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선도경제 이끌 3세대 재계 리더십을 기대한다

2020. 11. 19.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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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지난 5일 밤 한국을 대표하는 4대 그룹 총수들이 긴 시간 회동을 가졌다. 최태원 SK 회장 주선의 이번 만남은 지난 9월 이후 두 달 만의 일이라서 정례화 성격도 있다. 이들의 잦은 만남은 4차 산업혁명의 융복합 시대에 배터리 문제처럼 협력할 영역이 많아진 때문이기도 하지만 재계 전체로 보면 3세대 리더십의 탄생이라는 관점에서 주목을 끌 만하다. 이들은 1960년대의 1세대 산업화 리더십과 90년대 이후의 2세대 세계화 리더십과는 또 다른 새 진로를 개척하려 할 것이다. 40, 50대 젊은 총수들은 과연 어떤 유형의 리더십을 만들어 갈까.

이들이 맞이할 새 시대는 과거와 질적으로 다를 전망이다. 이제는 탈세계화와 미·중 냉전, 큰 정부가 뉴노멀인 시대로 가고 있다. 지난 30년 성공 신화를 써왔던 세계화 리더십이 더 이상 답이 될 수 없는 이유다. 90년대 본격 활동을 시작한 이건희와 구본무, 정몽구 등은 세계화 흐름을 타고 외환위기를 기회 삼아 전국 1등 수준 기업을 굴지의 글로벌 기업으로 바꿔놓았다. 때마침 세계경제의 성장률을 크게 끌어올렸던 미·중 협력과 중국의 부상, 한·중·일 가치사슬 등이 초고속 비상을 도왔다. 국내 정치 환경도 나쁘지 않았다. ‘차떼기 정치자금 사건’은 정치권력과의 거리두기를 가능하게 했고 노무현정부의 공격적인 자유무역협정(FTA) 전략은 이들이 세계로 뻗어가는 길을 닦아줬다.

약점도 드러냈다. 그 사이 경제단체의 집합적 리더십은 크게 약화됐고 4대 그룹은 각개약진 모드로 전환했다. 98년 전경련의 빅딜(기업 간 사업조정)이 불신과 불화의 단초가 됐다. 전경련 위상은 갈수록 추락했고 정부와의 대화도 겉돌았다. 4대 그룹은 국민경제와 국가 공동체에 대한 책임보다 각자도생의 길을 갔다. 결말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별로 아름답지 않았다. 2016년 말 주요 그룹 총수들은 국정농단 국회 청문회에 불려 나와야 했고 전경련 탈퇴를 다짐했다. 지금 4대 그룹은 전경련을 탈퇴했을 뿐 아니라 다른 경제단체와도 거리를 두고 있다.

2세대 리더십의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3세대 젊은 회장들은 법고창신의 자세로 산업화를 이끈 선대 회장들의 리더십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병철과 정주영, 최종현과 구자경의 재계 리더십은 전경련 중심의 강한 내부 결속,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자랑했다. 정부 정책에 항상 찬성만 한 것도 아니다. 정경유착 비판이 있었지만 62년 이후 30년 넘게 경제개발계획 실행의 민간 파트너였다는 평가도 있다. 그들이 내세웠던 산업보국과 인재경영 그리고 국가대표 기업이라는 정체성은 지금 이 시점에서도 3세대 리더들이 되새길 만한 미래가치이기도 하다.

3세대 리더십은 무엇보다 산업화 시대 구축됐던 경제단체 중심의 집합적 리더십을 오늘에 맞게 리모델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와의 관계도 긴밀하지만 좀 더 쿨(cool)한 대화가 가능한 관계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무역보복에 대처할 때나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할 때 그 단초가 마련됐다고 할 수 있지만 이를 좀 더 공식화하고 제도화하면 좋겠다. 앞으로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경제가 직면할 진퇴양난 위험에 슬기롭고 균형 있게 대처하기 위해서도 재계의 공동 대처 및 정부와의 공조가 불가피하다. 또한 보호무역주의 추세와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 큰 정부의 도래 등 한국경제는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이 시점에 새로운 유형의 재계 리더십은 절실하다. 그 방향은 각개약진보다는 재계 전체의 결속과 연대를, 정부와의 거리두기보다는 긴밀한 협의와 공조를, 그리고 국민적 기대와 지지를 끌어올리는 쪽이어야 한다.

때마침 대한상의와 전경련 등 주요 경제단체가 새 지도부 구성을 검토하고 있다. 부디 인물만 바뀌는 회장단 교체가 아니라 앞으로 30년 디지털 시대의 선도경제를 이끌어갈 3세대 리더십 형성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잠재성장률의 추세적 하락과 불평등의 심화라는 국가적 과제에 대해서도 적극 발언하고 실용적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는 능동적 리더십을 창출하기 바란다. 이는 의지와 의욕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꽃길을 걸으며 박수만 받는 일도 아닐 것이다. 한 기업의 울타리를 넘어 자기가 속한 사회 공동체와 비즈니스 생태계를 함께 발전시키겠다는 꿈이 있어야 한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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