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때 얌전해진 아이..12명 한번에 돌보는 '줌시터' 뜬다

임선영 2020. 10. 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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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英 '재택근무' 부모들 사이서
온라인 보육, 줌시터 이용 급증
재택근무 할 동안 화상으로 놀아줘

영국에 거주하는 29세 여성 엘레오노라 디아이티스는 아침에 잠에 서 깬 뒤 단정한 옷을 차려입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재빨리 화상 프로그램 줌(Zoom)에 접속한 그를 반기는 사람은 함께 회의를 하려는 직장 동료가 아니다. 네 살짜리 아이가 그를 보고 활짝 웃고 있다.

한 아이가 컴퓨터 화면을 통해 줌시터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트위터 캡처]

디아이티스의 직업은 ‘줌시터(Zoomsitter)’다. 줌시터란 코로나 시대에 주로 화상회의에 이용되는 프로그램 줌과 베이비시터(babysitter·육아 도우미)를 합성한 신조어다. 아이와 실제로 만나진 않고 화상을 통해 아이를 돌봐주는 '언택트 베이비시터'를 의미한다.

줌시터는 부모가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 컴퓨터 화면을 통해 아이와 놀아주고 대화하는 등 돌봐주는 일을 한다. [트위터 캡처]

코로나 시대에 보편화한 재택근무를 하면서 어린 자녀 양육을 병행해야 하는 부모들의 고충이 크다. 최근 미국 워싱턴포스트, 영국 더 타임스 등 외신은 이런 부모들 사이에서 줌시터가 구세주처럼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 줌시터에게 아이를 맡겨놓고 집에서 업무를 하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언택트 보육'에 맡기고 일에 집중, 전문 회사도 속속 등장

줌시터는 일방향 온라인 수업과는 차이가 있다. 아이와 대화하며 정서적 교감을 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아이의 관심사에 따라 함께하는 활동도 다양하다. 같이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부르고, 책을 읽어주거나 글자를 가르쳐주며, 장난감을 갖고 놀아주고 같이 춤을 추기도 한다.

한 아이가 화상으로 만난 줌시터와 함께 춤을 추고 있다. [유튜브 캡처]

과거 베이비시터에게 거의 온종일 아이를 맡겼던 것과 달리, 줌시터는 부모가 집중해서 일해야 할 때 등 필요한 시간에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영국의 한 베이비시터 소개 업체는 지난 3월부터 8월까지 3~8세 자녀를 둔 부모들로부터 줌시터 관련 문의 메시지를 2만 여건 받았다. 현재 이 업체를 통해 활동하는 줌시터는 약 1400명이다. 보육 교사 출신 등 보육 관련 전문 교육 이수자들이 대부분이다.

두 아이가 줌시터를 따라 그림 그리고 있다. [유튜브 캡처]

이 업체를 운영하는 리차드 콘웨이는 “줌시터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하자 처음엔 많은 사람들이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고 했다"면서 "하지만 재택근무와 육아를 병행하는 부모들에게 해결책이라고 생각했고, 선보이자마자 순식간에 인기를 끌었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아예 줌시터만 소개하는 전문 회사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존 베이비시터 인력 회사들도 베이비시터들에게 '화상 보육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줌시터 이용 비용은 업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40분에 4만원 정도다.


한 줌시터가 세계 각국 아이 보기도, "우리의 구세주"

공간 제약을 받지 않는 ‘언택트 시터’는 세계 각국의 아이들을 돌볼 수도 있다. 영국에 사는 줌시터 대니얼 맨턴켈리는 줌을 통해 프랑스‧인도‧호주 등에 흩어져 사는 아이들 12명을 보육한다. 코로나 사태로 초등학교 교사 일을 관두게 된 그가 아이들을 위한 무료 독서 영상을 온라인에 올렸는데, 이를 본 부모들의 요청으로 줌시터 일에 뛰어들었다.

줌시터와 함께 만들기를 하는 두 아이. [유튜브 캡처]

아이를 줌시터에 맡긴 부모들의 만족도는 높다. 영국 에섹스 치그웰에 거주하는 경영 컨설턴트 마리아 라자크(35)는 의사인 남편과 출근길에 딸 타마라(4)를 어린이집에 맡겼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재택근무를 하게 된 그는 딸을 집에서 돌보기 시작했다. 그는 “아이는 온종일 내 관심을 원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남편은 집에서 화상 진료를 하느라 아이와 놀아주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줌시터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아이. [유튜브 캡처]

그는 우연히 온라인에서 줌시터 광고를 보게 됐고, 줌시터들의 프로필을 훑어본 후 보육 경험이 풍부한 디아이티스를 선택했다. 그는 “아이가 줌시터를 너무 좋아해서 믿고 맡긴다”면서 “줌시터가 없었다면, 수 개월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의 구세주”라고 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부동산 개발자업자로 일하는 제니카 아로노위츠(44)는 세 자녀 중 막내인 6세 아이를 줌시터와 놀게 한 후 일에 몰두할 수 있게 됐다.


아이가 화면 밖으로 나갈 땐 애먹어, "시간 제한해야"

줌시터는 코로나 사태로 일자리를 잃게 된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어린이집에서 파트타임 보육 교사로 일했던 디아이티스는 코로나 사태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그는 “처음엔 과연 부모들이 화면으로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을 원할지 의문도 들었지만 다른 공간에 있어도 아이를 즐겁게 해 줄 자신은 있었다”고 말했다.

컴퓨터 화면으로 줌시터를 만나는 아이. [트위터 캡처]

‘언택트 보육’의 한계도 있다. 오랜 시간 집중하기 어려운 어린아이들이 화면을 벗어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다시 화면 앞으로 데려오기 위해 줌시터들은 진땀을 빼곤 한다.

전문가들은 줌시터가 재택근무를 하는 가정에 좋은 대안이 될 순 있지만, 주의해야 할 점도 있다고 조언한다.

줌시터와 글자 공부를 하는 두 아이. [트위터 캡처]


아동 심리학자 엠마 케니는 "줌시터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아이가 방치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한창 두뇌가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화상을 통한 소통은 실제 만나 이뤄지는 상호작용만큼 도움이 되진 않는다. 줌시터를 이용하더라도, 시간은 적절히 제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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