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업계 "흡연은 개인 선택, 암 발생 책임없다"..건보공단, 항소 검토(종합)

이선애 2020. 11. 20. 12: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법원 "질병 발생 다른 원인 가능성 배제 못 해"
담배업계 "재판부 판단 존중, 흡연은 개인의 선택"
건보공단 "항소 검토..담배 피해 밝혀나갈 것"

[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서소정 기자] 6년간 이어진 15번의 치열한 공방 끝, 사법부는 담배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대법원의 판례는 뒤집히지 않았고, 담배의 유해성과 그에 따른 담배회사의 책임은 인정되지 않았다.

한숨돌린 담배업계 "재판부 판단 존중"

20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부장판사 홍기찬)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KT&G와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 선고에 대해 패소로 판결한 것과 관련 담배업계는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KT&G는 “재판부의 신중하고 사려 깊은 판단을 존중한다”면서 “이번 판결은 원고가 개별수진자에게 치료비를 지급했다고 해 제조자를 상대로 한 보험금지급액 상당의 손해배상채권이 성립할 수 없음을 분명히했고, 더구나 역학적 상관관계만으로는 개별 흡연 수진자들의 폐암 및 후두암 발병과 흡연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미 개별 흡연소송에서 담배의 제조?판매에 있어 위법행위가 없었다는 대법원의 판단을 받았는바, 이번 판결은 국가기관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국내 최초 소송에서 KT&G의 위법행위가 없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필립모리스와 BAT코리아 역시 재판부 판단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짤막하게 전했다.

만약 이번 소송에서 법원이 건보공단의 손을 들어줄 경우 기존 대법원 판례를 뒤집는 것은 물론 사법부가 공식적으로 담배의 유해성과 그에 따른 담배회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어서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됐다. 앞서 담배업계는 건보공단 승소로 인해 거액의 청구액 배상 및 유사소송 남발이 예상되며, 담배업계 경영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건보공단의 담배 전쟁은 5년 전인 2014년 4월14일 본격 시작됐다. 공단은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 등 국내외 담배회사 3곳에 손해배상 537억여원을 청구했다. 흡연으로 인해 폐암이 발병한 흡연자가 진행했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이 패소 판결을 내리자 나흘 만에 흡연자에게 치료비를 지급한 건보공단이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이다. 건보공단의 소송 요지는 ‘담배로 인해 질병에 걸린 환자들에게 들어간 막대한 건강보험 급여비를 담배회사들이 물어내라’는 것이었다. 건보공단은 흡연과 인과성이 큰 암에 걸린 환자 중 30년 이상 흡연했고, 20년간 하루 한 갑 이상 흡연한 환자들에게 자신들이 2003~2013년 부담한 진료비를 요구했다. 환자는 총 3484명으로, 이렇게 산정된 손해배상액이 537억원이다.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앞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이날 국민건강보험공단은 KT&G와 한국필립모리스, 브리티쉬아메리칸토바코(BAT)코리아 등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흡연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6년간 총 15번에 걸쳐 법적 공방

2014년 9월부터 2018년 5월 재판이 중단되기까지 13번의 변론기일에서 양측은 치열한 공방을 벌였고, 올해 9월 재판이 다시 시작(14차 변론)됐고 지난달 23일 변론이 종결됐다. 소송의 쟁점은 크게 ‘공단이 직접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는가’, ‘흡연과 폐암 또는 후두암 사이의 인과관계’, ‘담배회사의 제조물책임 성립 여부’, ‘담배회사의 불법행위 책임 성립 여부’, ‘손해배상의 범위’ 등 5가지였다. 양측은 평행선만 달릴 뿐, 결론은 나지 않았고 그사이 재판부도 2번이나 바뀌었다.

건보공단은 ‘흡연과 폐암 발생간의 인과관계’는 과학적으로 명백하게 밝혀진 사실이라고 강조했고 담배회사는 담배의 유해성을 인정하면서도 흡연과 폐암의 개별적 인과관계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과 흡연에 따른 암 발생은 개인의 선택 문제이지 담배 제조·판매사의 책임은 없다는 입장을 내세워 맞섰다.

흡연으로 인한 폐해의 책임성에 대해서도 담배회사는 경고문구 등으로 담배의 위험성을 알렸는데도 흡연자들이 자발적으로 담배를 피웠으므로 흡연 폐해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건보공단은 담배 제조 과정에서 첨가물을 통해 위험성을 증가시켰고 흡연자들이 담배의 위험성을 피할 만큼의 경고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직접 손해배상청구권 자격 여부’를 놓고서도 건보공단은 현행법과 판례에 따라 흡연자를 대신해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담배회사는 흡연의 직접적인 손해 주체가 아니기 때문에 이같은 소송을 제기하는 것 자체가 부적법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홍관 한국금연협회운동협의회 회장이 2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국민건강보험공단은 KT&G와 한국필립모리스, 브리티쉬아메리칸토바코(BAT)코리아 등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흡연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했다. /문호남 기자 munonam@

건보공단, 항소 검토

이날 1심 패소 판결과 관련해 건보공단이 항소 뜻을 밝혀 소송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김용익 건보공단 이사장은 “기존 대법원 판결이 반복됐다는 것은 대단히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상황”이라면서 “그동안 담배의 명백한 피해에 대해 법률적인 인정을 받으려는 노력을 했지만 그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고 토로했다. 미국·캐나다 등에서는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되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쉽지 않은 이유에 대해 김 이사장은 “담배 피해를 인정하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이 문제를 조명해나가고 사회적 인식이 더욱 개선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서홍관 한국금연운동협의회회장은 “담배의 위해성은 이미 많은 국가에서 과학적으로 입증됐고 미국을 비롯해 선진국에서는 흡연피해자들을 대신해 주정부가 나서 담배회사들과의 소송을 통해 거액의 배상액 합의를 이끌어냈다”면서 “국내외 전문가들과 관련 기관의 의학적 의견과 과학적 근거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담배회사의 손을 들어주며 국제적인 추세에도 역행하는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원고 패소 확정 판결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앞서 1999년 김모 씨 등 30명은 담배를 피우다 암에 걸렸다며 KT&G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최종 판결까지 15년이 걸렸다. 대법원은 2014년에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 담배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대법원은 “흡연은 개인의 자유의사에 따른 것이고, 개인의 암 발병과 흡연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확인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원고들은 담배회사가 위험성을 충분히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담배는 1600년대에 (한국에) 전래된 무렵부터 건강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점과 효능에 대한 논란이 계속돼 왔다”고 판시했다. 또 2005년 흡연자 피해를 이유로 개인이 소를 제기했고, 2009년 지방자치단체인 경기도가 화재안전기능을 갖추지 않은 담배의 제조물상 결함을 근거로 화재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있지만 원고 패소 판결이 났다.

다만 그간 해외에서 담배소송을 통해 담배회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여럿 나왔으며, 해외에서 이미 내부 문건이 폭로돼 담배관련 소송에서 패소한 전력이 있는 다국적 기업 등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미국에서는 1999년 담배회사들이 중독성을 강화하기 위해 각종 첨가물을 넣거나 소비자에게 충분히 경고하지 않았다며 46개 주 정부가 집단 소송을 제기했고, 2060억달러(약 228조원)의 천문학적인 합의금을 받아냈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