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도움 배로 되갚는 '키다리 아저씨' 한기범

박린 2020. 11. 20.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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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재단, 10년째 자선 농구대회
수술비 지원받아 죽을 고비 념겨
매년 4~5명씩 지금껏 50명 도와
코로나 이후 도움 줄어 안타까워
서울 장충동 사단법인 한기범 희망나눔 사무실에서 활짝 웃으며 ‘덕분에 세리머니’를 하는 농구계 ‘키다리 아저씨’ 한기범. 김성룡 기자

“선수 때는 ‘전봇대’, ‘한평생’으로 불렸어요. 중국 선수와 이름, 외모가 닮았다고. 요즘은 ‘키다리 아저씨’요. 처음에 키 관련 별명이라 싫었는데, 뒤에서 묵묵히 돕는다는 뜻이라니, 너무 좋네요.”

1990년대 농구대잔치 시절 기아자동차 장신센터 한기범(56)을 18일 만났다. 서울 장충동 사단법인 한기범 희망나눔 사무실에서다. 그는 2011년부터 10년째 희망 농구 자선대회를 연다. 심장병 어린이에게 수술비 등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올해는 9월19일 경기 의정부시에서 서지석 등 연예인들이 함께한 가운데 열었다. 코로나19 탓에 무관중으로 진행했다. 기업은행, SK 등이 도와준 후원금을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등에 전달했다.

방송을 통해 고백한 대로 한기범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새 삶을 산다. 그는 “1981년 아버지, 2000년 남동생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겁이 나 병원에 갔다. 나도 100% 죽는다고 하더라. 유전병(마르판 증후군)으로 대동맥이 풍선처럼 조금씩 부풀어 오른다”고 설명했다.

기아차 선수 시절, 한기범은 과장 월급을 받았다. 우승하면 보너스 정도가 나왔다. 프로농구 출범 직전인 1996년 11월 은퇴했다. 그 후 이런저런 사업을 했지만 잘 안 풀렸다. 그는 “2008년에 두 번째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수술비가 없었다. 그때 한국심장재단의 도움을 받았다. 지금은 시니어 농구대회에서 8쿼터를 뛸 만큼 건강하다. 먼저 하늘나라로 떠난 가족과 날 도와준 사회에 빚을 졌다. 열 배, 천 배로 갚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수술비가 2000만원 정도였다. 지금은 500만원 정도 든다고 한다. 한기범은 “육체적, 경제적 어려움을 직접 겪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처음 후원을 부탁하러 기업을 찾아가면 사기꾼 취급했다. 오기가 생겼고 진심으로 다가갔다. 아내가 여행사에 다니며 응원해줬다. 매년 4~5명 수술받는다. 지금까지 50명 정도 도왔을 거다. 인생의 기쁨을 피라미드로 치면, 맨 꼭대기가 나눔이었다. 가슴이 뭉클하더라”고 말했다.

1990년 농구대잔치 최우수선수(MVP)였던 한기범은 무릎 수술 후 내리막을 걸었다. 그는 “대표팀에서 서장훈과 함께 신발을 벗고 키를 쟀더니 2m5㎝로 똑같았다. 한물간 선수지만, 그래도 어떤 네티즌이 ‘하킴 올라주원 스타일’로 기억해주더라. 터닝슛과 미들슛, 속공 나가는 패스가 좋았다”며 웃었다. 그는 2000년 모교인 중앙대 농구팀 코치를 맡았지만 1년 만에 그만뒀다. 그는 “지도자는 때론 냉혹해야 하는데, 내 성격이 그렇지 못하다. 인상을 바꾸려고 머리카락도 세 번이나 심었다”고 말했다.

한기범은 최근에 농구 관련 책도 썼고, 유튜브 채널(‘한기범의 뻔한농구’)도 운영한다. 다문화가정 아동에게 농구도 가르친다. 스포테이너(스포츠+엔터테이너) 1세대이기도 하다. 그는 “탤런트 김태희가 나온 시트콤에도 출연했다. 런닝맨에서 이광수씨와 닮은꼴로 나왔다”며 웃었다.

도움의 손길이 줄어드는 게 한기범의 걱정이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정기후원자가 1000명에서 250명으로 줄었다. 후원 ARS 한 통에 3000원이다. 큰 도움이 된다. 우리 재단이 아닌 다른 곳이라도 도와주면 좋겠다. 코로나가 사그라지면 어려운 나라 사람들도 돕고 싶다”고 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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