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고추 꼴 날까봐 40억도 퇴짜..한국콩에 30년 바친 교수
"세계 매출액 1% 준다"는 다국적 기업 제안 거절
연구비용 2/3 이상을 홍콩에서 지원..인건비도 걱정
"미국산 콩이 우리 식탁 점령해도 관심은 떨어져"
지난 11일 경남 진주시의 한 콩밭 옆에 비닐하우스 두 채가 덩그러니 서 있다. 한국 야생·토종 콩 보존에 30년을 바친 정규화(68) 전남대학교 교수의 낡고 허름한 연구실이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마른 콩 줄기와 씨앗이 담긴 망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충남 천안, 전북 익산, 전남 여수를 비롯한 전국 곳곳의 지명과 위도·경도 등 GPS 위치를 적은 쪽지도 담겨 있었다. 정 교수가 올해 전국을 떠돌며 찾아낸 야생·토종 콩 종자로 약 120점을 모았다.
“한국 콩 연구에 외국이 더 관심”
이날 중앙일보와 만난 정 교수는 “한국 콩 보존과 연구에 외국이 더 관심이 많으니 아이로니컬하죠”라는 말을 꺼냈다. 그는 “바람을 타고 날아간 콩 씨앗이 터지면 한 걸음씩 번식 지역을 넓혀가는 셈이란 말이 있다. 수천년 이어져 왔으니 콩이 얼마나 번식하고 진화해 왔겠는가”라며 “그 걸음을 하나씩 쫓아서 전국 곳곳을 돌며 모아낸 종자들이다”고 했다. 외딴 섬, 깊은 산 곳곳까지 안 가본 곳이 없다. 이렇게 모은 콩 종자 숫자만 30년 동안 약 7000점이다.
콩이 종자 상태로 보관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5년이다. 주기적으로 밭에 심어서 증식을 해줘야 한다.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고 자연 그대로 키워야 하기 때문에 고된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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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기업 제안 거부하면서 지킨 종자
2012년 그에게 한 통의 메일이 날아왔다. 세계 굴지의 종자 관련 다국적기업으로 정 교수가 가진 아시아·한국 콩 종자를 넘기면 해당 종자에서 나온 전 세계 매출액의 1%를 주기적으로 주겠다는 제안이었다.
정 교수는 “40억원 정도 가치가 있는 제안이었다”며 “이런저런 절차가 복잡하고 혹시 돈을 못 받을까 걱정되면 한 번에 일시금으로 20억원 정도를 받으면 된다는 말도 있었다”고 했다.
그가 콩을 키우고 있는 3600㎡(1100평) 크기의 밭은 제자들이 십시일반 모아서 스승의 돈 걱정을 덜어주려고 사준 땅이다. 특별한 정부 지원 없이 때로는 사비를 들여 수십 년을 버텨온 정 교수에게 솔깃할 법한 제안이었지만, 거절했다. 정 교수는 “나는 장사꾼이 아니라 교육자”라며 “다국적 기업이라면 충분히 노릴만한 건수지만, 종자를 넘기면 어떤 파장이 돌아올지 가늠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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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비용 3분의 2 이상이 홍콩 발”
한국인이 사랑하는 청양고추가 사실은 외국계 회사 소유 품종이란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콩은 ‘주곡’(主穀)이기 때문에 양념인 고추보다 식량 주권과 더욱 직결된다. 다양한 콩 종자를 가지고 있어야 미래에 혹시 모를 재해와 질병에 대처하거나 대량 생산이 가능한 유전자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정 교수는 “콩의 원산지는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인데 미국 등 유전자 조작 수입 콩이 우리 식탁을 점령한 와중에도 정부나 국민적 관심은 동떨어진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동연구 조건으로 홍콩 중문대학으로부터 연구비 6000만원, 한국 야생·토종 콩을 증식하는 조건으로 농촌진흥청으로부터 2000만원을 받아 매년 콩밭을 일군다. 정 교수는 “홍콩과 함께하는 한국 콩 연구과제 비중이 3분의 2 이상인데 미래에 이 종자들이 우리 것이라 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정 교수는 사비를 들여 연구를 계속해왔지만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했다. 지난해 정년퇴직해 정교수 자리를 내놓고 석좌교수로 물러난 데 이어 나이가 들어 콩밭 매는 일도 힘에 부친다.
정 교수는 “전남대 여수캠퍼스에 있는 콩 종자 보관실 직원도 올해부터 인건비를 못줘 그만두게 했는데 관리를 못한 사이 온도·습도 유지장치가 고장나 종자가 많이 죽었다”며 “학자들도 기피하고 돈도 안 되는 일인데 누가 이 일에 또 나설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진주=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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