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고구려비의 새로운 비밀, '이것' 덕분에 밝혀냈다
[여시경 기자]
역사학 발달의 시대가 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물들은 본래의 모습을 잃어간다. 그러나 앞으로 역사학은 오히려 더 발전할지도 모른다. 음? 유물이 상하면 역사학 연구는 더 힘들어지는 것 아닌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과학기술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발달된 과학기술은 역사학 연구에 값진 사료를 안겨주었다. 목판의 흐릿해진 글씨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조각상의 사라진 색을 추정해주고, 종이에 스며든 물감의 원료, 심지어는 붓의 흔적을 보고 화가의 숙련도까지 알려준다. 이뿐만 아니라, 훼손된 유물을 복원하고, 긴 세월이 스며들어 상하기 쉬운 유물들을 오래 보존할 수 있게 해준다.
시간이 더 흐르면서, 지금 우리가 보지 못하는 유물들의 사라진 역사를 미래에는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치 우리가 글씨가 흐려져 과거에는 알지 못했던 글자를, 오늘날에 와서는 읽을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과학기술이 역사를 발굴해준 것일까. 사학 연구에는 여러 과학기술이 이용되고 있지만, RTI, 즉 디지털 탁본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디지털 탁본은 무엇인가
디지털 탁본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먼저 탁본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알아볼 필요가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어렸을 적 동전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로 마구마구 색칠한 적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동전의 면이 종이에 선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탁본도 이와 비슷한 원리이다. 탁본은 간단하게 말해 종이를 비석 등에 놓고 먹을 두드려 모양을 그대로 본뜨는 것이다. 모든 연구물이 탁본에 최적화된 상태라면 매우 좋겠지만, 아쉽게도 현실을 그렇지 않다.
RTI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는 논문(신소연, 김영민(2013). RTI 촬영을 통한 감산사 미륵보살상과 아미타불상 명문 검토.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RTI(Reflection Transformation Imaging)는 조명의 각도에 따라 사물의 표면 반사율이 달라지는 원리를 이용한 결과물로, 변화되는 선명도를 이용한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반사율 변환 이미지 혹은 디지털 탁본이라고도 이야기하며, 눈으로 잘 보이지 않는 유물의 음각된 명문을 읽기 위해 이용된다. 특수한 소프트웨어 기술로, 가상의 3차원적인 빛과 그림자의 변화를 이용하여 상세히 판독할 수 있다고 소개되고 있다. 쉽게 말해, RTI 촬영은 좋은 장비와 기술, 빛의 각도를 이용하여 최대한 글자를 선명하게 찍어내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촬영 과정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이 과정 역시 신소영, 김영민의 「RTI 촬영을 통한 감산사 미륵보살상과 아미타불상 명문 검토」 논문을 주로 참고했다. 큰 비석의 경우, 촬영 시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 촬영을 진행한다. 촬영 부분과 카메라를 정확히 수평, 수직관계로 만들어 유지한다.
이 과정에서 특수 장비들을 사용하는데, 이미지 왜곡 현상을 줄이고 화면 중앙부와 주변부의 초점면을 일치시켜 더 선명한 이미지를 얻기 위함이다. 조명의 위치를 바꿔가며 여러 장의 사진을 합성하여 RTI를 만들어 낸다.
이후 촬영한 이미지는 작업용 소프트웨어를 활용하여 렌즈에 의한 왜곡, 선명도, 밝기 등을 수정하는 작업을 거친다. RTI 촬영은 유물에 직접 손을 대지 않고 명문을 읽을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그렇기에 연구 과정에서 유물이 파괴될 가능성이 낮다. 그리하여 유물을 분석하는 데 이용되는 분석 기술이다.
디지털 탁본은 유물의 표면을 촬영한 후, 선명한 이미지로 만드는 것이다. 일반 탁본보다 훨씬 더 선명한 화질로 표면을 관찰할 수 있다. 비문을 최대한 확대하여 촬영하기 때문에 글자 판독에 용이하다. 이미지를 자유자재로 확대, 축소할 수 있다는 점도 있다. 일반 탁본보다 판독에 제약이 적기 때문에 이전보다 더 심도 깊은 연구가 가능해졌다. 최근에는 디지털 탁본을 이용하여 이미 판독을 마쳤던 비문들도 다시 연구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들을 얻어내어 사학 연구 확대에 성과를 내기도 했다.
최루백은 고려 중기에 살았던 문인 관료였다. 그의 묘비석은 점판암으로 만들어졌는데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부식되었다. 이 때문에 그의 묘지명에 새겨져 있던 한자들을 읽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종이가 아닌 돌과 같은 고르지 못한 배경에 각인된 한자는 육안으로 읽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
▲ 최루백의 묘비석 육안으로 확인하며 연구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 전시에 전시되었다. (본인 직접촬영) |
ⓒ 여시경 |
또 그 외 여러 글자를 새롭게 읽어낼 수 있었는데, 그 결과 충주고구려비가 장수왕 때가 아닌 광개토대왕 시절에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장수왕 때 제작되었을 것이라는 이전의 연구를 뒤집는 결과인 것이다. 이 판독대로라면, 충주고구려비는 장수왕이 아닌 광개토대왕이 직접 세운 유일한 비석이 되는 것이고, 건립 시기가 이전에 추정했던 시기보다 더 앞당겨지게 된다. RTI 촬영으로 인해 우리가 알고 있었던 역사가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알게 된 것이다.
사실 충주 고구려비와 같은 경우, 정답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비석의 마모 정도가 심해 아무리 선명하게 사진을 촬영해낸다 해도 여전히 판독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RTI 촬영 덕분에 풍족한 토론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을 이용해 이전에 연구했던 것도 재연구하면서, 사학의 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과학기술이 역사 학문의 풍족함을 이끌어 준 것이다. 과학기술은 제한적인 숫자의 유물로 연구해야 하는 사학에서 없어서는 안될 산소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디지털 탁본(RTI)이 사학 연구에서 의미하는 것
디지털 탁본(RTI)은 기술의 발전이 돋보이는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RTI 촬영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카메라, 조명, 렌즈가 필요하다. 장비들에 의해 유물이 훼손되는 등 미연의 사고 방지와 촬영의 편리함을 위해, 무선으로 작동이 가능한 장비들이 많아야 한다. 또한, 마지막 단계의 작업인 이미지 수정 작업에서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촬영한 여러 장의 사진을 합성할 수 있는 기술도 필요하다.
정리하자면, RTI는 고급 장비의 개발과 상용화가 이루어져 있고, 소프트웨어의 개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진행할 고급인력의 확충이 이루어져 있다는 것의 증명인 것이다. 덧붙이자면, 장비를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안전성, 기능, 상업성까지 모두 고려해야 한다. 고급 장비의 상용화는 보편적으로 보급이 가능한 기술이 개발되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디지털 탁본은 과학기술이 매우 발달함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발전된 과학기술이, 사학 연구에 풍성함을 만들어 준다는 사실이기도 하다.
현대에는 RTI 외에도 자외선, 적외선 등 여러 과학기술을 이용한 사학 연구가 진행 되고 있다. 이 기사에서는 RTI를 중점적으로 다루었지만, 다른 과학기술들도 사학 연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과학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역사학에는 활발한 연구를 펼칠 수 있는 행운이 찾아온 것이다. 앞으로 더 대단한 과학기술이 등장할 것이고, 이에 따른 사학 학문의 발전 가능성이 매우 기대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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