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박한진 고택 국가민속문화재 지정

이종길 2020. 11. 9.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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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봉성면에 있는 오고당 고택이 국가민속문화재로 등록됐다.

문화재청은 '봉화 오고당 고택'을 국가민속문화재 제298호로 지정했다고 9일 전했다.

'봉화 오고당 고택'은 이를 최소화하고자 지붕 용마루 아래에 구멍을 냈다.

문화재청 측은 "통상 까치구멍집은 초가인데, '봉화 오고당 고택'은 기와"라며 "민가 건축의 변화과정을 보여주는 희소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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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 외양간 등 별도로 두지 않고 본채 한 동에 집약해 마련
지붕 용마루 아래 '까치구멍' 내 "민가 건축 변화 보여주는 희소 사례"
봉화 오고당 고택

경북 봉화군 봉성면에 있는 오고당 고택이 국가민속문화재로 등록됐다.

문화재청은 '봉화 오고당 고택'을 국가민속문화재 제298호로 지정했다고 9일 전했다. 조선 후기 명의(名醫) 박한진(朴翰鎭·1815~1893)이 살았던 곳이다. 1820년 건립됐다고 전해진다. 당호인 '오고당(五高堂)'은 박한진의 호를 따서 후손들이 붙인 명칭이다.

유고집에 따르면 박한진은 고종 12년(1875) 헌종 생모인 조대비 신정왕후(神貞王后)의 병환을 치료했다. 고종은 의술을 높이 사 만리(萬里)라는 호와 함께 벼슬을 내렸다. 박한진이 사양의 뜻을 밝히자 고종은 의리와 인품을 갖췄다는 뜻에서 '오고(五高)'라는 우호를 하사했다. 박한진은 그 뒤에도 조대비로부터 벼슬 제의를 받았으나 향리에서 가난한 백성을 치료하는데 전념했다.

봉화 오고당 고택

'봉화 오고당 고택' 평면은 강원 산간지방과 맞닿은 지형과 자연환경에 맞게 외폐내개(外閉內開·겉으로 닫히고 안으로 열리는 내향적 배치)로 구성됐다. 창고, 외양간 등을 별도로 두지 않고 본채 한 동에 집약해 마련했다. 내부 집약적으로 구성된 가옥은 환기, 채광 등에서 문제가 생기기 마련. '봉화 오고당 고택'은 이를 최소화하고자 지붕 용마루 아래에 구멍을 냈다. 소위 '까치구멍집'이다. 문화재청 측은 "통상 까치구멍집은 초가인데, '봉화 오고당 고택'은 기와"라며 "민가 건축의 변화과정을 보여주는 희소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고택은 본채, 별당채, 문간채 등 세 동으로 구성됐다. 겹집형태의 본채를 중심으로 오른편에 문간채, 왼편에 별당채를 뒀다. 문화재청 측은 "산간지역 민가 건축에서 사용하는 외폐내개 평면 형태에 양반가 배치법인 남녀유별의 유교적 질서체계를 실현했다"면서도 "별당채와 문간채는 건축적 내력을 확인할 수 없고 훼손이 심해 이번 지정에서 제외했다"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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