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 2주년 맞춰 돌아본 '강제징용과 독도'
[김종성 기자]
▲ 강제징용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사진은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자료사진) |
ⓒ 연합뉴스 |
한국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나온 지 2년이 흘렀지만,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은 물론이고 사과조차도 이뤄지지 않았다. 도리어 일본이 적반하장격으로 나오면서, 한일관계가 역대 최악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강제징용에 대해 일본이 지난 2년간 보여준 대응은 독도에 대한 그들의 대응을 넘어섰다고 봐도 괜찮을 정도다. 이전에 없었던 양상이 강제징용과 관련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독도와 관련해 일본에서는 해마다 적어도 한 번씩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는 공개 언명이 나오거나, 정부 관계자들이 한국 여론을 자극하는 망언을 하거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추진하는 움직임이 일거나, 교과서에 왜곡된 주장이 실리거나, 국제사회를 상대로 자국 입장을 홍보하는 등의 대응이 나왔다.
이런 가운데서 일본은 자국이 한국과 달리 평화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자국이 독도 영유권에 대해 강경책을 구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알리려 하는 것이다.
내각관방(內閣官房)이 운영하는 '영토·주권 대책 기획조정실 홈페이지(www.cas.go.jp/jp/ryodo)'에 실린 2013년 7월 2일자 '전략적 발신의 강화를 목표로( 略的 信の 化に向けて)에서도 그런 정서를 느낄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발신'은 '표명' 정도의 의미다.
'전략적 발신의 강화를 목표로'라는 보고서는 영토 문제에 관한 각계 전문가(일본어 표현은 유식자) 간담회인 '영토·주권을 둘러싼 내외 발신에 관한 유식자 간담회(領土·主 をめぐる 外 信にする有識者懇談 )의 회의 결과를 담고 있다. 스가 요시히데 내각관방장관 시절에 아베 신조 당시 총리에게 제출된 이 보고서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다케시마 문제와 관련해, 1950년에 한국이 힘으로 다케시마를 빼앗고 불법적 점거를 계속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일본 정부가 이 문제에 관해 국제사법재판소 회부를 포함한 평화적 방법에 따라 국제법에 의거해 해결을 추구해온 점을 부각시켜 발신해야 한다."
1952년 1월 3일자 <동아일보> 2면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일본 외무성은 한국전쟁 중인 1952년 1월 28일 일본주재 한국대표부에 "다케시마는 확실히 일본의 영토"라는 내용의 서한을 발송했다. 이때부터 일본은 해마다 동일한 주장을 연례행사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 지옥의 섬 '군함도'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이 살아서 나올수 없었다는, 지옥의 섬으로 알려진 군함도다. (사진=케이티이미지 코리아) |
ⓒ 케이티이미지 코리아 |
그런데 일본은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서는 전례 없는 고강도 대응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은 자국 기업들의 손실을 무릅쓰면서까지 관련해 경제보복 조치를 내놓기까지 했다. 미국의 영향력이 약해진 상태라 보복조치가 쉽게 나온 측면도 있지만, 일본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대응을 통해 한일관계를 역대 최악의 상태로 만들어놓았다. 관련해 지난 8월에 <중국법연구> 제43집에 수록된 최승환·강문경·윤성혜 교수의 논문 '미국, 일본, 중국의 법률 전 수행방식의 특징과 평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일본 정부는 미국, 중국과 같은 강대국에 대해서 일방적 보복 조치를 발동한 적이 없으나, 경제적 강제수단을 통해 용이하게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에 대해서는 일본의 국가정책 실현에 절실히 필요한 경우라고 판단되면, 설사 국제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거나 정당화하기 어려운 경우라 하더라도 일방적 경제보복 조치를 통한 힘 지향적 분쟁 해결방식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일본은, 미국·중국에 대해서는 발동한 적 없는 일방적 조치를 한국에 대해서는 발동했다. 물론 일본의 의도대로 상황이 흘러가고 있지는 않지만, 독도 영유권과 관련해서도 내놓지 않았던 '강경 수단'을 강제징용을 겨냥해서 내놓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이 사안에 대해 얼마나 민감해하고 있는지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이 사안에 대한 일본의 강경 대응은 결과적으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까지 영향을 줄 뻔했다. 경제보복에 맞서 한국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을 종료할 듯한 포즈를 취했고, 이는 일본보다도 미국을 더 당황케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의 군사동맹을 절실히 원하는 나라는 한국도 아니고 일본도 아닌 미국이다. 미국은 동북아에서 강력한 군사동맹을 구축해 이 지역 적성 국가들의 해양 진출을 견제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 군사동맹이 결성될 경우, 중국은 해양 진출에 어려움을 겪을 뿐 아니라 수도 베이징의 방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베이징과 가까운 곳에서 한미일 군사동맹이 작동될 경우, 중국은 신장위구르·티베트·중국인도국경·남중국해·홍콩·타이완보다 베이징 안보를 더 걱정해야 할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지소미아는 그런 전략적 이익을 미국에 선사할 수 있다. 한국·일본은 그런 상황을 원치 않기 때문에 미국이 그런 선물을 받게 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지소미아는 활용 여하에 따라 미국 입장에서는 '보검'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지소미아가 일본의 경제보복 때문에 종료될 뻔했었다. 일본이 이런 상황을 초래했다는 것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당혹감을 드러내는 것일 수 있다.
당혹감 감추려고? 위압적으로 나오는 일본의 속내
당혹감을 감추기 위해서인지 일본은 독도나 위안부 문제 때보다 훨씬 더 당당하고 위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올해에 <일본연구논총> 제51호에 실린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의 논문 '강제징용 쟁점과 한일관계의 구조적 변용'에 이런 대목이 있다.
"사법부 판결을 거쳤다는 점에서 강제징용 문제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외교 쟁점화와 유사하지만, 피해자 구제 범위와 해법이 훨씬 더 광범위하여 복잡하고 심층적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일본 정부가 한국 측에 청구권협정 준수를 요구하면서 어떤 사죄와 보상도 거부하고 있다는 것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다른 점이다. 일본 측이 오히려 우위에 서서 한국 측에 국제법을 준수하라거나, 국내 입법 조치를 요구하는 점도 매우 다른 특징이다."
1965년 11월 5일, 1993년 4월 6일, 1994년 3월 25일, 1995년 8월 27일 일본 정부 당국자는 국회에서 '한일청구권협정에서 말하는 청구권 포기는 본국의 외교적 보호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뜻이지 개인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공식 표명했다.
일본의 요구대로 강제징용 문제를 ICJ(국제사법재판소)에 갖고 갈 경우, 이런 과거 발언들이 일본 정부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ICJ로 가자느니, 국제법을 지키라느니 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그만큼 이 문제를 두려워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1961년 한국 외무부가 작성한 <제6차 한일회담 재산청구권 관계 종합자료집>에 집계된 징용 피해자만 해도 약 100만 명이 넘는다. 당시 한 집에서 한 명 정도는 강제징용이나 강제징병으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져있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의 피해자 규모는 이보다 더 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한국이 그렇게까지 요구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최소 100만 명에 대해 최소 1억 배상을 요구할 경우, 일본 경제도 경제지만 무엇보다 일본의 재벌 전범 기업들이 확실한 타격을 받을 것이다. 한편 이런 천문학적 배상을 요구하는 일이 실현되지 않는다고 해도, 이 문제가 지속해서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전범 기업들의 국제적 이미지가 약화되고 이들의 마케팅에 차질이 생기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독도는 어차피 일본 땅이 아니었고 지금도 일본 수중에 있지 않았지만, 강제징용 문제의 경우에는 이로 인해 일본 기업들의 자산이 줄어들고 미래 전망까지 불투명해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렇기 때문에 일본은 독도 영유권 때보다 훨씬 더 사활적인 자세로 강제징용 문제에 임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일본의 입장을 볼 때, 한국 정부의 대처법이 과연 적정한가 하는 생각을 품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는 피해자와 사법부가 문제의 선봉에 서 있지만, 일본에서는 행정부가 맨 앞에 서 있다. 이런 구도에서 한국 피해자들의 얼마나 한(恨)을 풀 수 있을까. 의문을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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