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너 죽을래?

2020. 11. 20.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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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과 관련,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원전 계속 가동' 시나리오 보고서를 작성한 담당 과장을 질책하며 "너 죽을래?"라고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백 전 장관은 강하게 부인했지만 최재형 감사원장은 국회에서 "(당시 장관이 과장을) 강하게 질책했다"며 압력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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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규 경제부 차장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과 관련,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원전 계속 가동’ 시나리오 보고서를 작성한 담당 과장을 질책하며 “너 죽을래?”라고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백 전 장관은 강하게 부인했지만 최재형 감사원장은 국회에서 “(당시 장관이 과장을) 강하게 질책했다”며 압력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너 죽을래?”라는 말을 들었을 때 대응하는 방식은 대략 세 가지다. ①죽기를 각오하고 저항한다. ②가만히 있는다(무언의 항변). ③살기 위해 굴종한다. 불행히도 산업부 공무원들은 ③번을 택했다. ‘알아서’ 보고서를 장관 입맛에 맞게 고치고 감사원 감사가 나오니 심야시간에 사무실에 들어가 관련 문서를 삭제했다. 그들이 ③번을 택한 것은 학습 효과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잘나갔던 산업부 모 국장은 정권 초 석연찮은 이유로 옷을 벗었다. 그가 현 정권 실세에게 원전 정책에 대한 애정 어린 조언을 한 것이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을 모르는 산업부 공무원은 없다. 문재인 정권이 원하는 공무원상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소신 있는 인재보다는 시키는 대로 하는 말 잘 듣는 예스맨이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은 2003년 카드 대란 사태 당시 관치 논란이 일자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의 관은 종(從·따를 종)하기 위한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4년 전 영남권 신공항 후보지로 결정했던 김해신공항 건설을 없던 일로 한 것,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추진하면서 공정거래위원회의 인수·합병(M&A) 심사를 요식행위처럼 여기는 일, 과세 형평을 위해 3년 전 세법 개정안에 담겼던 대주주 주식양도세 확대 백지화 등 일련의 정책에서 공무원들은 엔터키만 누르는 존재로 추락했다. 관가에선 “주무(務)부처가 주무(無)부처가 됐다”는 탄식이 흘러나온다.

민주주의 원칙인 삼권분립처럼 정책도 당정청 사이 힘의 분배가 필요하다. 여당과 정부, 청와대가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논의와 토론을 거쳐 만들어져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온다. 하지만 현 정권에서 정부는 당과 청의 하청업체가 돼버렸다. 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정책은 뒤로 밀리거나 없어진다. 정책에 대한 신뢰도나 연속성은 고려되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에 반기를 들라치면 인사에서 물을 먹는다. 알아서 기는 공무원들만 승진 대열에 오른다. 연공서열 파괴라고 선전하지만 사실은 더 말 잘 듣는 공무원이 우연히 행시 기수가 낮았을 뿐이다. 일부 생각 있는 공무원들은 “정치라는 업종이 없어져야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것 같다”며 술자리에서 한탄을 쏟아내지만 대다수 공무원들은 정치권 ‘줄서기’에 여념이 없다. 기획재정부의 모 관료는 별명이 ‘당(黨)료’다. 당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이 관료는 이번 정권에서 장차관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소문이 돈다.

공무원 정년이 보장된 것은 정권에 상관없이 소신 있게 일을 하라는 취지다. 정권 임기 5년만 보지 말고 10년 뒤 20년 뒤 멀리 내다보는 정책을 만드는 것은 공무원의 의무다. 권력을 쥔 이들이 지금처럼 공무원들을 부릴 생각이면 공무원 정원도 늘릴 필요가 없다. ‘받아쓰기’에 필요한 공무원 수는 지금도 충분하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말이 있다. ‘받아쓰기’가 전공인 공무원들은 5년마다 정권이 교체되면 국정 기조에 맞춰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이 말이 영혼을 팔아먹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 칼럼을 읽고 가슴이 뜨끔한 공무원이 있다면 내 안위를 위해 영혼을 여의도나 광화문 쪽에 팔아먹은 게 아닌가 자문해 볼 일이다.

이성규 경제부 차장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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