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자고, 싸고 4년간 방안에 갇혀있었다"
[신나리 기자]
▲ 신정훈씨 21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정훈씨는 시설을 '지옥'에 비유했다. |
ⓒ 신나리 |
말다툼의 이유가 뭐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만큼 사소한 일이었다. 언성이 조금 높아졌나. 아무리 생각해도 큰 다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신정훈(54)씨는 방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형이 면회 온 1년에 한 번, 볕을 쬐고 바람을 쏘일 수 있었다. 그리고는 다시 방에 갇혔다. 무려 4년간이었다.
"교통사고 때문에 장애가 생겼는데, 그 사고 다음으로 악몽같은 순간이었어요. 내가 사지마비 상태라 혼자서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잖아요. 그런 나를 그냥 방에 가둔 거예요. 지옥이었어요."
21일 서울시 동대문구 장안동, 자신의 집에서 만난 정훈씨는 20년간 그가 머물렀던 시설을 '지옥'에 비유했다. 1993년 교통사고로 경추 4, 5번을 다친 후 그는 팔과 다리를 제 마음대로 사용하기 힘들었다. 강직된 몸은 약을 먹어야만 풀 수 있었다. 마음과 몸이 따로 움직였다.
시설은 신체장애인인 그를 통제하려 들었다. 부원장과의 말다툼 이후, 정훈씨가 어렵사리 휠체어로 방문을 나가려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관리자가 뛰어와 그를 막았다. 어떤 관리자는 '(부원장 때문에) 어쩔수 없다'라면서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의 볕 쬐일 기회를 4년간 빼앗은 곳, 석암베데스다요양원(아래 석암 요양원)이었다.
▲ 신정훈씨 지원주택 정훈씨 집에는 휠체어를 고려해 현관부터 문턱이 없다. 응급안전서비스도 마련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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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정훈씨 활동 최근 신정훈씨는 서울시 공공근로를 통해 장애인 권익옹호에 앞장서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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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에서 인권착취를 당한 건 정훈씨 뿐만이 아니었다. 120여 명, 석암 요양원에 있던 이들은 폭력적인 상황에 매일매일 노출됐다. 결국 2009년 6월 4일, 8명의 장애인이 '우리도 사람이다'를 외쳤다.
이들은 석암 요양원에서 발생한 비리와 인권침해 사실을 알리며 마로니에 공원에서 '탈시설-자립생활'을 요구하는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탈시설-자립생활 정책의 초석을 만든 이들은 이후 '마로니에 8인'이라고 불렸다. 62일의 농성은 서울시의 정책을 이끌어냈다. 서울시는 2009년 6월 ▲ 장애인전환서비스지원센터 운영 ▲ 장애인 자립생활체험홈 운영 ▲ 장애인 자립생활가정 운영 ▲ 탈시설정착금 지원 등 탈시설 정책을 시행했다.
함께 생활하던 장애인들이 시설을 나갔다. 자유를 찾는다고도 했고,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도 했다. 정훈씨는 고개를 저었다.
"혼자서 살 수 있을지 확신이 생기지 않았어요. 휠체어와 내가 한몸인데, 문턱이 높은 일반 집에서 휠체어를 이용하기도 쉽지 않고요. 탈시설한 장애인들 집을 가봤는데, 거기도 만만치 않더라고요. 휠체어 때문에 아파트 화장실 문을 떼어놓은 곳도 있고... 아직 내가 지낼만 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자립하지 않았어요."
석암 요양원에 머물던 장애인들이 꾸준히 탈시설을 했을 때도, 정훈씨는 시설에 남았다. 재단이 바뀐 후 인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장이 오면, 시설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가 원장으로 오느냐에 따라 3년마다 시설의 분위기가 바뀌었지만, 석암 재단 시절보다는 나았다. 남은 삶은 시설에 적응하며 살아야겠구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러다 '장애인 지원주택'을 알게 됐다.
"못 미더웠죠. 이런 걸 왜? 내가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 스스로 의심했어요. 20년간 시설에 있다보니 나가는 게 무서웠고, 잘 살 수 있을 자신이 없고요. 2009년 마로니에 8인이 투쟁할 당시 활동했던 활동가가 끈질기게 설득해준 덕분에 '그래, 나도 한번 자유롭게 살아보자' 마음 먹을 수 있었죠."
정훈씨는 2019년 12월, 20년 머물던 시설을 나왔다. 턱으로 전동 휠체어를 조정하며, 시설 문을 나섰다. 그때까지도 확신이 없었다. 처음 생긴 제도에 희생자가 되는 건지 수혜자가 되는 건지 미덥지 못했다. 장애인 지원주택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서울시에만 있는 정책으로 2019년 처음 시행됐다. 공공임대주택과 주거서비스를 함께 제공해 장애인의 탈시설을 돕는 것으로, 시설에서 벗어나 독립생활을 하려는 장애인에게 집을 빌려주고 가사와 건강관리 등 일상생활도 지원하는 식이다.
정훈씨의 집은 현관과 욕실에는 문턱이 없고 안전손잡이와 음성인식 가스차단기 등 장애인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집 구석구석이 그의 동선을 고려해 맞춰져 있다. 그가 입주한 2019년 68가구가 마련됐고 2022년까지 총 278가구가 공급될 예정이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18세 이상 장애인 가운데 소득·재산 조사로 입주자가 선정되고, 보증금과 임대료·관리비는 입주자 부담이다. 입주자는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해 최장 20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우리 집에는 문턱이 없어요. 그리고 화장실은 제 몸에 맞춤으로 리모델링 되어 있어요. 요즘에는 서울시에서 하는 공공일자리 권리옹호파트에서 일도 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자기 권리에 대해 말하는 일이에요. 이게 사람같은 삶 아닙니까."
탈시설 9개월차이자 지원주택에 거주한 지 9개월이 된 정훈씨는 "남은 삶이 지금처럼만 흘러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매일 자유롭게 먹고, 일하고, 종종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는 일상에 대한 만족인 셈이다. 그는 "코로나가 종식되면, 땅끝마을부터 전국을 여행할 것"이라며 "요즘 매일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과 통화하며, 지원주택에 대해 설명한다"라고 말했다. 시설이 아닌 시설 밖의 삶이 있다는 걸, 그의 삶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요, 한 곳에 갇혀있으면 그곳이 전부인 줄 알아요. 내가 밖에 나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마냥 두렵고 무서워요. 나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탈시설에 또 다른 삶이 있습니다. 저는 모든 장애인이 시설 밖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 전장연 탈시설 23일 금요일, 오후5시~오후8시.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마로니에공원. 11년 전, 마로니에 8인이 탈 시설을 외쳤던 곳에서 여전히 탈 시설을 호소한다. |
ⓒ 전장연 |
정훈씨의 바람처럼 모든 장애인이 시설을 나서려면 필요한 게 있다. 탈시설을 명명한 법률이다. 현재 장애인의 '탈시설'을 명시하고 있는 법률은 없다. 자립생활의 지원에 관한 장애인복지법 제4장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자립생활 지원을 위한 시책을 강구할 의무만 규정하고 있다. 탈시설을 직접 추진할 수 있는 근거규정으로 보기는 어려운 셈이다. 장애인 자립생활지원센터는 매년 공모 방식으로 사업비를 지원받고 있고, 동료상담, 활동지원 서비스 중개기관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위 센터가 탈시설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근거나 예산 지원은 없다.
이에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탈시설이 명시된 법안을 대표발의할 예정이다. 지역사회 안에서 장애인이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게 최 의원의 생각이다. 그는 22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누구든 시설에 갇혀있으면 안 된다, 탈시설은 장애인의 권리"라며 "정부에서도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말할 때, 탈시설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 탈시설 지원법안을 준비중이며, 장애인 주거 뿐 아니라 활동지원까지 포함할 것"이라면서 "올해 안에 탈시설 법안을 대표 발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장애인단체 역시 탈시설을 지원하기 위한 활동을 이어간다. 23일 금요일, 오후 5~8시,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마로니에공원. 11년 전, 마로니에 8인이 탈 시설을 외쳤던 곳에서 여전히 탈 시설을 호소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 등 10곳이 주관해 '장애인은 계속 갇혀 살아야 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진다.
코로나가 일상화되며, 개인의 활동이 위축되는 시기에 갇혀 있는 장애인들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목소리다. 지역사회에서 이웃으로 지인으로 친구로, 배제되지 않고 차별받지 않는 삶을 꿈꾸고 싶다는 호소가 이날, 마로니에 공원에 울려퍼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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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후원 문의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02-739-1420, 국민은행 009901-04-017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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