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없는 흰색 속옷 안입으면 벌점 주는 서울 어느 여고

최은경 2020. 11. 15. 08: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동현 서울시의원, 행정감사에서 지적
"인권침해, 학생 통제 악용 소지 있어"
여학교 벌점 항목 세세, 성차별 비판도
"교사·학생 합의하면 교육적 효과 있어"
교육청 "폐지보다 개선하며 방안 찾겠다"


‘양날의 검’ 학생 생활평점제 논란

서울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연합뉴스

▶망사, 투명, 비닐소재, 반짝거리는 천 등 허용되지 않은 재질의 가방 ▶검정색·흰색·회색·남색·밤색·베이지색·카키색이 아니거나 명도와 채도가 높은 원색이나 무늬가 있는 가방 ▶학교 지정 양말 또는 흰색 양말이 아닌 것 ▶살구색·검정색이 아닌 스타킹 ▶무릎까지만 오는 반 스타킹 ▶테이프나 풀로 쌍꺼풀을 만드는 행위 등.

서울 한 여고에서 실시하는 생활평점제 벌점 항목의 일부다. 각각 벌점 1점에 해당하는데 누적 벌점에 따라 교내봉사, 관찰 대상자로 분류, 학생·학부모 서약서, 사회봉사 등의 조치가 뒤따른다.

또 다른 여고는 ‘학생 신분에 어긋난 겉옷·스타킹·양말 착용(1점)’ ‘학생용이 아닌 숙녀화 착용(1점)’ ‘현란한 색상 등 성인용 가방인 경우(1점)’ 등에 벌점을 매긴다. 한 남녀공학 고교는 성인 레깅스, 후드티 착용을 금지하고 외투는 단색(무채색이면 2색까지 허용)만 허용한다.

생활평점제는 학생 체벌을 없애기 위한 대안으로 2009년 일선 학교들이 도입한 제도다. 이 제도는 체벌 대신 상점·벌점을 줘 학생을 계도하기 위한 것이지만 인권침해와 학생 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양날의 검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동현 서울시의원이 지난 10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질의하고 있다. [사진 이동현 의원실]


이동현 서울시의원(성동구·교육위원회 소속)이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생활평점제 운영 현황에 따르면 서울 지역 711개 중·고등학교 가운데 553개(77.8%)가 생활평점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 의원은 지난 10일 열린 제298회 정례회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행정사무감사에서 “서울 다수 학교에서 운영하는 생활평점제에 인권침해 우려가 담긴 벌점 항목이 상당하다”며 “학생 생활지도에 있어 다른 대체수단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과 중 휴대폰 소지·사용이 벌점 항목에 포함된 학교는 물론이고 가방·운동화·외투 형태까지 벌점으로 규제하는 학교들이 있다”며 “또 남중·남고와 비교해 여중·여고에서 필요 이상으로 용의·복장과 관련한 벌점 부과 항목을 세세하게 명시해 성차별적 요소도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8월 최선 서울시의원(강북구·기획경제위원회 소속) 역시 상당수 학교가 벌점에 치우친 생활평점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많은 학교에서 상점보다 벌점 부과 세부항목이 많으며 벌점 점수가 더 높아 불균형 문제가 발생한다는 의견이었다.

최 의원은 “이성 간 교내에서 손잡고 다니는 행위, 교외 이성 간 신체 접촉 등 교육적 효과와 연계성이 미미한 내용이 벌점 기준으로 제시됐으며 여학교의 경우 ‘치마는 무릎이 살짝 보이는 길이까지 착용 가능’, ‘속옷은 무늬 없는 흰색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입을 경우 벌점 부여’ 등 세밀한 영역까지 위반사항에 명시했다”고 말했다.

[사진 pixabay]


그는 “생활평점제 상점·벌점 부과 과정에서 교사·학교가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고 기준 자체가 모호하며 무엇보다 실질적 선도 효과가 미비하다”며 “결국 학생을 편리하게 통제하기 위한 행정편의주의적 방식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 의원은 학생생활평점제와 학생자치법정을 동시에 운영해 학생이 이의제기 신청을 할 수 있게 한 학교, 상점·벌점 부과 점수와 항목 비율을 1대 1로 설정한 학교 등을 예로 들며 “교사의 통제 권한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통제에 중점을 둔 생활평점제를 지속하는 것은 서울시교육청이 다른 대안에 대해 고려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경기도·경남도·전북도 교육청은 생활평점제를 폐지하거나 대안적 지침을 마련했다면서 서울시교육청 역시 적극적으로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관해 한 교육계 인사는 “과도하게 학생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유용해서는 안 되지만 학생·교사가 공정한 틀 안에서 합의해 운영한다면 교육적 효과가 충분히 있다고 본다”며 “체벌 금지 등으로 교사들의 손발이 다 묶인 상황에서 학생이 규율을 어겼을 때 훈육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인데 이마저 없어지면 훈육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생활평점제가 부정적으로 부각되는 이유는 벌점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이라며 “학생 지도에 필요한 최소한도를 벌점으로 지정하고 재개정할 때는 학생·학부모·교사의 의견을 수렴하라고 일선 학교에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생활규정 재개정지원단을 두고 각 학교에 컨설팅을 지원한다”며 “무작정 없애기보다 안 좋은 점을 개선하면서 방안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