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만 해도 재선 확실했다, 트럼프 운명 가른 결정적 순간들
극우 무장세력 옹호에 민주당 지지층 결집
외연 확장 등한시, '러스트 벨트' 표심 놓쳐
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시 선거대책본부장이던 브래드 파스칼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 지지율이 얼마나 탄탄한지 보고했다. 경제에서도 성과를 내고, 선거 홍보 전략도 효과를 보면서 민주당 강세지역인 콜로라도·뉴멕시코·뉴햄프셔에서도 앞선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파스칼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 가지 우려를 덧붙였다. "대통령님, 하지만 어쨌든 코로나19는 오고 있습니다. 이게 당신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요인일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말은 현실이 됐다고 폴리티코가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올 초만 해도 재선이 거의 확실해 보였던 트럼프 캠프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결정적 순간에 대한 현지 언론,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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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일 트럼프 코로나19 확진
트럼프 대통령은 발생 초기부터 '감기의 일종'이라며 코로나19의 위력을 깎아내렸다. "미국에서 매해 감기로 수만 명이 죽는다"며 방역지침을 무시한 채 대규모 실내 유세도 강행했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를 두고선 "내가 본 것 중 가장 큰 마스크를 쓰고 나타난다"며 조롱했는데, 그로부터 며칠 뒤 본인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공화당 전략가인 브래드 토드는 자체 여론조사 결과, 이날 이후 교외 지역 거주자, 대졸자, 비(非) 진보 성향 유권자들이 떨어져 나갔다고 시사 주간지 타임에 밝혔다. "코로나19에 걸리지 않았다면 이번 선거에서 이겼을 정도"였다고 했다.
유세장의 환호하는 지지자들 사이에선 보이지 않았던 공포감이 핵심 지지층 중 하나였던 노인들 사이에서 퍼져나갔다. CNN 출구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장년층의 표가 2016년 대선 때보다 4%p나 떨어졌다.
버락 오바마 대선 캠프의 선임 고문이었던 데이비드 액설로드도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러스에 대해 초기부터 다른 전략을 취했다면 이 위기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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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9일 1차 TV토론
트럼프 캠프의 한 고위 관계자는 폴리티코에 "지난 두달 동안 트럼프를 패하게 한 가장 큰 요인을 꼽으라면 1차 대선 TV토론"이라고 밝혔다. "그가 코로나19에 걸린 것보다 1000배는 더 나빴다"고 했다. "트럼프는 바이든에게 90분 동안 소리만 질렀다. 대선 역사상 최악의 토론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1차 TV토론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주도권을 쥐기 위해 처음부터 공격적으로 나갔다. 수시로 상대방 말에 끼어들면서 토론은 엉망이 됐고, 바이든 후보뿐 아니라 진행자인 크리스 월러스 폭스뉴스 앵커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프라우드 보이스'같은 극우 무장세력에 대한 비난을 피한 것도 논란이 됐다. 폴리티코는 이때가 바이든 지지자들과 기부자들을 결집하는 순간이 됐다고 분석했다. 바로 직전 가장 큰 행사였던 전당대회에서 지지율을 뒤집지 못했기 때문에 TV토론이 마지막 기회였는데 이를 살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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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 조지 플로이드 사망
미국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의 과잉대응으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질식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이 들불처럼 퍼졌고 이번 대선의 가장 큰 변수 중 하나가 됐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대의 폭력성에 초점을 맞추며 "Law & Order(법과 질서)"만 강조했다. 어느 순간 인종차별 반대진영과 백인우월주의자의 대결 구도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인단 수에선 이겼지만, 전체 득표수 면에선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에 300만 표나 뒤졌다. 그렇다면 다음 선거에선 중도층을 공략해 표 확산에 나섰어야 했는데, 여전히 비대졸자 백인 남성 같은 '집토끼'만 관리했다는 지적이다. 이것이 결국 미시간·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 등 북부 경합주 '러스트벨트'를 놓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열정적인 지지층에 가려 다른 진영의 힘을 간과한 것도 실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참전용사인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애리조나)을 경선 과정에서 '패배자'라는 식으로 조롱했고, 흑인 인권 운동의 대부 존 루이스 민주당 하원의원(조지아 애틀랜타)을 두고는 자신의 취임식에 오지 않았다며 "그를 잘 모른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두 사람의 장례식에 모두 초대받지 못했는데, AP는 결국 이 둘의 지역구가 이번 대선에서 발목을 잡았다고 분석했다.
개표 초기 애리조나가 일찌감치 바이든에게 넘어가며 기선을 빼앗겼고, 막판에 조지아가 뒤집히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겐 결정타가 됐다. 액설로드는 CNN 기고문에 코로나19 대응, 인종차별 반대시위 대응 등에 대한 문제점을 거론하며 "바이러스가 트럼프 재선을 죽인 게 아니라 그가 자초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워싱턴=김필규 특파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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