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만 불쌍해" '민식이법' 故김민식 군 사고 가해자 책임 90% 판결..또다시 불붙은 논란
운전자들 "피고에만 책임 돌리는 것 과해", "어린아이 통제 어려워"
전문가 "운전자 처벌 강화로는 스쿨존 사고 예방 어려워"
[아시아경제 김수완 기자] '민식이법'을 촉발한 고 김민식 군의 사고와 관련해 법원이 가해 차량 보험사에 김 군의 부모에 대한 배상책임 90%를 지급하라고 판결하면서 이를 둘러싼 갈등이 재점화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피해자가 좌회전하기 위해 횡단보도 위에 대기 중인 차량 뒤에서 갑자기 뛰어나온 사정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등 비판 여론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전문가는 운전자 처벌 강화만으로는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고를 예방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대전지법 천안지원 민사 7단독 이정아 판사는 김 군의 유족이 가해자의 보험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보험사는 유족에게 5억70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과정에서 가해 차량 보험사 측은 사고가 김 군이 반대편 차로에 정차 중이던 차량 사이로 뛰어나와 발생한 것으로, 피고의 책임은 80% 이내로 제한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 차량의 운행으로 망인이 사망했으므로, 피고는 보험자로서 이 사건 사고로 인해 망인과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반면 이같은 재판부의 판단에 운전자들 사이에서는 가해 차량 운전자만의 과실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가해 운전자는 1, 2심에서 이미 형사 처분을 받았고, 피고의 책임 이외에도 사고 원인이 복합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에 손해배상 범위가 과하다는 것이다.
민식이법은 지난 2019년 9월 충남 아산의 한 스쿨존에서 김군(당시 9세)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발의된 법안으로 지난 3월25일부터 시행 중이다. 해당 법안은 운전자가 스쿨존에서 안전운전 의무를 위반하거나 시속 30㎞ 이상으로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를 내 어린이를 사망케 하면 무기징역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으로 처벌하고, 상해를 입혔다면 500~3000만 원의 벌금이나 1~15년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앞서도 민식이법은 시행 전부터 운전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두고 논쟁이 일은 바 있다. 지난 4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민식이법 개정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 글이 올라와 35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또한, 각종 온라인커뮤니티 게시판 등에서도 민식이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대부분 스쿨존서 법규를 지키고 운전해도 갑자기 뛰어나오는 아이들을 피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이다.
그런가 하면 일부에서는 민식이법에 대한 비난은 옳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 제정 이후에도 어린이보호구역 내 아동 교통사고는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 도로교통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4년간 스쿨존 내 교통사고 발생현황에 따르면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발생한 사고는 총 1961건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2016년 480건, 2017년 479건, 2018년 435건이었으며, 지난해에는 567건으로 급등하기도 했다. 특히 스쿨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사망한 어린이는 25명이며, 부상자는 2059명으로 조사됐다.
법규위반 별로는 △과속 14건 △중앙선 침범 20건 △신호위반 334건 △안전거리 미확보 7건 △안전운전 의무불이행 450건 △교차로 통행방법 위반 13건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 796건 등이다. 여전히 주의의무 태만 등 운전자 과실이 사고 원인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가운데 대다수 운전자가 우려하는 보행자 과실로 인한 사고와 관련해, 무죄 판결이 적용되는 등 다양한 법리적 해석이 나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 제정 이후 현재까지 운전자가 규정 속도를 준수하는 등 주의의무를 기울였음에도 민식이법을 적용받아 처벌받을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돼왔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전북 전주시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초등학생이 승용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으나, 법원은 운전자가 제한속도인 시속 30㎞ 이하로 주행했을뿐더러 전면이 아닌 측면 사고였던 점을 들어 어린이를 미처 볼 수 없는 상황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결국,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어린이보호구역 치상) 혐의로 기소된 A(57) 씨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전문가는 아동 교통사고 원인에는 운전자 부주의뿐만 아니라 다양한 환경 요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스쿨존 내 교통사고 현황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박 의원은 "운전자 처벌 강화만으론 스쿨존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고를 예방하기는 어렵다"며 "스쿨존 인근 과속방지턱 확대, 도로 미끄럼방지 시공, 학교 주변 신호등 확대 설치, 어린이 교통안전 교육 강화 등 체계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운전자의 고충을 이해하면서도 어린이의 안전을 위해 양보가 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정경일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는 YTN 라디오 '슬기로운 라디오생활'과 인터뷰에서 "사실 어린이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경우도 많아 운전자분들이 이런 부분에 대해서 많이 힘들어하시는 것도 현실"이라면서 "하지만 어린이보호구역 자체는 300m 등 길이가 그다지 길지 않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진행하던 것에 1~2분 정도 더 소요된다고 생각하고 운전한다면 사고는 충분히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김수완 기자 suw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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