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 떠오른다? 요즘은 엄마·아들이 함께 커플 문신하죠"

박건, 윤상언, 최연수 2020. 11. 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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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 <제55화>
여성 타투이스트의 ‘불법과 편견 사이’
지난 2월 타투이스트 A씨의 작업실에 찾아와 '커플 타투'를 받고 간 어머니와 아들. 본인 제공

"어머니랑 아들이 같이 작업실로 찾아오신 적이 있어요. 왼쪽 손목에 올리브 잎 모양 타투를 새기고 가셨죠. 타투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긴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의미 있었던 작업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타투이스트 A씨(26)가 내놓은 대답입니다. 고등학생 때 미대 입시를 준비했던 그는 불현듯 타투에 매력을 느껴 타투이스트(문신사)가 됐습니다.

집단 따돌림 트라우마를 겪는 고객의 팔에 타투이스트 '판타'가 새긴 그림. 본인 제공

"학창 시절 당한 집단 따돌림으로 트라우마를 겪는 분께 거울을 새겨드렸어요. 나쁜 기억에서 해방되길 바라는 의미로요. 타투를 볼 때마다 자신감이 생긴다며 몇 달 뒤 고맙다고 연락이 왔어요."
7년차 타투이스트 ‘판타’(활동명·33)도 입을 열었습니다. 미대를 졸업하고 디자인 회사에 다니던 그는 지인 추천으로 타투의 세계에 발을 들였죠.

몸에 새긴 그림, 타투를 보면 ‘조폭’부터 떠오르신다고요? 타투는 옷이나 헤어스타일처럼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자리 잡는 중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선 의사 면허증이 있는 사람만 시술할 수 있어 대다수 작업은 불법이죠. 예술과 불법 사이, 밀실팀이 여성 타투이스트 3명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여성 타투이스트들이 말하는 불법과 편견, 영상으로 확인해보세요.


달라진 인식…"타투 예쁘다" 칭찬에 힘 얻어


유기견 센터 봉사하다 개에 물려 생긴 흉터를 타투로 덮은 모습. 타투이스트 '플라워'는 "시술 받은 손님의 부모님이 더 좋아하셨다"고 전했다. 본인 제공
"타투를 보고 놀라는 사람보다 그 디자인이 어떤지 평가하는 사람이 더 늘어난 것 같아요. 의사인 저희 아버지도 제 작업물 보면 예쁘다고 칭찬해주세요." - 8년 차 타투이스트 ‘플라워’(활동명·28)
밀실팀이 만난 타투이스트들은 타투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플라워’는 "의사, 간호사, 유치원 교사 등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말했죠.

2018년 시장조사업체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0.9%가 ‘문신(타투)에 대한 인식이 과거보다 관대해졌다’고 답했습니다. 전체 응답자 3명 중 2명(65.2%)은 '문신(타투)을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라고도 했는데요.

하지만 여전히 여성과 타투는 어울리지 않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A씨는 “동료들과 찜질방에 갔다가 ‘계집애 몸에 저게 뭐야’라고 시비를 거는 아저씨를 만난 적 있다”며 “버스에선 팔에 침을 묻히면서 ‘이거 지워지냐’고 묻는 할머니도 있었다”고 털어놨죠. 이들에게 '양아치' 이미지를 덧씌우는 경우도 적지 않죠.

편견을 덜어내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말은 힘이 됩니다. ‘판타’는 “친구 부모님께서 ‘네 SNS 팔로우하는데 작업 잘 보고 있다’고 말씀하시기도 한다”며 “먼저 손을 내밀어주는 어른들을 보면서 인식이 달라진 걸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범죄, 성적 위험에 노출…"안전하게 일하고파”


지난 16일 밀실팀이 타투이스트 '판타'를 그의 작업실에서 인터뷰했다. 백경민
법의 테두리 밖에서 일하는 직업이기에 현실적 어려움도 겪습니다. 특히 비슷한 환경의 남성 타투이스트와 비교하면 신경 쓸 일이 많습니다. A씨는 "우리와 달리 남자 동료들에겐 손님이 오히려 극존칭을 쓰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죠.

밀폐된 공간에서 고객과 둘만 남아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늘 안전이 걱정입니다. 2017년 '강남 왁싱숍 살인사건'이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입니다. 30대 여성 혼자 운영하던 서울 강남의 왁싱 가게에 한 남성이 침입해 강도 살인을 저지른 사건이었죠. ‘판타’는 "그 사건 이후 교류가 뜸했던 지인들도 연락을 많이 했다. 부모님도 딸이 안전한 곳에서 일하고 있는지 걱정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일부 남성의 성(性)적 접근도 이들을 위협합니다. ‘플라워’는 께름칙한 기억을 떠올렸죠. 얼마 전 자신의 소셜 미디어 계정에 요가 하는 모습을 찍어 올렸더니 한 남성이 “성기에 타투를 해줄 수 있겠냐”고 물어본 겁니다. 그는 “타투하는 20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일을 막 시작했던 7년 전과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고 토로했죠. '판타' 역시 "아직도 타투하는 여성을 '쉬운 여자'로 생각하고 접근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온 고객이 척추 수술 흉터를 가족의 탄생화 그림으로 덮은 모습. 타투이스트 '플라워'는 "코로나19 발병 전까진 흉터 커버 타투를 받으러 한국을 찾는 고객이 많았다"고 전했다. 본인 제공

타투 시술이 불법이라는 걸 알고 악용하는 고객도 있습니다. A씨는 3년 전 팔에 시술받은 고객이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환불을 요구한 이야기를 들려줬죠. 환불 뒤에도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협박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법 밖에 있으니 세금과도 거리가 멉니다. 대부분 오피스텔에서 사업자 등록 없이 시술하다 보니 소득 신고는 남의 이야기인데요. 인터뷰가 끝날 때쯤 A씨는 이 말을 덧붙였죠.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직업이니까 항상 불안하죠. 저희도 세금 내고 보호받으면서 일하고 싶어요.”


'의료행위'로 묶인 타투, 새 입법 움직임


이들의 시술이 불법인 이유는 우리 법이 타투를 ‘의료행위’로 보기 때문입니다. 1992년 대법원은 반영구 눈썹화장을 포함한 모든 문신 시술은 의료인만 할 수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작업자의 실수로 시술이 잘못되거나 문신용 침 때문에 질병이 전염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죠. 면허가 없는 사람이 타투를 하면 의료법과 보건범죄단속법에 따라 처벌받습니다.

우리와 같은 이유로 타투가 불법이었던 일본에선 최근 판결이 뒤집혔습니다. 지난 9월 우리나라 대법원에 해당하는 최고재판소는 “문신은 의료와 달리 예술적 기술이 필요하며, 오직 의사만이 수행할 수 있는 행위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국회에선 타투를 합법화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전문 지식과 면허를 갖춘 사람에게 타투 시술을 허용하는 ‘문신사법’이 지난달 28일 발의됐죠. 대표 발의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 세계 수많은 나라에서 타투는 부수적인 의료행위가 아닌 버젓한 전문 직업의 영역으로 들어와 있다. 이미 청년들에게 익숙한 문화와 산업을 규제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죠.


"건강권 보호에 역행" VS "자격증으로 안전 관리"


지난 17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문신사법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백경민
의료계와 타투업계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지난 18일 대한의사협회는 ‘문신사법 제정안에 대한 의견’을 통해 반대 의사를 밝혔죠. 의협은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건강권 보호 의무에 위반되고, 의료 관련 법령 체계를 혼란시키는 내용이기에 폐기돼야 한다”며 “문신은 위해성이 적으므로 비의료인에게 일임해도 괜찮다거나 수많은 종사자의 일자리를 양성화한다는 생각은 안이한 발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김원규 사단법인 한국패션타투협회 수석부회장은 “30년 전 판결로 생계 수단을 불법이라고 처벌하는 곳은 우리나라뿐”이라며 “문신사 자격증을 도입해서 실력 있는 문신사들이 위생적이고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죠.

문신 대신 타투라는 단어가 익숙해진 세상이지만 논란은 여전합니다. 몸을 도화지 삼아 펼치는 예술, 아직 부담스러우신가요?

「 밀실은 '중앙일보 밀레니얼 실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밀도있는 밀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박건·윤상언·최연수 기자 park.kun@joongang.co.kr
영상=이시은·이진영 인턴, 백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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