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매니저 없이 한국행..유연석과 로맨스 찍는 본드걸 스타

나원정 2020. 10. 1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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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회복한 할리우드 배우 올가 쿠릴렌코
한국서 프랑스 범죄영화 '고요한 아침' 촬영
형사 역 유연석과 살인사건 수사, 로맨스 호흡
"한국서 뮤지컬 볼 줄 몰랐다"며 K방역 감탄
007 본드걸로 출연했던 배우 올가 쿠릴렌코가 4일 오후 서울 중구 레스케이프호텔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두 번째 시체가 발견됐어요(We just found second body)….”
지난 5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 프랑스 감독의 신호와 함께 행사장에 뛰어든 배우 유연석의 영어 대사에 한 금발 여성이 “같이 가겠다(I’m coming with you)”며 심각한 얼굴로 따라나선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싱긋 미소 띤 그는 할리우드 배우 올가 쿠릴렌코(41)다.


007 본드걸 스타, 유연석과 로맨스 연기

올가 쿠릴렌코(왼쪽)가 출연한 '007 퀀텀 오브 솔러스'(2008) 포스터. [사진 소니 픽쳐스 릴리징 브에나 비스타 영화]

본드걸로 스타덤에 오른 ‘007 퀀텀 오브 솔러스’(2008)부터 ‘히트맨’(2007)의 암살 타깃 니카, 톰 크루즈 주연 SF ‘오블리비언’(2013)의 의문의 여성 등 할리우드 액션영화로 낯익은 그가 프랑스 영화 ‘고요한 아침’(프랑스어 원제 Matin Calme) 촬영차 지난달 12일 처음 한국을 찾았다.

영화는 그가 맡은 프랑스 유명 법의학자 알리스가 서울에서 열리는 심포지엄에 왔다가 한국 형사 진호(유연석)와 함께 여성 변사체 사건을 파헤치며 가까워지게 되는 범죄 드라마다. 영화 ‘페이지 터너’로 칸영화제 초청된 드니 데르쿠르 감독이 각본을 겸해 원래 올해 4월 크랭크인 예정이었지만 3월 쿠릴렌코가 코로나19 확진됐다가 회복 판정을 받은 뒤, 지난달 말 촬영에 돌입했다.

한국에서 프랑스 영화 '고요한 아침'을 촬영 중인 할리우드 배우 올가 쿠릴렌코(왼쪽부터)가 연출을 맡은 프랑스 감독 드니 데르쿠르, 상대역 배우 유연석. 극중 로맨스 호흡도 맞추게 된 쿠릴렌코와 유연석은 쿠릴렌코의 2주 격리 중 화상으로 첫인사를 나누고 촬영 첫날 현장에서 처음 만났다고. [사진 올가 쿠릴렌코 인스타그램]



격리 중 '김 사랑', 격리 끝 광장시장 인증샷
“지금 건강은 괜찮아요.” 추석연휴 마지막날인 4일 서울 레스케이프호텔에서 중앙일보와 만난 그가 소탈하게 웃었다. 매니저도 없이 홀로 내한한 그다. 음성 판정을 재확인하고 지난달 26일까지 2주간의 자가격리를 마쳤다. 격리 기간 자신의 SNS에 ‘김’ 예찬론을 펴는가 하면, 격리가 끝난 후엔 광장시장 거리 음식에 도전한 모습도 공개한 터다. “모험을 즐긴다”는 그는 첫 서울 탐험기를 “한국 음식, 패션과 사랑에 빠졌다”고 요약했다. 입맛 저격한 삼계탕‧불고기‧김치에 더해 “(영화에도 나오는) 떡볶이는 개인적으로 먹어보고 맵다는 걸 알고 있어서 촬영이 걱정된다” 농담했다.

한국에 와 2주간 자가격리 후 서울 광장시장을 찾은 올가 쿠릴렌코. [사진 올가 쿠릴렌코 인스타그램]


‘고요한 아침’은 유럽 대형 배급사 카날플러스가 투자‧배급한 프랑스 영화지만 사건 대부분이 한국이 무대다. 한국 촬영분량이 90%를 웃도는 데다 예지원, 성지루 등 한국 배우도 대거 출연한다. 한국 배우들과 처음 호흡 맞춘 쿠릴렌코는 “평소 한국영화를 즐겨본다”면서 “한국엔 좋은 영화와 감독, 배우들이 많다. 굉장히 예술적이고 접근법이 흥미롭다. 한국에서 영화를 촬영하게 돼 기뻤던 이유”라고 했다.

특히 유연석은 극중 그와 로맨스도 나눈다. 쿠릴렌코는 “유연석과 호흡은 멋지다. 우린 영어로 의사소통하는데 그는 무척 친절하고 또 놀라운 배우”라 했다. 전날 유연석이 공연하는 뮤지컬 ‘베르테르’를 다같이 봤는데 “음악, 감정연기 덕분에 한국어를 몰라도 내용이 이해됐다. 공연가이자, 가수, 뮤지컬 배우, 무대 배우로서 그의 완전히 다른 면모를 보게 됐다”면서다.


영·불·러 3개국어…첫 한국말? 감사합니다

올가 쿠릴렌코는 다섯 살 아들을 둔 엄마이기도 하다. 자신이 한국에 촬영 와 있는 동안 프랑스에 있는 아들이 다섯 번째 생일을 맞았다는 얘길 할 땐 눈에서 애정이 가득 묻어났다. 장진영 기자

우크라이나에서 우크라이나인 아버지, 러시아인 어머니 슬하에서 태어난 그는 13살에 모스크바에서 모델로 발탁돼 파리에서 모델활동을 이어가며 프랑스어‧러시아어‧영어 3개국어에 능하다. 이탈리아어‧스페인어 등도 간단한 대화는 가능하단다. ‘고요한 아침’ 현장에서 한국어를 귀동냥하며 배운 말? “지금으로선 ‘캄사합니다’뿐이죠.”(웃음)

하지만 “한국 사람끼리 무슨 얘기하는지 알아들을 때가 있다”고 했다. “이런 말 한 거 아냐? 그러면 어떻게 알았냐고 놀라더군요. 관찰력이 좋은 편이라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 표정, 몸동작을 보죠. (배우로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살다보니 익힌 기술이죠.”


코로나 확진, 저를 멈추고 삶 돌아보게 했죠
바쁘게 돌아가던 그의 삶은 올 3월 코로나19로 인해 한순간 멈춰섰다. 회복한 지금 코로나19의 경험을 묻자 그는 가만히 “처음엔 무서웠다”고 돌이켰다. “너무 많은 다른 얘기들을 듣게 되잖아요. 운 좋게도 저는 호흡기 증세가 없었고 일주일간 고열에 시달린 후엔 괜찮았어요.”

지난달 12일 내한한 할리우드 배우 올가 쿠릴렌코가 8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마스크 쓴 모습. 팬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글과 함께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그러면서 “올해는 전체가 이상했다. 모든 게 멈췄다. 그런데 이런 말이 이상할 수 있지만, 코로나19가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며 말을 이었다. 제 삶의 속도를 줄이고 저를 멈춰 세웠잖아요. 덕분에 지금까지 인생과 현재의 삶을 돌아보게 됐어요. 지구상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죠. 모든 가치와 관계를 되돌아보게 됐어요. 인생의 더 중요한 것들에 눈뜨게 해줬어요. 우린 모두 속도를 줄일 필요가 있잖아요. 물론 매우 힘겹고, 슬픈 시기지만요.”

지금도 코로나19에 시달리는 이들에겐 “여기 있는 저를 보고 용기 내달라” 면서 ”우린 강하게 버텨야 한다” 했다. “가장 중요한 건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건강할수록 병이 와도 잘 싸울 수 있다”고 강조하며 K방역에 대한 감탄도 내비쳤다. “다른 나라들은 아무것도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데 한국에 와선 모처럼 기대도 못했던 문화적인 저녁시간(뮤지컬 ‘베르테르’ 관람)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럴 수 있도록 (코로나19 사태를) 잘 관리해나가고 있다는 게 감사했다”면서다.


'기생충'서 연기하고픈 역할? 너무 많죠

올가 쿠릴렌코는 유연석의 뮤지컬 '베르테르' 관람에 대해 "코로나19로 다른 나라에선 모든 것이 멈춰선 가운데 한국에서 모처럼의 문화적인 저녁시간을 갖게 된 것이 감사했다"고 돌이켰다. 사진 속 장소는 서울 레스케이프호텔이다. 장진영 기자

한국에서의 촬영일정은 오는 20일 즈음 마무리될 예정이다. “시간이 나면 고궁(경복궁)과 마주한 국립현대미술관 두 곳을 다 가보고 싶고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재밌게 봤다는 그는 ‘기생충’에서 연기해보고 싶은 배역을 묻자 “오 세상에, 하나만 못 고른다. 엄마와 딸, 지하의 남편에게 돌아오는 그 여자까지 모두 특별했다”고 찬탄했다.

지난해 한국에도 개봉한 미스터리 영화 ‘더 룸’, 뱅상카셀과 호흡 맞춘 시대극 ‘비독:파리의 황제’ 등 장르를 넓혀가고 있는 그는 배우로서 “다양성이 제 목표”라 했다. 가장 끌리는 건 코미디 영화란다. “코미디 연기하는 것도, 보는 것도 좋아해요. ‘미트 페어런츠’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같은 클래식들, 벤 스틸러와 샌드라 블록의 모든 코미디, 르네 젤위거의 ‘브리짓 존스의 일기’도 사랑하죠. 혹시 한국 코미디 영화는 어떤가요?”
그의 눈이 반짝였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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