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길의 영화읽기]빈곤과 가정불화..공감하기엔 너무 극단적

이종길 2020. 11. 19.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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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힐빌리의 노래'는 도입부에서 라디오 방송으로 설교를 들려준다.

"누군가에게 아메리칸 드림은 아직 닿지 못한 희망일 뿐입니다. () 비록 깊은 원망에 사무쳐 불의에 대항하고 하나님을 탓하더라도 하나님과 우리 자신, 우리 존재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마세요. 여러 가정이 해체되는 이 위기의 시기에."

빈곤의 현실이나 당사자들이 처한 상황을 보편적으로 그려내지 못했다.

빈곤은 사회ㆍ경제적 관계에서 나타나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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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영화 '힐빌리의 노래'
네 번 이혼한 약물중독 엄마..방치된 아들의 노력과 성장 일대기
러스트 벨트 가리키나 가난한 현실 보편적으로 담지 못해

넷플릭스 영화 '힐빌리의 노래'는 도입부에서 라디오 방송으로 설교를 들려준다. "누군가에게 아메리칸 드림은 아직 닿지 못한 희망일 뿐입니다. (…) 비록 깊은 원망에 사무쳐 불의에 대항하고 하나님을 탓하더라도 하나님과 우리 자신, 우리 존재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마세요. 여러 가정이 해체되는 이 위기의 시기에…."

자연을 벗삼아 휴가에 나선 J.D 밴스(가브리엘 바쏘) 가족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 같다. 끈끈한 유대감을 보인다. 밴스가 또래 아이에게 얻어맞자 하나같이 쌍심지를 켜고 달려든다. 어머니 베브(에이미 아담스)가 가장 흥분한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어? 죽여 버릴 거야. 내 새끼. 괜찮아?"

성인이 된 밴스는 아메리칸 드림을 목전에 둔다. 이라크에서 해병 생활을 마치고 오하이오주립대학에 입학해 2년 뒤 졸업했다. 예일대학 로스쿨을 다니며 로펌 입사를 준비한다. 그가 탄탄대로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알고 보면 초라한 가정환경과 불우한 유년기에 여전히 발목이 잡혀 있다. 일찍이 양육권을 포기한 아버지. 어머니는 네 번 이혼한 약물 중독자다. 밴스는 불화와 가난을 애써 숨긴다. "그래도 힐빌리 중에서는 귀족에 속했어요."

힐빌리는 미국 중부 산악지대에 사는 농민이나 나무꾼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의 거주지는 러스트 벨트(Rust Belt)로 불린다. 미국 제조업의 호황을 구가했던 중심지였으나 제조업의 쇠락과 함께 불황이 찾아왔다.

론 하워드 감독은 밴스의 일대기로 황무지에서 꿈을 되찾는 과정에 천착한다. 동력은 외할머니 보니(글렌 클로즈)의 갖은 노력. 사실상 방치된 밴스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공부시킨다.

"기회가 중요한 거야. 노력하지 않으면 기회는 오지도 않아. 내가 영원히 살겠니? 나 죽으면 이 가족을 누가 챙기겠어? 나도 네 엄마가 그렇게 될 줄 몰랐단다. 행복하게 잘 살 줄 알았어. 하지만 여기저기 치이더니 결국 포기하더라. 노력조차 그만뒀어. 그래, 나도 잘한 건 없지. 하지만 넌 이제 선택해야 해. 성공하고 싶은지, 아닌지."

안타깝게도 외할머니의 조언은 러스트 벨트로 확장하지 않는다. 영화가 지극히 가족 이야기에 초점을 둔 까닭이다. 빈곤의 현실이나 당사자들이 처한 상황을 보편적으로 그려내지 못했다. 불안정한 수입과 실업에 따른 불리한 상황, 초라한 주거환경 모두 베브의 잘못 탓이다. 그렇게 촉발된 가족관계의 붕괴는 빈곤 문제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빈곤은 사회ㆍ경제적 관계에서 나타나는 현실이다. 사회의 전체적 현상으로서 경제와 공동생활에 시선을 맞춰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빈곤과 배척이 어떻게 발생하고 생산되는지 인식할 수 있다.

'힐빌리의 노래'는 부모에 대한 비난으로 이해될 여지를 너무 크게 남겼다. 부모라면 으레 아이들 때문에 오랫동안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빈곤에 대한 수치심을 아이들에게 주지 않기 위해서다. 반대되는 상황에서 벗어난 것은 특출난 일이지만 많은 이의 공감을 사기는 어렵다.

하워드 감독은 절정에 사랑과 용서를 배치한다. 보편성을 얻으려는 것이다. 밴스가 약물중독에 시달리는 엄마 곁에서 손을 꼭 잡아준다. "엄마, 포기하지 마."

하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특히 빈곤 문제는 가족 차원의 논의만으로 절대 해결될 수 없다. 돈과 기타 물질적 자산뿐 아니라 인정, 성공적인 인간관계 등 자기 삶을 구성하는 데 참여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그렇다. 그 권리는 민주사회의 시민권으로 모든 이에게 보장돼야 한다. 하워드 감독은 그 중요성을 더 설파해야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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