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 차가 13m 사다리 폈다..베란다서 즐기는 신개념 축제
버블·공중퍼포먼스 끝나자 박수 함성 이어져
강원 춘천시 근화동의 한 아파트 앞. 이삿짐을 나를 때 쓰는 스카이 차량이 13m 위로 사다리를 올리자 바이올린 공연이 시작된다. 엘가의 ‘사랑의 인사’ 연주가 끝나고 버블을 이용한 공연이 펼쳐지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집콕’ 중이던 주민들이 하나둘씩 아파트 베란다로 나와 공연을 감상한다. 이어 한 여성이 크레인에 매달린 빨간색 줄을 타고 공중 퍼포먼스를 펼치자 아파트 곳곳에서 함성과 박수 소리가 울려퍼진다.
춘천마임축제가 지난 7월 코로나19로 지친 시민을 위로하기 위해 개막공연 ‘빨간 장미 세레나데’를 진행할 당시의 현장 풍경이다. 당일 공연을 감상한 신모(29)씨는 “음악 소리가 들려 밖을 내다봤는데 공연이 진행 중이어서 한참을 구경했다”며 “아파트 베란다에 있는 관객을 향해 공연하는 모습이 꽤 신선했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기 춘천 공지교~효자교 산책로 곳곳엔 텐트 모양의 모기장이 놓였다. 산책을 나왔다가 우연히 ‘워킹스루, 걷다 보는 마임’ 공연과 마주한 시민들은 모기장 텐트 안에서 마임공연을 즐겼다.
지난달 24일 폐막한 춘천마임축제는 코로나19 시대 축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89년 시작해 올해로 32년째를 맞은 춘천마임축제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일상 속 축제로 전환하면서 기존 진행방식을 과감히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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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예방 위해 공연장 100곳으로 분산
먼저 매년 5월 일주일간 집중적으로 개최하던 공연을 분산해 100여일 동안 축제를 이어가는 ‘춘천마임 백씬(100 Scene) 프로젝트’로 새로운 축제의 장을 열었다. 무대도 아파트 앞, 건물 옥상, 산책로 등 춘천지역 100곳으로 분산했다.
지난 7월 빨간 장미 세레나데 공연을 시작으로 총 344회의 공연과 전시·체험·워크숍 등을 진행하며 ‘코로나블루’에 빠진 시민과 무대를 잃은 예술가들에게 ‘백신’ 노릇을 톡톡히 했다. 축제가 이어질 수 있었던 건 코로나19 상황에도 춘천시와 지역 문화예술인이 돌파구를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전국에서 축제 취소가 줄을 잇던 지난 4월 춘천문화재단과 춘천마임축제 측이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연 ‘봄의 도시 춘천이 묻습니다, 당신의 안부를(온라인 100인 라운드테이블)’ 행사가 대표적이다. 당시 100개로 분할된 화면을 통해 만난 전국의 문화예술 활동가들이 코로나19 시대 축제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눴고 이 과정에서 마임축제를 변화시킨 아이디어도 나왔다.
강영규 춘천마임축제 총감독은 “온라인 100인 라운드테이블 행사 이후 일회성으로 끝나는 축제를 어떻게 하면 일상의 축제로 만들 수 있을지, 코로나19 시대 속에서 축제를 할 수 있는 명분은 무엇인지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춘천마임축제는 지난 8월 온라인으로 개최한 ‘코로나19, 한국축제 어디로 가야 하나’ 토론회에서 코로나19 이후 변화된 환경에 빠르게 대응한 사례로 소개됐다. 지난 9월 ‘제47회 관광의 날’에 국무총리 표창도 받았다.
춘천시는 현재 문화예술이 안전하게 일상으로 스며드는 문화도시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행정 조직 개편을 통해 문화도시국을 만들고, 춘천문화재단에도 문화도시센터를 설립했다. 춘천시 관계자는 “춘천이 그리는 문화도시는 나와 공동체, 도시를 위해 해보고 싶던 일을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고, 그 다양한 시도를 응원하는 도시”라고 말했다.
이재수 춘천시장은 “전환을 두려움으로 인식하지 말고 삶 속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미래는 언젠가 좋아질 날을 기다리는 사람보다 만들어가는 사람의 몫이다. 안전하게 만나는 작은 관계가 촘촘하게 연결돼 유기적으로 순환하는 문화예술 생태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춘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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