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없음 만지지마" 농담에 웃음..日국회 태블릿PC 촌극
일본 정치권이 뒤늦게 마주하게 된 탈(脫)종이 개혁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管義偉) 내각이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디지털화 정책에 따라 종이를 없애고 태블릿PC로 회의를 진행하라고 했더니 고령의 의원들이 익숙지 않은 조작법 때문에 애를 먹고 있다는 것이다.
9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일본 자민당은 최근 스가 내각의 탈종이(페이퍼리스) 캠페인의 일환으로 당내 정책조정위 회의에 종이 자료를 없애기로 했다. 이 같은 시도는 2018년 10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자민당 정책조정위원회(정조) 회장이 간부 회의를 주관할 때 처음 나타났다가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현 정조회장이 야심 차게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5일 시모무라 회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 본부’ 회의에서 이런 장면이 눈에 띄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의원들 앞에는 평소 쌓여있던 종이 뭉치 대신 태블릿 PC가 놓여있었다고 한다. 한 번 정조 회의를 하면 200장 이상 배포되던 서류가 사라지니 어딘가 허전한 풍경이었다.
시모무라 회장은 이날 의아해하는 기자들에게 “가스미가세키(霞が関·도쿄 부처 밀집 지역)가 반기는 것으로 안다”며 “이곳 직원들이 전날 밤늦게까지 해야 하거나 새벽 4시부터 시작해야 하는 인쇄 작업을 이제는 일절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탈종이화의 최대 효용으로 당내 직원들의 업무 경감을 꼽은 것이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디지털 환경에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10월 16일 자민당의 ‘신국제 질서 창조 전략 본부’ 회의에서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세제 조사 회장은 페이퍼리스 방침을 설명하며 “사무국이 조작해줄 테니 자신 없는 사람은 태블릿PC 패널을 만지지 말라”고 해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마이니치신문은 “태블릿PC를 신기한 듯이 보며 화면을 찔러보는 의원도 보였다”고 보도했다. 한 70대 의원은 이 매체에 “종이가 훨씬 낫다. 자료를 재차 인쇄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블릿PC가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한 탈종이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당내 불만도 나온다. 자민당은 현재 200대의 태블릿PC를 보유하고 있는데, 한 번 회의에 최소 50대의 기기가 필요하고 기기가 충전돼야 하는 점 등을 점을 감안하면 여러 개 회의를 동시에 열기 어렵다는 의미다.
일본 국회 전반적으로 탈종이화에 호응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국회 규정상 본회의장이나 위원회실에 각료와 의원이 태블릿PC를 반입하는 게 원칙적으로 금지돼있다. 두꺼운 종이 예산서를 모든 의원에게 배포하는 규정도 그대로다. 마이니치신문은 “입헌민주당 등 야당에선 탈종이화가 자민당에 비해 별 진전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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