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도 그에겐 졌다, 文 옆 3년째 지키는 '이·신·조' 3인방
이정도 총무비서관, 신동호 연설비서관, 조용우 국정기록비서관.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 번도 ‘명함’이 바뀌지 않은 3명의 참모다. 청와대 근무 경험은 정계 진출과 복귀를 노리는 이들에겐 스펙 쌓기, 관료들에겐 승진의 기회다. 선거 때마다 청와대 참모들이 물갈이되는 이유다. 그러나 이들은 지난 3년 반 째 같은 자리다. 남은 1년 반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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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의 유일한 대통령 직속 비서관들
이들은 '비서관'이지만 위에 '수석비서관'이 없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을 제외하면 문 대통령의 직접 지휘를 받는다. 탁현민 의전비서관, 신지연 제1부속비서관, 최상영 제2부속비서관, 오종식 기획비서관, 이진석 국정상황실장 등이 유사한 형태로 일한다.
정치권엔 ‘권력은 거리에 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이들이 바로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직속라인 비서관들은 중간에 사표를 썼던 탁 비서관을 제외하면 모두 원년 멤버들이다. 시작을 행정관으로 했느냐, 비서관으로 했느냐 정도가 차이다. 탁 비서관도 공백 기간 동안 행사 기획 자문위원을 맡아 청와대와 끈을 잇고 있었다. 이중에서도 ‘이ㆍ신ㆍ조’ 3인방에게 문 대통령이 단 한 번도 다른 역할을 주지 않고 계속 신뢰를 보내는 이유는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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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양균 라인? 물었더니 돌아온 ‘판표 형님’
이정도 총무비서관은 ‘수석급 비서관’으로 불린다. ‘곳간 열쇠’를 쥔 총무비서관은 인사위원회 멤버이기도 하다. 그간 민감한 돈과 인사를 다루는 자리라 정권 말기 수사 대상에 오르는 일이 잦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상문 전 비서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김백준 전 비서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재만 전 비서관 등이 그런 경우였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일면식도 없는 이 비서관을 발탁해 1부속실의 업무까지 상당 부분 넘겼다. 임명 초기 “변양균 라인 아니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의 비서관을 지냈고, 변 전 장관이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정책실장일 때 행정관으로 일했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이 비서관은 “변 전 장관에게 ‘저 군대 간 사람으로 생각하시라’고 했다”고 답하곤 했다. 그러면서 “가깝기로 따지면 ‘판표 형님’이랑 더 가깝다”고 했다.
‘판표 형님’은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대표의 개명 전 이름이다. 홍 전 대표의 고향은 경남 창녕이고, 이 비서관의 고향은 경남 합천이다. 두 사람은 강변의 주인 없는 땅에서 농사를 짓던 가난한 집에서 자랐다고 한다. 이 비서관은 “같은 생활권이라 잘 알았는데, 공부를 제일 잘했던 판표 형님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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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 절벽’에 막힌 친문 실세
그에 대한 문 대통령의 신뢰가 깊은 건 원칙론 때문이라고 한다. 대표적 사례가 ‘이니 시계’다. 문 대통령의 사인이 담긴 시계는 큰 인기를 끌었다. 여권 인사들은 그 시계를 얻기 위해 줄을 섰지만, 이 비서관은 시리얼 번호까지 관리했다. 당시 여권 인사들은 “집권 했는데 시계 하나 못 준다고 하니 황당하다”거나 “‘이정도 절벽’ ”이라고 하소연했다.
2018년 9월, 이 비서관은 심재철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이 청와대 직원들이 회의 수당을 부당하게 지급받고 있다고 폭로하자 직접 카메라 앞에 섰다.
그가 추위에 떨던 직원에게 허가했던 5500원짜리 목욕탕 비용, 의무경찰을 격려하기 위해 보낸 치킨과 피자 비용 등의 실물 자료를 제시하며 반박하자 의혹은 곧 사그라들었다.
원칙은 ‘실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 여권 인사는 “정부 초기 김경수 당시 의원이 노무현 정부의 기록 시스템인 ‘이지원’을 복원하자고 주장했었다”며 “그 자리에서 이 비서관이 ‘이지원을 기초로 새 시스템을 개발했는데,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자 문 대통령이 이 비서관의 의견에 따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회의를 마친 뒤 김 의원이 이 비서관을 불편하게 쳐다봤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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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에서 정치인의 언어로
신동호 연설비서관은 2012년 대선 때 문 대통령과 연을 맺었다. 시인 출신으로 학생운동과 통일ㆍ문화 운동을 했다. 시적이고 강렬한 동시에 간결한 그의 언어는 변호사 특유의 사무적 만연체를 쓰던 문 대통령의 말을 바꿨다.
그가 존재감을 드러낸 건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의 전당대회다.
문 대통령은 당시 박지원 의원(현 국정원장)과 박빙의 승부를 벌였다. 판세는 마지막 유세였던 2월 8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갈렸다. 문 대통령은 연설 9분 동안 12번의 질문을 던졌다. 지금도 회자되는 ‘○○할 사람이 누구입니까’라는 연설이다.
“다시는… 다시는, 1∼2%가 모자라 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과 대적할 수 있는 강한 당 대표를 원합니다. 누가 그 사람입니까.”
작은 호응으로 시작됐던 “문재인”이라는 청중의 대답은 12번째를 향하며 거대한 함성으로 변했다.
문 대통령은 야당 대표가 된 뒤 신 비서관을 대표실 부실장에 임명해 메시지를 전담시켰다. ‘노무현의 필사’ 윤태영에 이은 ‘문재인의 필사’ 신동호는 그렇게 자리잡았다. 신 비서관의 사무실은 제1부속비서관실과 함께 문 대통령 집무실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
주변에선 신 비서관이 2019년 무렵부터 “힘이 든다”는 말을 종종 했다고 한다. 당시 한 행사를 앞두고는 새벽에 출근해 한숨을 쉬며 “내가 대통령의 생각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고 말한 적도 있다. 전날 밤새 원고 초안을 작성해 보고했지만 문 대통령이 이견을 보인 뒤였다. 문 대통령의 연설문은 여전히 그의 몫이다. 한 여권 인사는 “대통령 생각을 정확히 담을 사람은 신 비서관뿐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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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꽃밭’과 ‘빈 똥밭’
좀처럼 전면에 나서는 일이 없던 신 비서관은 지난 6월 11일 페이스북에 시(詩) 한 편을 올렸다.
‘빈 꽃밭-기형도의 빈집을 그리며’란 제목의 시에서 그는 “어느 날 아이가 꽃을 꺾자 일군의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아이는 더 많은 꽃을 꺾었고 급기야 자기 마음속 꽃을 꺾어버리고 말았다”고 했다. 이어 “꽃을 피워야 할 당신이 꽃을 꺾고 나는 운다. 헛된 공부여 잘 가거라”고 읊었다..
전날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문 대통령의 6ㆍ10민주항쟁 추념사에 대해 “남이 써준 연설문을 그냥 읽고 탁현민이 해준 이벤트를 하는 의전 대통령이라는 느낌”이라고 한 데 대한 비판으로 해석됐다.
진 전 교수는 ‘빈 똥밭-신동호의 빈 꽃밭을 기리며’란 시로 응수했다. “출세 하나를 위해 기와집으로 기어들어 간 예술혼이여 맘껏 슬퍼해라. 같이 쌀 줄 알았던 아이가 똥을 치우니 그가 운다. 몹쓸 공부는 잘 가라며”라는 내용이다. 여당 의원들이 가세하며 싸움이 커졌고 신 비서관은 더이상 나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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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같이 화를 냈다”는 대통령
문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이명박 정부 때 사라졌던 국정기록비서관을 9년 만에 부활시켰다. 그리고 기자 출신의 조용우 비서관을 임명했다. 그는 문 대통령의 대선 준비 모임인 ‘광흥창팀’에서 활동했다.
문 대통령이 기록물에 관심을 둔 이유는 2012년 대선 때 불거진 ‘사초 폐기 의혹’과도 관련이 있다. 대선 직전이던 2012년 10월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정문헌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당시 서해북방한계선 포기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이 의혹은 대선의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대선 이후인 2013년 검찰은 대대적 수사 끝에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폐기한 혐의로 백종천 전 청와대 외교안보실장 등을 기소했다. 그 과정에서 문 대통령도 검찰에 출석해 조사받았다. 2015년 법원은 백 전 실장 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문 대통령은 이와 관련 저서 『1219 끝이 시작이다』(2013년)에서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결탁에 의한 NLL 포기 논란”이라며 ‘사악한 주술, 종북’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이 국정기록비서관에 측근을 기용한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노무현 정부 때는 김경수 현 경남지사가 맡았던 일이다.
그런데 지난해 9월 언론을 통해 “정부가 문 대통령의 개별 기록관 건립을 추진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고민정 대변인(현 민주당 의원)은 “문 대통령은 ‘나는 개별 기록관을 원하지 않는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며 “(문 대통령이) 당혹스럽다고 하며 불같이 화를 냈다”고 브리핑했다.
곧 화살은 조 비서관을 향했다. “172억원의 예산이 드는 사업 계획이 비서실장에게 보고되지 않았고, 당연히 문 대통령 역시 몰랐다”는 취지의 청와대의 해명 때문이었다. 오히려 문 대통령은 사퇴를 고민하는 그를 따로 불러 2시간 넘게 “기록비서관은 고도의 보안과 전문성이 필요한 자리”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청와대 내에서는 “5년간 한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문 대통령의 깊은 신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말이 나온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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