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읽기] 가을빛이 쌓여간다

2020. 10. 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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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과잉'이 없나 돌아보고
우리 눈높이로 풍경 느꼈으면
가을 빛의 내림은 유용한 풍경
문태준 시인.

계절도 하나의 공간이다. 계절을 사는 일은 새로운 가옥에 사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이 가을이라는 시간도 하나의 살림의 공간일 테다. 이제 바람의 끝에는 서늘한 기운이 있다. 바짓단처럼 낮은 바닥으로부터, 땅으로부터 꽤 선선한 기운이 올라온다. 그리고 이 가을의 공간에 귀한 빛이 내린다.

시인 김남조 선생의 시 몇 편을 읽으면서 어제오늘을 보냈다. 시인은 시 ‘다시 가을’에서 이렇게 썼다. “그간에 여러 번/ 가을이 다녀갔는데/ 또 가을이 수북하게 왔습니다/ 이래도 되는지요/ 빛 부시어 과분한 거 아닌지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나의 복입니다” 해마다 가을을 맞았지만 또 올해도 가을이 오시니 그저 고마운 일이요, 복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면서 가을날의 빛은 얼마나 눈부시며, 한 사람으로서 이 눈부신 빛을 쐬는 일이 얼마나 분에 넘치는 일이냐고 겸허하게 이르신다. 작고 사소한 일에서 기쁨을 찾는 시인의 선한 마음이 잘 느껴진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에 가을빛이 유난히 맑고 밝다. 김남조 선생은 시 ‘햇빛’에서도 “햇빛이 아름답다/ 아슴한 옛 시절과 이후의 무궁 세월/ 더 있다면 더 있는 그때에도/ 햇빛은 아름다우리니/ 이런 풍요/ 정녕 누가 주시었나”라고 써서 빛이 이 세계에 넉넉하게 내리는 일을 예찬했다. 그러면서 햇빛은 옛 시간에도 그러했듯이 앞으로 다가올 무궁한 미래의 시간에도 내릴 것이니 아름다운 햇빛을 받아 이 목숨을 살아가는 일은 더 없는 축복이라고 표현했다.

햇빛은 내린다. 돌담과 둥근 풀잎 위에, 빌딩과 빌딩 사이로 난 아스팔트 길 위에, 숲속 호젓한 오솔길에, 버스의 차창에 내린다. 우리의 일상이라는 그 얼굴에 내린다. 느슨하게 아래로 늘어진 빨랫줄 위에, 화단의 꽃 위에, 가을의 열매 위에 햇빛은 내린다. 이 무심한 햇빛이 무엇이라고 나는 ‘아, 이 햇살, 이 아까운 햇살!’이라고 중얼거린다. 은모래처럼, 물고기의 비늘처럼 반짝이는 햇살을 두 손바닥으로 받아들면서 그렇게 중얼거린다. 세사(世事)가 난마처럼 얽혀 있지만 이러한 잠깐의 시간에서 평온을 찾지 않는다면 어디에서 숨을 돌릴 것인가. 마치 평원에 서 있는 것처럼 나는 가끔씩 풍성한 가을 햇빛 속에 서 있곤 한다.

시가 하는 일은 우리의 의식에 바람구멍을 뚫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일본의 시인 다나카와 슌타로는 우리나라에서 시집을 내면서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장소는 다 지구 위의 어느 한 점이고 사람은 다 인류 중의 한 사람”이라고 썼다. 그의 시편들 가운데에는 “우리는 풀의 손님/ 나무들의 손님/새들의 손님/ 물의 손님”이라는 멋진 시구가 있다. 우리 인간이 풀과 나무와 새와 물의 주인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풀과 나무와 새와 물의 손님이라고 말한다. 이런 관점은 인간 문명이 자연을 흔하게 훼손하는 그 무례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의 표현대로 우리의 생명은 “대지의 사랑방”에 잠시 묵고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까닭에 다나카와 슌타로는 ‘살다’라는 시를 통해 “산다는 것/ 지금 산다는 것/ 그것은 목이 마른다는 것/ 나뭇잎 사이로 새어드는 햇빛이 눈부시다는 것/ 문득 어떤 멜로디가 떠오르는 것/ 재채기를 하는 것/ 그대와 손을 맞잡는 것”이라고 우리 삶의 의미를 해석했다. 산다는 것은 지금을 사는 일이요, 그것은 갈증이 있지만, 때로 햇살처럼 눈부시며, 흥겨운 노래와도 같은 것이며, 서로의 공감을 늘려가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의미일 테다.

우리는 무용해 보이는 것들로부터 유용함을 발견한다. 돌멩이에서 보석을 캐내듯이 재화(財貨)가 아닌 것에서 돈보다 값진 것을 발견한다. 가령 이즈음에 짧게 맛보는 투명한 가을 햇살도 마찬가지다. 또한, 잠시 가만히 앉아 있는 일이나 풀벌레 소리를 듣는 일이나 저녁노을을 한 번 바라보는 일에서 우리는 행복을 맛보기도 하는 것이다.

백무산 시인은 올해 펴낸 시집에서 “풍경의 과잉”이라는 표현을 썼다. 나는 이 표현에 크게 공감했다. 시인은 우리가 갖고 있는 “키의 시선이 사라”지는 것, 그리하여 “저 너머가 사라”지는 것을 염려했다. 키의 시선을 잃고, 저 너머를 상상할 수 없는 이 시대를 시인은 풍경의 과잉이라고 말한 듯했다.

그리하여 시인은 “그림자가 스며들지 않는 풍경들/ 흙냄새를 품지 않는 풍경들/ 나무의 그늘과 풀을 밟지 않는 풍경들/ 함께 걸어가는 사람이 없는 풍경들”을 우려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계절에 바깥 풍경을 우리 눈의 높이 그대로 가끔은 바라볼 일이요, 거기에 유용함이 있음을 느껴도 볼 일이다. 가을 빛이 쌓여간다.

문태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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