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 전형' 역차별이라고? 여기 와서 살아보라"
교육 현장이 바뀌고 있다. 정해진 시간표가 아니라 학생이 직접 자기가 들을 과목을 선택해 수업을 듣는다. 칠판에 밑줄 그어진 내용을 그대로 받아쓰는 것이 아니라 서로 토론하고 발표하며 이해의 폭을 넓힌다. 창의력과 자율성이 중요시되는 4차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는 것과 함께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변화다. 학생들은 이런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교사에게 힘든 점은 없을까? <중부저널>은 치열한 대학 입시 경쟁 속 매일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시도 중인 충청북도 지역의 고교 현장을 돌아보며 고등교육의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한다. <편집자말>
[임지윤 기자]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야지, 생각한 것을 가르치면 안 된다."
▲ 단양고등학교 정문. |
ⓒ 임지윤 |
▲ 단양고 학생들이 동아리 활동 중 하나로 ’쿠키 만들기‘를 하고 있다. |
ⓒ 임지윤 |
"선생님은 '자문위원'일 뿐"
지난 11일 단양고등학교에서 만난 이우석(15)군은 99% 학교생활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유는 '자율성'이다. 스피치 강사로서 남들 앞에 서서 말하기 힘들어하는 사람을 돕는 꿈을 가진 그는 "올해 코로나 때문에 많은 활동을 하기는 어려웠지만, 학교 행사부터 수업 참여까지 전반적으로 학생들끼리 주도해나가는 것이 좋았다"고 말했다.
▲ 단양고등학교 1학년 대표이자 교내 라디오 동아리 ‘또바기’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우석(15) 군. |
ⓒ 이우석 |
▲ 지난 11일 단양고 학생회장 장은규(18) 군을 중심으로 학생자치회에서 ‘코로나19 상황에서 체육대회를 어떻게 할 것인지’ 회의하고 있다. |
ⓒ 임지윤 |
동아리 역시 학생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진로가 비슷한 학생들이 모여 동아리 개설 신청을 한 뒤 동아리 설명회에서 홍보를 통해 인원을 모집한다. 이후 동아리 체험학습, 축제 부스 운영, 학년말 동아리 평가회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이 직접 주도해가며 배움과 성장의 피날레를 맞이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이 선택한 활동의 목적과 동기를 찾고 스스로 역할을 인지하게 된다.
▲ 단양고 학생들은 사회 교과목과 연계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거짓말하며 돌아다닌 사람을 처벌해야 하는지‘ 익명의 설문 조사를 했다. |
ⓒ 임지윤 |
단양고에서 학생들로부터 꾸준한 인기로 매년 활동해 온 동아리로는 교대·사범대 지망생의 예비 교사 동아리 'T-WORLD', 생명과학실험 동아리 'ATP', 나눔과 봉사활동 실천 동아리 '몸짓다솜' 등이 있으며, 3D프린터·공학 탐구동아리인 '공블리', 역사탐구 동아리인 '하이스토리', 교내 점심시간 라디오를 진행하는 '또바기' 등 특색 있는 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는 신설 동아리도 있다.
▲ 단양고등학교 교내 점심시간 라디오를 진행하는 ‘또바기’ 프로그램 홍보 포스터. |
ⓒ 임지윤 |
방과 후 수업도 학생들이 주도해 모둠 구성과 학습이 진행된다. 진로 목표가 비슷한 학생들이 모여 탐구 활동 주제를 정하고 지도교사를 직접 섭외해 작품이나 보고서 형식으로 결과물을 완성한다. 올해 1학기에는 '3D프린터와 아두이노를 활용한 ECO 화물선 제작', '정신 질병에 대한 지역사회 복지', '코로나19와 관련한 병리학 연구' 외 36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단양고등학교는 학생 중심 맞춤형 방과 후 프로그램을 운영해 2019년 교육부 주관 '제11회 방과 후 학교'에서 최우수상(교육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보이지 않는 교사들의 '땀방울'
▲ 지난 11일 단양고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도서관에서 방과 후에 ‘독서 골든벨’을 하는 모습. |
ⓒ 임지윤 |
단양고는 오랫동안 자율형 공립고로서 '진로별 교육과정 마스터 인증제' 등 학생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수업 방식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고교 학점제'로 인한 어려움은 인근 학교에 비해 크지 않다. 단양고에서 시행하는 '진로별 교육과정 마스터 인증제'는 교육과정 이수에 관한 '학위' 인증의 개념이다. 진로별 전공 관련 선택과목을 5개 이상 이수하고, 학년별로 독서 활동·학년별 특색활동·프로젝트 연구 활동 등 비교과 활동을 일정 기준 이상 이수한 경우 '사회 계열 교육과정 마스터', '공학 계열 교육과정 마스터' 등 인증을 부여한다. 교사는 학생이 이 과정을 이수할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하며 이러한 활동을 토대로 학생 생활기록부를 작성한다. '진로별 교육과정 마스터 인증'은 단양고등학교의 주요 프로그램들을 체계적으로 통섭해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을 제시한 점에서 변화하는 대입 제도와 고교 환경 변화에 성공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 단양고등학교 이정도 교감. |
ⓒ 임지윤 |
'무지개다리 교육과정 박람회' 또한 학생 주도·학생 중심의 맞춤형 진로 설계 지원 프로그램으로서 여러 학교의 모델이 되고 있다. 진로별 교육과정을 '인문, 사회, 교육, 자연, 공학, 의약, 예체능'의 7개 분야로 분류하고, 선발된 '학생 교육과정 마스터 리더'가 선택과목, 학교 교육과정, 주요 프로그램, 선배들의 입시 결과와 사례 등을 학습한다. 이후 교육과정 박람회에서 분야별로 모인 학생들에게 학습한 내용을 안내하고 질의·응답, 학과별 과목 선택 실습 등을 진행한다. 이 과정 역시 학생이 중심이며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교육과정을 탐색하게 된다.
'농어촌 특별전형'이 역차별?
▲ 단양고등학교 전경. |
ⓒ 임지윤 |
"농어촌 특별전형이 '역차별'로 느껴질 수는 있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여기 와서 살면 되지 않나요? 부모의 사회 경제적 배경이나 주변 환경을 무시한 채로 수시나 농어촌을 아예 배제하자는 것이 차별 아닌가요?"
▲ 단양고등학교는 학생들이 지역 내에서 다양한 문화 예술을 접할 기회가 부족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학교 내에서 작품 전시회를 꾸준히 열고 있다. |
ⓒ 임지윤 |
단양고등학교 최순희(35) 교사는 농어촌이라 해서 절대로 실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아니라고 답했다. 아이들이 가진 잠재력을 단순히 수업 시간에 앉아서 교사가 하라는 대로 수행한 과제 점수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단양고등학교에 근무하며 깜짝 놀란 게 모든 프로그램을 스스로 기획하고 예산 관리까지 하는 등 타지 학생보다 모든 활동에 적극적"이라며 그런 수행 능력을 객관적 점수로 어떻게 환산할 수 있냐고 반문했다.
▲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상위권 대학의 정시 수능 비율 40% 이상 확대를 골자로 하는 대입 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
ⓒ 임지윤 |
단양고등학교는 현재 고교 학점제 정책 연구학교 2년차를 보내고 있다. '모두가 함께하는 교육과정', '모든 학생에게 맞춤형인 교육과정', '모든 프로그램이 유기적인 교육과정' 등 3가지를 연구과제로 설정했다. 이에 따라 수학 과제 탐구, 융합과학탐구 등 새로운 과목 신설하고 신청 인원이 적은 과목 운영을 확대하며 세명대-단양고 협력 교육과정 운영 등의 노력을 통해 학생들의 다양한 수요를 교육과정에서 소화할 수 있는 농어촌 고교의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학생의 성장, 교사의 성장, 학교의 성장을 이루기 위한 단양고등학교의 행복한 걸음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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