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단사원 8년차 여성 셋, 대기업의 '악행'을 폭로하다
[장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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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포스터 |
| ⓒ 롯데엔터테인먼트 |
애사심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루의 반 이상을 보내는 회사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뿌듯함,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극 중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직장인, 특히 여성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만한 요소가 다분하다.
특히 영화는 직장에만 들어가면 일다운 일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에 부풀지만 막상 한없이 초라한 업무와 답답한 조직 문화에 실망한 많은 직장인을 위로한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1995년 한 대기업의 말단 삼인방이 회사의 비리를 캐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주인공들은 말단 사원 8년 차로 더 치고 올라고 싶지만, 길이 보이지 않는다. 회사는 '글로벌화'라는 명목으로 토익 600점을 맞으면 대리로 승진할 수 있다는 말로 직원들을 유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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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컷 |
| ⓒ 롯데엔터테인먼트 |
그러던 어느 날, 오지랖 넓은 생산부서 자영(고아성)은 최동수 대리(조현철)와 공장에 외근 나갔다가 뜻하지 않게 회사의 비리 현장을 목격한다.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님을 파악한 자영은 회사에 보고하지만 묵살 당한다. 그땐 그랬다.
자영은 갈등한다. 회사를 쉽게 때려치울 수도 없지만 아닌 건 아니라는 밑도 끝도 없는 정의가 이내 발목을 잡는다. 이에 최초 목격자 자영, 마케팅부 유나(이솜)와 회계부 보람(박혜수)은 내부고발자가 되어 진실을 파헤치려 한다.
하지만 좀처럼 쉽게 풀리지 않는다. 그 진실은 실제로 아주 복잡해서 풀기 힘든 방정식 같다고나 할까? 다 풀었다 싶으면 틀렸고, 다시 풀어 봐도 오답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 이미 시작한 일이다. 여기서 포기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 버리는 거다. 삼인방은 악으로 깡으로 버틴다.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되는 이야기
영화는 삼인방의 선한 의지를 끝까지 밀어붙인다. 사소한 목격에서 시작된 추리는 배후를 캐고 또 캐며 진정한 악당을 찾아 바로잡고자 한다. 이들은 급격히 짧은 시간에 소수의 행동이 모여 다수의 패턴이 되고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되는 티핑 포인트(전환점)를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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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스틸컷 |
| ⓒ 롯데엔터테인먼트 |
최초의 소수, 세 여성의 캐릭터는 서로 독립성과 통일성을 동시에 유지한다. 미스터리 소설 마니아로 상상을 실전으로 옮기는 유나, 수학 올림피아드 대회 우승자답게 계산 실력으로 빠른 진행을 유도하는 보람, 그리고 실무 능력은 최고지만 현실은 커피 타기의 달인인 유나의 케미가 유쾌하게 펼쳐진다. 단순한 유니폼이 주는 합일이라 하기 힘든 세 캐릭터의 시너지가 시원한 웃음을 유발한다. 사고를 치는 남성들을 뒤로하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계급 피라미드 가장자리의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꼬인 문제를 해결한다.
오래도록 마음이 움직이는 영화다. 1990년대 레트로 감성을 사로잡는 소품, 헤어, 패션, 음악 등으로 가득 차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할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세계화가 진행 중인 시대답게 영어를 배우려는 움직임, 환경오염 인식 미비, 경영권 승계 문제 등 1990년대 이슈 되었던 실제 사건들이 조금씩 얽혀 있다. 특정 사건을 영화화한 것은 아니고 당시 이슈 되었던 뉴스에서 영감받아 제작되었다. 그래서인지 현실적인 상황과 고증이 잘 되어 있다.
다만, 옛날이 좋았다는 말은 그때를 살아보지 않은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위로가 될 수 없겠다. 변하지 않는 조직 문화와 유리 천장, 직급 차별, 찍어 누르는 계급 문화, 육아휴직의 어려움 등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높고 많다는 게 씁쓸했다.
세상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포기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기에 일말의 희망이라도 잡고 싶을 뿐이다. "뭐든 본인이 재미있는 일을 하고 살아"라던 상사의 충고가 천근만근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직장인들을 위로하고 나선다. 사느라 바빠 잠시 잊고 있었지만 삶은 일말의 용기를 낼 때 내 것이 된다. 내가 사랑하는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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