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김경수 잡은 허익범 특검 "증거 1333개, 유죄 확신했다"
카드 영수증 등 객관적 증거로
김 지사 방문 때 킹크랩 구동 입증
대통령 측근 수사 당연히 부담돼
특검보 후보 수십명이 합류 거절
'친문(親文)' 핵심인사로 꼽히는 김경수 경남지사가 1심에 이어 지난 6일 항소심에서도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김동원(필명 드루킹)씨와 공모해 지난 대선을 앞두고 포털 기사 댓글 순위를 조작한 혐의가 인정됐다. 2018년 6월 특검이 출범한 지 2년 5개월 만에 나온 결론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첫 특별검사로 임명돼 김 지사 사건을 수사한 허익범 특별검사를 8일 오후 서울 한 식당에서 만났다. 특검 출범 이후 허 특검이 언론 인터뷰에 응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허 특검은 특검팀 출범 첫날 “증거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법원이 댓글조작과 공직선거법 위반의 사실관계를 객관적으로 모두 인정했다는 게 2심 판결의 가장 큰 의미”라고 강조했다.
그의 얘기대로 서울고법 형사2부(부장판사 함상훈)는 김 지사 판결 선고문을 읽는 1시간여 동안 ‘객관적’이라는 표현을 12차례 사용했다. 객관적 증거로 김 지사가 매크로 프로그램인 ‘킹크랩’의 시연회를 본 사실이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허 특검은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만 1333건”이라며 “증거를 따라갔기 때문에 2심에서 김 지사가 무죄를 받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Q : 2심 선고 결과를 어떻게 생각하나.
재판장이 선고 공판을 시작하면서 "법원 재판이라는 건 기소 사실을 판단하는 것뿐이다"라고 얘기했을 때 유죄 선고를 확신했다. 억지로 진술을 짜 맞춘 적 없고, 객관적 증거도 충분했기 때문에 1심과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도 있었다. 유무죄보다 재판부가 사실관계를 모두 인정했다는 것에 특히 의미가 있다. ‘드루킹의 인터넷상 불법 댓글 조작 사건과 관련된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이 공식적인 이름인데, 진상규명이 모두 이뤄졌다는 뜻 아니겠나.
다만 (컴퓨터등장애업무방해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하긴 했지만) 공직선거법은 무죄가 나왔다. 재판부의 법리 해석이 특검팀과 달랐다.
Q : 공직선거법 위반을 무리하게 적용한 것 아닌가.
2017년 6월 드루킹이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회원인 도모 변호사를 일본 대사로 임명해달라고 김 지사에게 청탁했지만 거절됐다. 이후 오사카 총영사직을 다시 청탁하자 김 지사가 청와대에 도 변호사 이력서를 전달했다. 그해 12월 오사카 말고 센다이 총영사는 어떻냐고 김 지사가 드루킹에 역으로 제안했다. 여기까지 2심에서도 모두 사실로 인정한 부분이다.
재판부는 총영사 등 공직을 대가로 더불어민주당 소속 후보자가 지방선거에서 당선될 수 있게끔 댓글 작업을 하더라도 특정 후보자를 지정하지 않으면 무죄라고 봤다. 이러면 선거운동 인정 범위가 너무 좁아진다. 이에 대한 명확한 판례가 아직 없는 만큼 해외 판례까지 모두 찾아 대법원에서 다퉈볼 생각이다. 수사팀은 특정 정당의 당선을 위한 건 선거운동이라고 본다.
Q : 김 지사가 시연회를 봤다는 근거는.
일단 시연회 날짜 특정이 어려웠다. 드루킹이 2016년 10월쯤 시연회를 했다고 했는데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 했다. 김 지사가 경공모 아지트인 ‘산채’에 오는 날이었기 때문에 회원이 많이 모였을 것이라고 보고 경공모 카드를 음식점에서 쓴 날짜를 추렸다. 11월 9일 닭갈비집에서 15만원을 쓴 내역이 그 과정에서 나왔다.
그날 저녁 김 지사 운전기사가 경공모 산채 인근에서 카드를 쓴 내역도 나왔다. 네이버 등 포털에서 ‘킹크랩’을 구동한 로그기록 날짜와 시간도 김 지사가 산채에 있던 시간과 맞아 떨어졌다. 증거를 놓고 거기에 진술을 맞춘 게 아니라 객관적 증거가 여러 명의 진술과 일치했다. 킹크랩 시연회를 김 지사가 봤다고밖에는 설명이 안 됐다. 김 지사 측에서 닭갈비를 먹느라 시연회를 볼 시간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닭갈비 영수증은 오히려 시연회 날짜를 특정한 결정적 근거였다.
Q : 실형 선고했지만, 법정구속은 피했는데.
1심에서 김 지사를 법정구속했을 때 정치권에서 과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해할 수 없었다. 법원이 실형을 선고하며 구속하지 않는 건 통상적이지 않다. 특히 사실관계를 판단하는 사실심의 종결인 2심에서 실형을 받은 피고인을 법정구속하지 않는 경우를 거의 못 봤다. 김 지사가 현직 도지사 신분이라는 점을 고려한 게 아니겠나.
Q : 공판이 2년이나 이어졌다.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김 지사 한 사람을 태평양, LKB 같은 대형로펌과 10명 넘는 변호사가 변호했다. 특검 공판팀은 경력이 짧은 변호사(특별수사관) 6명이 전부다. 그마저도 2명 외에는 공판 과정에서 새로 참여한 사람들이다. 수사 내용을 파악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수사에 참여했던 파견검사들은 모두 복귀했다. 특검보 3명도 공판 과정에서 전부 바뀌었다. 변호인 의견서가 쏟아지는데 전부 검토하고 반박하느라 우리 팀 변호사들이 밤을 새우는 일이 많았다. 테라바이트(TB) 단위의 방대한 디지털 증거를 전부 분석하고 정리하는 일에 변호사 6명이 애를 많이 썼다.
Q : 대통령 측근 수사가 부담스럽지 않았나.
당연히 부담됐다. 사실 특검 임명 전까지 김 지사나 드루킹 사건에 대해 알지 못 했다. 특검 임명도 생각 못 한 일이었다. 특검 추천 후보가 많을 줄 알고 별생각 없이 수락했다. 그런데 변호사협회에서 국회에 추천한 4명에 내가 포함돼 있더라. 그래도 다른 후보 3명의 경력에 미치지 못해서 임명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치 못하게 특검직을 맡았지만, 일단 맡은 일이니 부족함 없이 진상을 규명하고자 했다.
특검보 임명과 검찰‧경찰 등 기관에서 파견을 받는 게 어려웠다. 박영수 특검 때는 지원자가 많았다고 하더라. 드루킹 특검은 정권 초에 꾸린 특검이어서 그런지 대부분 불편해했다. 특검보를 내가 추천해야 해서 수십명한테 전화를 돌렸는데 거의 거절당했다. 파견검사도 13명 중 2명은 특검 준비기간 20일이 끝나고 수사가 개시된 첫날에야 합류했다. 그만큼 부담이 큰 수사였다. 대법원에서도 끝까지 증거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가겠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닭갈비의 배신···김경수 영수증이 김경수 잡았다
- 아내·딸 잃고 神 원망한 바이든, 그런 그를 일으킨 ‘두컷 만화’
- 자살골 넣은 秋···"법무부 검찰국, 검찰 특활비 10억 받았다"
- 국정원 특활비 폐지? '안보비'로 이름바꿔 내년 404억 증액
- 20년전 앨 고어 "다신 전화 안하겠다"···이게 승복 연설의 정석
- "헤어지자" 했다가 당했다···목숨 거는 '이별' 작년만 229명
- 트럼프 앙심 폭발…패배 이틀뒤, 트윗으로 에스퍼부터 잘랐다
- 인파 북적 베이징 ‘바이든 식당’···자장면값 9년만에 3배 껑충
- "中과 전쟁나면 우리 도울까"…바이든 당선 불안한 대만 총통
- 13일부터 걸리면 10만원···'턱스크족' 현장 이렇게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