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눈이 펑펑..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해요 [최병성 리포트]
[최병성 기자]
▲ 시멘트 분진이 눈이 온듯 하얗게 돌담을 덮고 있다. |
ⓒ 최병성 |
돌담이 하얗다. 눈이라도 온 것일까? 눈이 아니라 시멘트다. 기술이 얼마나 좋으면 둥근 돌 위에 시멘트를 저토록 얇게 바를 수 있었을까? 사람이 시멘트를 부어 만든 것이라면 시멘트 두께가 차이가 나야 한다. 그러나 너무나 완벽하고 깨끗했다.
▲ 돌담을 두드려보니 시멘트 분진이 떨어져나왔다. |
ⓒ 최병성 |
주인공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바로 곁에 있는 동해 쌍용 시멘트공장이었다. 시멘트공장에서 매일 펑펑 뿜어낸 시멘트 가루가 마을에 오랜 시간 날아와 기막힌 '작품'이 만들어진 것이다.
▲ 시멘트 공장에서 날아온 분진이 기와 지붕 골을 다 메웠다. |
ⓒ 최병성 |
시멘트 분진이 얼마나 많이, 오랜 기간 쌓이면 이런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일까? 모 시멘트공장 부공장장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설탕 공장에 설탕 날리고, 시멘트공장에 시멘트 가루 날리는 게 당연하다'고 당당히 이야기 했다. 시멘트공장이니 시멘트 가루가 날리는 게 과연 당연한 일일까?
쓰레기 시멘트 문제를 파헤친 지 벌써 15년째이다. 외국의 시멘트공장도 대한민국 시멘트공장들처럼 시멘트분진을 펑펑 날리는지 찾아보았다. 어디에도 없었다. 이런 건 오직 대한민국에서만 만날 수 있었다.
오래전 분진이다?
▲ 시멘트 분진이 굴뚝이 아닌 공장 전체에서 뿜어 나오고 있다. 2020년 7월 현재 이런 분진을 만나다니... |
ⓒ 최병성 |
자세히 살펴보니 연기가 아니었다. 시멘트 분진이었다. 시멘트 분진이 연기처럼 쏟아져 나오는 곳은 배출가스를 감시하는 TMS가 달린 굴뚝이 아니었다. 마치 눈이 날리듯 공장 여기저기에서 분진을 펑펑 뿜어내고 있었다. 커다란 시멘트 생산 시설 전체가 시멘트 분진 배출구였다.
▲ 굴뚝이 아니고, 시멘트 생산 시설 전체에서 분진을 뿜어내고 있다. |
ⓒ 최병성 |
2020년은 이상 기후로 54일이라는 최장의 장마기간 동안 많은 비가 왔다. 기상청이 지난 8월 16일 장마가 종료되었다고 발표했으니, 분진 사진을 찍은 7월 4일은 장마 기간 중이었다.
▲ 한 여름에 눈이라도 온듯, 공장 뒷편 산이 시멘트분진으로 하얗게 뒤덮여 있다. |
ⓒ 최병성 |
성신양회만이 아니었다. 바로 곁에 있는 한일시멘트 역시 동일했다. 공장에서 뿜어내는 시멘트분진에 의해 그 큰 시멘트공장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 산봉우리를 통째로 까먹은 광산 너머에 한일시멘트 공장이 시멘트 분진으로 뿌옇게 덮여 있다. |
ⓒ 최병성 |
정부 배출가스 기준 10분의 1의 꼼수
시멘트업계에서는 먼지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적의 방지시설인 백(Bag) 필터를 설치 운영하여 먼지 배출량을 배출허용기준의 1/10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굴뚝에 장착된 자동측정장치로 먼지 배출량을 측정한 후 실시간으로 정부의 관제센터로 전송하여 정부가 투명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 배출가스 기준 1/10로 관리 중이라는 시멘트협회 홍보 자료 |
ⓒ 한국시멘트 협회 |
시멘트 분진이 연기처럼 펑펑 쏟아져 나온 2020년 7월 4일 TMS 기록을 확인해봤다. 먼저 단양군청 환경과와 환경관리공단 담당자에게 7월 4일 TMS 기록 이상 여부를 물었다. '정상'이라는 답을 받았다.
▲ 시멘트분진을 눈처럼 뿜어낸 성신양회와 한일시멘트 TMS 기록을 받아보니 정상이었다. |
ⓒ TMS기록 |
TMS 기록상으로는 배출가스 기준의 1/10로 관리한다는 시멘트공장의 주장이 맞았다. 시멘트업계 해명 자료처럼 TMS는 굴뚝에 달려 있다. 그러나 시멘트 분진은 굴뚝이 아니라 시멘트 생산 시설 전체에서 뿜어낸다. 굴뚝으로 분진이 나가지 않으니 아무리 시멘트 분진이 하얗게 하늘을 덮어도 TMS는 여전히 정부 기준 1/10 이하(정상)였다.
시멘트공장들은 TMS 기록을 근거로 자신들은 공해물질을 내뿜지 않는다고 큰소리 치지만, 주민들은 유해 물질 가득한 시멘트 분진을 마시며 시름시름 병들어 가고 있다.
▲ 환경부 조사 결과 시멘트공장 마을 주민들에게서 진폐증이 발견되었다. |
ⓒ 강원도청 |
광산에 근무한 경험이 없는 일반인에게서 진폐증이 발생한 것은 세계 유래가 없는 일이었다. 공룡 알 화석 같은 시멘트 분진이 세계 유례 없는 기록이듯, 시멘트공장 주변 주민들에게서 진폐증이 발생한 것 역시 세계 시멘트 역사에 기록될 대사건이었다.
장독과 배추 잎에도 시멘트 분진
▲ 장독 뚜껑과 배추 잎과 지붕에 시멘트 분진들로 가득하다.이런 환경에서 과연 사람이 살 수 있는 것일까 |
ⓒ 최병성 |
공장 주변의 배추밭을 살펴보았다. 배추 잎사귀에 시멘트 가루가 가득 고여 있었다. 비닐하우스 속에 들어가 보았다. 비닐하우스 지붕에 시멘트 분진이 가득 달라붙어 있었다. 비닐하우스에 떨어진 시멘트 분진은 아무리 비가와도 떨어지지 않는다. 비닐하우스에 그대로 접착되었기 때문이다.
지붕 위에도 새까만 분진이 달라붙어 있다. 비를 맞아도 씻겨나가지 않는다. 요즘 시멘트공장의 분진은 과거의 분진보다 더 심각하다. 온갖 산업 쓰레기로 시멘트를 만들며 배출한 유해물질 가득한 분진이기 때문이다.
일본 시멘트공장과 한국 시멘트공장
쌍용, 한라, 삼표, 한일시멘트는 일본에서 쓰레기 처리비를 받고 일본 석탄재를 들여오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 시멘트공장 환경은 어떨까? 일본 시멘트공장들도 우리나라와 같을까.
▲ 일본 태평양시멘트 공장 바로 옆 주택. 지붕은 반짝이고, 빨래가 널려 있다. 지붕 너머로 태평양시멘트공장이 보인다. |
ⓒ 최병성 |
놀랍게도 태평양시멘트 공장 정문 앞에 닛산 자동차 전시장이 있었다. 자동차들이 번쩍거린다. 이는 태평양시멘트 주변 마을에 시멘트 분진이 전혀 날리지 않음을 의미한다. 시멘트 분진은 자동차에 접착되기 때문에 분진이 날릴 경우 자동차를 전시할 수 없다.
▲ 일본 태평양시멘트공장 정문 앞에 닛산자동차 전시장이 있다. 전시된 자동차들이 번쩍인다. 닛산 간판 아래 태평양시멘트 이정표가 보인다. |
ⓒ 최병성 |
▲ 일본 태평양시멘트공장 앞과 한국시멘트공장 앞 자동차 차이. 한국은 분진으로 덕지덕지되었다. |
ⓒ 최병성 |
시멘트를 만드는 공장은 똑같은데 어떻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일까?
일본뿐 아니라 외국의 시멘트공장들은 대부분 한 공장에 시멘트를 만드는 소성로가 1~2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5~7개까지 있다. 외국과 비교하면 시멘트공장 몇 개가 한곳에 있는 것과 같다.
일본 태평양시멘트는 시멘트소성로 수가 2개일 뿐만 아니라 생산시설 규모도 작다. 소성로와 예열기가 대한민국 시멘트공장의 크기보다 훨씬 작다.
▲ 일본 태평양시멘트 소성로 2개, 한국은 5개~7개이고, 규모도 크다. 그런데 기술력도 떨어지고, 분진 관리도 하지 않는다. |
ⓒ 최병성 |
지난 2009년 환경부는 일본 시멘트공장은 분진 민원이 없지만, 한국은 분진 민원이 많다며 일본과 한국의 차이를 조사 발표한 바 있다. 10년의 시간이 더 흘렀다. 개선된 것이 없다. 앞서 보았듯이, 말로는 법적 기준 1/10이라고 큰소리치지만, 현실은 개선된 것이 없다.
▲ 일본 태평양시멘트 옆 주택에 햇빛가리개는 반짝이고, 빨래가 널려있다. 그러나 한국시멘트공장의 햇빛가리개는 시멘트분진으로 가득 덮여 있다. |
ⓒ 최병성 |
크게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환경 개선은 제대로 안했는데, 쓰레기 사용량은 늘었다. 시멘트공장들은 국내 최대의 쓰레기 소각장이다. 쓰레기로 시멘트를 만들기 때문이다. 덕분에 시멘트공장 마당엔 전국에서 모아 온 쓰레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쓰레기로 시멘트를 만들어 돈을 벌면서 환경 개선은 등한히 해온 것이다.
고통 받는 주민들
지난 8월 영월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주민의 애절한 절규를 들었다.
▲ 시멘트공장의 악취로 인해 고통을 견디다 못해 영월군청 앞에 1인 시위 중인 주민 |
ⓒ 최병성 |
시멘트공장에서 시멘트 분진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때론 토할 것 같고, 때론 머리가 깨질 것 같은 악취가 온 동네를 휘감는다. 창을 열 수도 없고, 숨쉬기도 힘들다.
몇 해 전 단양에서 쓰레기시멘트 강연이 열렸다. 강연 장소는 단양군청 앞의 모 교회였다. 강의가 끝난 후, 강연 장소를 빌려준 목사님이 내게 다가와 부끄러운 듯 한마디 했다.
"새벽 예배 가려고 문을 열고 집을 나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욕이 확 나옵니다."
시멘트공장에서 밤새 배출한 분진과 악취가 온 동네를 휘감고 있기 때문이다.
▲ 시멘트공장에 가득 쌓여 있는 쓰레기 모습. 쓰레기 유치해 돈을 벌면서 환경 관리는 제대로 안 한다. 지역 주민도 고통받고, 시멘트 안전성도 위태롭다. |
ⓒ 최병성 |
하수슬러지도 시멘트공장에 들어간다. 하수슬러지는 수분이 많다. 예열기에서 하수슬러지가 건조 및 소각되며 발생하는 악취가 주변 마을에 퍼지며 주민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영월군은 시멘트공장 주변 지역을 '악취관리지역'으로 지정하여 특별 관리하고 있을 정도다. 악취관리지역은 '악취와 관련된 민원이 1년 이상 지속되고, 악취가 배출허용 기준을 초과하는 지역'(악취관리법 제6조)을 말한다.
단양과 영월처럼 시멘트공장이 위치한 지역은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자연경관 만끽은커녕 시멘트공장에서 날아오는 시멘트 분진과 악취에 시달리고 있다. 석회석을 채굴하는 광산에서 암반을 발파할 때 나는 굉음과 충격으로 집이 흔들리고 깜짝깜짝 놀라는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이 고통스런 현실을 떠나고 싶어 집을 팔려고 내놓아도, 분진과 악취 가득한 마을에 이사 오려는 사람이 없으니 떠나지도 못하고 억지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오늘도 전국 곳곳에 쑥쑥 올라가는 아파트의 이면에는 시멘트공장의 분진과 소음과 악취로 고통 받고 살아가는 주민들의 눈물이 숨어 있다. 시멘트공장의 환경 개선뿐 아니라 신음하는 시멘트공장 마을 주민들을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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