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왕관의 무게

2020. 11. 19. 04: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전인 올 초 경주로 가족여행을 떠났을 때 일이다.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금관총 금관을 보고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전날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문 대통령의 발음이 평소와 달리 크게 부정확하고 양쪽 볼이 부어 보인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그게 치과 치료 때문이었다고 확인한 것이다.

자서전 '운명'을 보면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하면서 1년 만에 치아 10개를 뽑았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아, 왕관은 저렇게 크고 화려하구나!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전인 올 초 경주로 가족여행을 떠났을 때 일이다.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금관총 금관을 보고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역사책 속 사진으로만 보다 실물로 접하니 어찌나 화려하고 커 보이던지. 왕은 저걸 어떻게 썼을까. 목이 남아났을까. 설마 왕이 금관을 평소 집무 중에 쓰지는 않았겠지. 금관을 보고 왕의 건강을 걱정한 건 왕관을 쓴 왕이 하늘을 날며 검을 휘두르는 SF물 같은 사극을 너무 많이 본 탓이려나. 어찌 됐든 물리적 불편함을 떠나서 왕관은 그 존재만으로도 쓴 자의 고통을 상징한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왕관을 쓴 자는 편히 쉴 날 없나니.’ 셰익스피어도 이렇게 쓰지 않았던가.

시대가 흘러 금관은 사라졌지만 통치자들의 고통은 여전했다. 조선 시대 정조는 정적으로 알려졌던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 어찰에서 일반인은 상상하기 어려운 괴로움을 토로했다. “바빠서 눈코 뜰 새 없으니 괴롭다. 백성이 마음에 걸리고 조정이 염려되어 밤마다 침상을 맴도느라 날마다 늙고 지쳐간다. 닭 우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사흘 밤을 새우고도 나라 걱정을 하느라 또다시 한 밤을 새워야 했다니. 편지 곳곳에 근심과 고통이 뚝뚝 묻어난다.

최고 권력자가 겪는 고통은 칼로도 묘사된다. 기원전 4세기 시칠리아의 지배자(참주)였던 디오니시오스는 자신의 권력과 부를 부러워하는 신하 다모클레스에게 하루 동안 참주 자리를 내줬다. 예기치 못한 행운에 쾌락을 누리던 다모클레스는 그러나 천장에 매달린 칼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말총 한 가닥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칼의 끝이 자신의 머리를 겨누고 있는 게 아닌가. 다모클레스는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아무런 맛을 느끼지 못했다. 디오니시오스는 다모클레스에게 “나는 순간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절박한 심정으로 산다네. 아직도 내가 부러운가?”라고 되물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또다시 치아 수난을 겪었다.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은 지난 10일 기자단 공지를 통해 “대통령께서 최근 치과 치료를 받았다”고 밝혔다. 전날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문 대통령의 발음이 평소와 달리 크게 부정확하고 양쪽 볼이 부어 보인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그게 치과 치료 때문이었다고 확인한 것이다.

문 대통령의 치아 상실 고난은 참여정부 때 시작됐다. 자서전 ‘운명’을 보면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하면서 1년 만에 치아 10개를 뽑았다. 청와대 생활이 힘들고 고달팠는데 안 하던 일을 잘해보려고 의욕적으로 했다가 건강을 크게 해쳤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 후보 때 발음이 새는 이유에 대해 “참여정부 시절 했던 임플란트 10개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 전해 총선을 치르고 난 뒤에도 임플란트를 추가했으니 정치 지도자로 사는 삶이 얼마나 팍팍한지 보여준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지 3년6개월이 지났다. 촛불혁명의 염원을 담아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아직 풀지 못한 숙제가 산더미다. 극적으로 해결되나 싶었던 한반도 비핵화는 교착 상태에 빠졌다. 유례를 찾기 힘든 집값 폭등은 서민의 삶을 옥죄고 있다. ‘국민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이라며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일자리 창출은 막대한 예산에도 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 코로나19가 덮치면서 자영업자들의 한숨이 길어지고 있다. 검찰 개혁도 완수까지는 첩첩산중이다. 대선 후보 시절 “착하다는 게 약하다?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라고 했던 문 대통령은 왕관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을까. 대통령의 시간은 1년6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kitti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