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가 있는 아침] (46) 다 못 쓴 시
2020. 11. 19. 00:12
다 못 쓴 시
유재영 (1948∼)
지상의
벌레 소리
씨앗처럼
여무는
밤
다 못 쓴
나의 시
비워 둔
행간 속을
금 긋고
가는 별똥별
이 가을의
저 은입사(銀入絲)!
- 한국대표명시선100 ‘변성기의 아침’
일물일어(一物一語)의 시인
시의 계절 가을. ‘가을 시’ 연작 두 번째 작품이다. 가을밤의 풍경을 직정적(直情的)으로 그렸다. 이를 시인의 시적 심상(心象)과 연결함으로써 그림 같은 격조 높은 시가 되었다. 은입사란 청동이나 주석 등에 새겨 넣은 은줄이다. 국보 92호로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정병(靑銅銀入絲蒲柳水禽文淨甁)’이 있다. 별똥별의 흐름을 은입사로 본 시인의 눈이 얼마나 섬세하고 정교한가.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하나의 사물을 지적하는 데는 단 하나의 적절한 명사가 있다”는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을 주창했다. 유재영 시인은 ‘금긋고 가는 별똥별’을 지적하는데 ‘가을의 은입사’란 단 하나의 명사를 찾아낸 것이다. 중학교 국정교과서에 시조 ‘둑방길’이 수록되었다.
유자효(시인)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중앙일보에서 직접 확인하세요. 해당 언론사로 이동합니다.
- 평검사가 “윤석열 바꿔라” 전화…오늘 초유의 대면감찰 통보
- 이낙연·이재명 곤혹케한 여론조사, 與전략통 이근형의 '윈지' 작품
- [단독]잠수함 기피하는 해군···정부 대책은 "수당 1000원 인상"
- [권혁주 논설위원이 간다] "성공 前까지 난 사기꾼" 황금넙치 만든 다금바리 양식 아버지
- 사유리는 거짓말 안했다···"비혼출산 된다"는 정부의 현실 외면
- 힐러리도 못깬 '유리천장' 흔든다···'수퍼 마이너' 그녀의 반란
- “조두순 재범 위험률 76%” 지금 안산은 CCTV 설치민원 폭주
- 황우석 16년 만에 대통령상 취소…"열흘 내 상금 3억 반환"
- "작은 언덕인 줄…" 신라왕족 고분 위 주차 SUV 운전자 진술
- "韓, 정자브로커 판칠 수밖에" 국내1호 정자은행 설립자 일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