹치는 부분도 많았다.
 
▲ 중잣성길 중잣성과 거의 나란히 길이 나 있다.
ⓒ 신병철
18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만들어진 중잣성을 따라 길이 나 있다. 길 위에는 야자매트를 깔아 놓았다. 걷기에 가장 좋은 게 야자매트 깔린 길이다. 요즘도 목장으로 쓰이나 보다. 소똥이 가끔 보인다.
어릴 때 소똥을 주워 모아 말리기도 했다고 누군가 회고한다. 거름으로 소똥이 대단히 소중하였다고 한다. 군데 군데 현위치를 표시하는 안내도가 서 있다. 잣성에 대한 약간 장황한 안내글도 세워놓았다. 유명한 오름이어서 방문객이 많기 때문에 친절한 안내가 필요했을 거라 여긴다.
 
▲ 물영아리오름전망대 중잣성길 중간에 있는 전망대에서 주변 오름들을 잘 살펴볼 수 있다.
ⓒ 신병철
잣성길을 따라 계속 걷는다. 오르막이 나타난다. 조금 올라갔나 싶었는데, 전망대가 보인다. 어? 오름 정상에 올라왔나? 그런데 왼쪽 옆에 저 만치 오름이 보인다. 정상 옆에 조금 높은 곳에 전망대가 있었던 거다.

전망대에는 안내판에서 보이는 오름들을 사진과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동쪽 성산일출봉 쪽의 전망이다. 오름 이름들이 모두 우리에게 낯익다. 우리는 신났다. 모르는 오름 이름이 거의 없다. 대부분 올라가 본 오름이기 때문이다. 

바로 북쪽에 여문영아리오름이 있다. 엄청 고생했던 오름이라서 기억이 생생하다. 오름을 한 일 년 동안 올라가다 보니 각 오름에 대한 기억들이 다양하다. 오름을 하나씩 알아간다는 게 제주 사는 또 하나의 재미인 줄은 제주 오기 전에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 물영아리오름 습지 물영아리오름 분화구는 물이 고여 있어 습지가 되었다.
ⓒ 신병철
전망대를 떠나 거의 평지의 길을 걷는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어야 하는데, 하며 걱정하는 때쯤 왼쪽으로 정상으로 올라가는 계단길이 나타났다. 올라간다. 빨갛게 물든 단풍도 보인다. 분화구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이고, 곧 분화구가 나무에 가려 어렴풋이 보인다. 

"어...형님, 반가워요."
"어...여긴 웬 일이여? 금요일마다 오름 간다더니, 이번엔 여기 왔나 보네."

마스크 쓰고 앞만 보고 가는 이웃 동네 형님을 만났다. 세상에, 여기서 만나다니, 코로나 시대이니 마주쳐 가는 사람들을 쳐다 볼 여유도 없다. 흘깃 본 모습을 알아보고 인삿말을 건넸다. 한 부부 빼고는 모두 아는 사람이었다. 저녁 식사를 함께 하자고 약속하고 헤어진다.

분화구 정상 한 곳에 도달했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계단길과 만났고, 그 길은 물이 고인 습지로 내려가는 길로 연결되었다. 안내판에 3분이면 습지, 즉 물이 고인 분화구에 도달한다고 했다.

아래로 내려간다. 넓직한 분화구가 보인다. 온갖 습지에 대한 해설을 담은 안내판이 즐비하다. 비가 안 온 지 오래 되어 습지는 거의 말랐다. 한 가운데 물이 조금 남아 있다. 물이 고였을 때 장관을 상상만 해 본다. 

물영아리오름은 람사르습지로 선정되어 보호 대상이 되었다. 산 중에 조성된 습지여서 특이한 생태계가 형성되었고, 그래서 예사롭지 않은 생물들이 출현하고 있다. 맹꽁이를 비롯한 동물도 그렇고, 도꼬마리같은 식물도 그렇다. 그래서 사람이 다니는 탐방로는 모두 데크를 깔아 생태계를 보호하고 있다.

기온이 제법 차다. 분화구에는 우리 밖에 없다. 넓직한 테크에서 준비해 온 간식들을 꺼내 먹는다. 이때가 또 좋다. 삶은 계란, 도라지 차, 귤 철이니 귤이 빠질 수는 없다. 간식만 먹는 게 아니다. 삼대가 함께 사는 박형댁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제일 재밋다. 고부간 갈등은 옛날 이야기다. 상호 배려하는 맘이 듣기 좋았다. 
 
▲ 물영아리 둘레길 물영아리오름 아래자락 둘레길은 가을이 한껏 묻어 나는 들길이다.
ⓒ 신병철
분화구 습지에서 다시 분화구 능선으로 올라왔다. 가장 빨리 내려가는 길은 중앙 계단길이다. 그럴 순 없다. 걷는 게 또 하나의 목표인 우리는 올라왔던 길로 내려가 오름을 한 바퀴 도는 길을 선택한다.

소몰이길을 걸으면 푸른목장 초원길이 나타나고, 그 길이 끝나면 또 소몰이길이 나타난다. 두 번째 소몰이길은 가을이 익어가고 있었다. 억새는 완전히 피어 하얗게 변했다. 단풍이 간혹 빨갛고 노랗게 물들어 제주도도 가을이 익어가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겨울이 가까워 와도 가을임을 느낄 수 없는 제주의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의 현장으로 여기가 딱이다 싶다.

둘레길을 따라 출발점으로 돌아간다. 물영아리오름보다 작은 도래오름 가까이 왔다. 도래오름궤가 표시가 되어 있어 찾아 보았으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아래에서 보는 물영아리오름은 더 넓고 거대해 보였다. 

이 오름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 8가지를 수망팔경이라고 한다지만, 자주 올 수 없는 우리는 지금의 경치에 만족한다. 곧 출발점에 도달했다. 중앙계단길의 지루함에 질려 달갑지 않은 오름이었는데, 착각임을 알았다. 분화구 능선을 따라 한바퀴 도는 길이 없어 안타까웠으나, 중잣성길과 이어지는 아래자락 둘레길은 멋졌다.

예상치 못한 푸근함으로 흔쾌해진 우리는 표선에서 가장 맛깔스런 식당으로 가서 남자는 장어구이를, 여자는 갈비살구이를 먹다가 서로 바꾸어 먹고 이야기 호수에 빠지고 말았다. 즐거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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