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도, '호계서원' 이전·복원 계기로 400년 갈등 영남유림 '대통합'

영남취재본부 박동욱 2020. 11. 2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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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유림을 대표하는 서애(西厓) 류성룡(1542~1607년) 선생 가문과 학봉(鶴峰) 김성일(1538~1593년) 선생 가문의 400년간 이어진 묵은 갈등(병호시비)이 호계서원의 '복설'(復設·다시 설치)을 계기로 화해의 가치를 새로 세우게 됐다.

호계서원 복설추진위원회(회장 노진환)는 20일 호계서원 고유제 행사를 개최, 영남유림 간 해묵은 갈등을 완전히 해소하는 대통합의 자리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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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애·학봉 선생 위패 서열 '병호시비' 종지부
이철우 "새시대 여는 경북 정신문화의 상징"

[아시아경제 영남취재본부 박동욱 기자] 영남유림을 대표하는 서애(西厓) 류성룡(1542~1607년) 선생 가문과 학봉(鶴峰) 김성일(1538~1593년) 선생 가문의 400년간 이어진 묵은 갈등(병호시비)이 호계서원의 '복설'(復設·다시 설치)을 계기로 화해의 가치를 새로 세우게 됐다.

호계서원 복설추진위원회(회장 노진환)는 20일 호계서원 고유제 행사를 개최, 영남유림 간 해묵은 갈등을 완전히 해소하는 대통합의 자리를 마련했다. 고유제는 국가나 개인의 집에서 중대한 일을 치르고자 할 때 종묘(宗廟)나 가묘(家廟) 등에 그 사유를 고(告)하는 제사다.

이날 열린 고유제에는 이철우 경북도지사, 임종식 경북도교육감, 윤동춘 경북경찰청장, 권영세 안동시장을 비롯해 각 기관단체장 및 유림대표 등 50여명이 참석해 호계서원의 복설을 함께 기념했다.

이날 초헌관으로 참석한 이철우 도지사는 "이번 호계서원의 복설은 영남유림의 합의에 의해 대통합을 이루어낸 성과"라며 "화합, 존중, 상생의 새 시대를 여는 경북 정신문화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대화합의 상생 메시지가 지역의 미래를 좌우할 통합신공항 건설과 대구·경북행정통합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정신적 구심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호계서원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서원 중 하나로, 1573년 여강서원으로 창건된 후 숙종 2년(1676년) 사액되면서 호계서원으로 명칭을 바꿨다.

이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 철거 후 7년 뒤 강당만 새로 지은 채 남겨졌다가, 안동댐 건설로 1973년 임하댐 아래로 옮겨졌으나, 습기로 서원 건물 훼손이 우려되자 지역유림 등에서 이건과 복원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경북도는 2013년부터 총사업비 65억원을 들여 도산면 서부리로 이건 및 복원을 추진해 지난해 말 안동시 도산면 한국국학진흥원 부지에 복설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된 호계서원은 1만㎡의 부지에 13동의 서원건물로 구성됐다.

복설된 호계서원은 '병호시비'(屛虎是非)라는 400년간 이어진 영남유림 간 갈등에 종지부를 찍는 징표다. '병호시비'란 퇴계선생의 제자 서애 류성룡과 학봉 김성일 선생을 배향하는 과정에서 위차(서열) 문제가 불거지면서 발생한 3차례의 시비를 말한다.

호계서원 내 학봉·서애 선생의 위패 서열을 두고 벌어진 병산서원과 호계서원 사이의 대립으로 400여 년간 갈등을 빚어왔으며, 갈등이 깊어지면서 영남유림을 둘로 갈라놓았다.

이런 해묵은 갈등은 경북도의 중재로 류성룡을 퇴계 위패의 동쪽에, 김성일을 서쪽에, 김성일의 옆에 그의 후학인 이상정을 배향하기로 합의하면서 영남유림 간 오랜 갈등이 비로소 해결됐다.

영남취재본부 박동욱 기자 pdw12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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