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사장님', 결말은 처참.. 위험천만한 직업
코로나로 언택트가 유행이자 대세라고 한다. 비대면 수업, 비대면 회의, 비대면 배달에 이어 비대면 회식까지 한다니, 대세가 맞긴 맞는 것 같다. 바로 몇 달 전만해도 상상도 못 했을 활동들이 비대면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역설적으로 코로나 시대는 실은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비대면으로 대체할 수 없는 여러 필수적인 노동에 기대어 있었다는 점이 드러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코로나가 노동시간에 미친 영향 중 많은 논의가 일자리 감소 관련 직종 아니면 '재택근무' '디지털 업무' 등에 쏠려 있는 지금, 대신할 수 없는 노동을 하는 이들의 노동시간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기자말>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공공운수노조 전국택배지부 지부장 박성기 |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된 올해 3월 이후, 늘 아슬아슬하게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던 수많은 불안정 노동자들이 그 여파로 일자리를 잃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코로나 여파가 닥치기 전인 2월에 비해 8월까지 약 6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이 수치가 광화문 집단감염 이전에 조사된 수치임을 감안하면, 9월에는 더 많은 일자리가 감소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반면, 비대면으로도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연결고리인 택배 서비스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현재 택배 노동자들은 호황의 기쁨이 아니라 과로사 불안감을,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훨씬 늘어난 무료노동의 부당함을 목청 높여 이야기하고 있다.
▲ 택배노동자과로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택배노동자 분류작업 전면거부 돌입,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물건을 실은 간선차, 컨테이너 차가 서브(전국 각지로 물건을 보내기 위해 물량을 모으고 각 목적지별로 배분하는 센터)에 도착하면, 이 물량을 관리하는 도급사의 직원들이 물품을 하차시킵니다. 그 뒤 물품들이 휠스터(자동분류시스템으로, CJ대한통운 서브 270개 중 150여개소에 설치되어 있다)의 레일을 타고 내려가면, 레이저 장치가 바코드를 읽어 이 물품들을 배달 목적지에 따라 분류합니다.
그런데 이때, 물품이 잘못된 목적지로 분류되는 비중이 전체의 10%나 됩니다. 휠스터를 사용하기 시작한 지 2~3년이 지났고, 계속해서 개선 요구를 했지만 변한 게 없습니다. 이렇게 오분류 된 물품은 택배 노동자들이 직접 가서 확인하고 차에 실어야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택배 물량이 늘어난 만큼, 오분류된 물량도 역시 같이 증가했다. 게다가 물량은 늘어났는데 분류직원 수는 이전과 동일하니, 물품 하차와 분류가 완료되는 시각 자체가 늦춰져 출차 역시 지연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도 휠스터가 있는 곳은 사정이 낫다. 없는 곳에서는, 기사들이 물량 전체를 분류해야 해서 노동 강도가 훨씬 세다.
택배 노동자들이 이에 대해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물량이 급증하는 추석 연휴에 분류작업을 중단하겠다고 하자, 정부와 택배업체들은 부랴부랴 2000여 명의 추가 분류인력을 추석 기간에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9월 23일 오전 기준, 실제로 현장에 투입된 인력은 약속된 인원의 20%도 채 안되는 360여 명에 불과했다.
실제 추가 인력배치 현황도 추석 이후에나 밝히겠다는게 국토교통부의 입장이고, 택배업체들도 이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택배 노동자들의 작업 거부는 일단 막아놓고, 우선 추석만 모면하자는 꼴이다. 택배 노동자들은 정부와 택배업체의 약속을 믿고 작업 거부 방침을 철회했는데, 약속은 이행되지 않아 여전히 분류작업은 기사들이 몫이 되고 있다.
그런데 왜 분류작업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가? 이유는 택배 노동자들의 고용 형태와 조건에 있다. 택배 노동자들은 특수고용노동자로, 시간이 아니라 배달 건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다. 그렇기에 배송이 아닌 분류작업은 그야말로 대가 없는 '서비스'가 된다.
사측은 이미 배달 수수료에 분류작업에 해당하는 몫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 계약서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렇듯 무보수로 이루어지고 있는 분류작업을 둘러싸고 택배 노동자들이 지속적인 이의를 제기하자, 9월 말 정부는 올해 분류작업의 책임 소재를 명시하는 표준계약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 분류작업 후 쌓여있는 택배화물들 |
ⓒ 전국택배지부 |
그렇다면 택배 노동자의 '본업'인 배송에 대한 대가라도 100% 온전하게 택배 노동자가 가져가고 있을까? 특수고용노동자, 원청의 말마따나 일명 '사장님'인 이들이 가져가는 수입은 세간에 알려진 대로 월 500만, 600만 원일까?
"부익부 빈익빈입니다. 사측은 500만, 600만원이 평균 수입이라고 언론에 홍보하지만, 일반적인 택배 노동자가 그렇게 받는 게 아닙니다. 노동 없이 한 달에 1억 원 넘는 수입을 올리고 있는 대리점 소장들과, 밤 12시 넘어서까지 힘들게 일하는 극소수의 고수익자들까지 포함하여 평균을 내니 그런 금액이 나오는 것입니다.
게다가 택배 노동자들은 특수고용노동자라 퇴직금과 보너스도 없고, 대리점 소장에게 수수료 주고, 부가세와 보험료도 내야 합니다. 게다가 부가세는 대리점 소장에게 수수료 떼고 남은 돈에서 매기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 잡힌 총 배달 수수료에서 10%를 잡습니다. 결국 이런 돈, 저런 돈 주고 나면 실제 노동자의 손에 들어오는 순 수입은 처음 총 수수료의 50%도 안 됩니다."
택배노동자들은 원청이 아니라 중간 대리점과 계약한다. 즉, 특수고용노동자의 지위로 원청에 간접 고용된다. 그리고 각 대리점들은 택배 노동자에게 저마다 천차만별의 수수료율을 제시할 수 있다. 적어도 천안·아산 소재의 대한통운 대리점(CJGLS와 대한통운은 2012년 CJ대한통운으로 합병)에 고용돼 있으면서 노동조합에 속해 있는 이들은 그나마 수수료가 5% 미만이다. 하지만 아닌 경우는 최대 38%까지 떼는 대리점도 있다.
대리점 소장들이 원청에서 산정한 배송 업무 총 대가를 택배 노동자에게 공개하지 않으면서, 자기 임의대로 대리점 수수료율을 매겨 택배 노동자와 계약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지가 어려운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자리를 '구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기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는 스스로 물량을 조절할 자율성도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고용에 대한 어떤 보호장치도 없는 상황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대리점과의 계약을 유지하는 것만이 유일하게 생계를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인 한, 보수도 없이 과로만 낳는 분류작업이 부당하다고 한들 당장 거부하기가 상당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박성기 공공운수노조 전국택배지부 지부장은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에 대항하는 투쟁 과정에서, 군산의 한 택배 노동자의 경우 대리점 수수료 납부 후 수입이 400만 원이었는데 알고보니 원래는 총 수수료가 1000만 원에 달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한다. 한 마디로, 대리점 수수료율이 60%였던 것이다.
그는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몸 축내가며 일 하면서도, 자신이 일한 대가가 원래는 얼마인지도, 대리점에 얼마나 수수료를 내고 있는지도 몰랐다. 투쟁을 통해 결국 수수료를 15% 선으로 낮추고 총 수수료를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되기는 했다.
그러나 높은 수수료 문제는 여전히 많은 택배 노동자들의 일상 문제로 남아 있다. 사실상 택배 노동자들은 원청의 업무를 도맡아 하는 고용된 노동자나 다름없지만, 고용 형태 상 대리점과 계약한 '특수고용노동자', 즉 명목 상 개인사업자라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이들을 보호해 줄 어떤 안전망도 없다.
4대 보험 미가입은 물론이고 고용도 불안정하고, 대리점에 높은 수수료까지 내는 택배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뿐 아니라 생계 때문에라도 과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노동 조건은, 이전부터 일하던 택배 노동자들보다 새로 일을 시작하는 이들일수록 더 열악하다.
"높은 수수료율 때문에 사실상 대리점으로부터 갈취 당하는 거나 다름없는 신규 조합원이 있으면, 노동조합 차원에서 공식적 절차를 밟아 대리점에게 교섭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장들은 이러한 교섭 요구에 제대로 응답하지 않고 있습니다. 업체는 바로 이 전국 1700여개 대리점의 소장들을 회사의 1차적 방어막으로 삼는 겁니다.
CJ대한통운의 경우, CJ대한통운의 물량만 받아 일하는 택배 노동자들은 이제 그 전속성과 함께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는 노동자임을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리점들은 이 판결을 무시하고 '택배 노동자들은 개인사업자다, 사용자다'라고 주장하며 노동조합을 부정하고, 행정소송을 걸었습니다."
현재 화물연대 전국택배지부를 이루고 있는 CJ대한통운택배는 예전 대한통운택배 출신들이 주축이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조합원이 속한 대리점 소장에게 수수료 떼기 전, 원래 조합원이 가져가야 하는 대가가 총 얼마인지 공개하라고 요구한다. 만약 소장이 이를 거부하면 노동의 대가가 얼마인지 알 권리를 보장하라며 파업을 한다. 이런 지난한 투쟁 과정을 끊임없이 밀고 나가면서, 조금씩 여건을 바꿔 나가고 있다.
이전 CJGLS소속이었던 이들이 이러한 과정들을 지켜보며 자신의 노동 조건이 부당하게 짜여져 있다는 걸 깨닫고,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이렇게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으면 다행히 함께 싸워볼 수라도 있지만, 조합원이 아닌 경우에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도 도와줄 명분이 없어서 어렵다.
▲ 18일 서울의 한 택배 물류센터에서 택배기사들이 배송 준비를 하고 있다. 앞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전국 4천여명의 택배 기사들이 오는 21일 택배 분류작업 거부에 돌입한다고 밝혔으나 이날 오후 정부의 인력 충원 등 대책에 따라 분류작업 거부 방침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
ⓒ 연합뉴스 |
박성기 지부장은 이러한 불합리한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중간 대리점이 아니라 원청에 직고용 되는 체계로 만들어가는 노력을 지난 8년 전부터 해왔으나, 현실적으로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래서 이제 운동의 방향을 바꿔, 원청과 단협을 체결하는 우회로를 통해 현 상황을 돌파하려고 한다.
"직접고용 주장은 어려울 수 있지만, 단협을 통해서 직고용 제도를 대체하는 게 어느 정도는 가능합니다. 단협을 체결하자는 말은 사실상 원청에서 고용책임을 지라는 겁니다. 단협을 원청이 회피하는 이유도, 체결 이후에는 원청과 노동자들 간 고용 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대리점 뒤에 숨을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택배사뿐 아니라 마켓컬리, 쿠팡 등과 같이 전산화가 많이 되어 있고 원청의 지시가 직접 현장 노동자들에게 전달되는 업무 시스템을 갖춘 업체들에 대한 현행 판례로 봐도 원청은 사용자나 다름없습니다."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코로나 이전이나 이후나 동일한 수준의 빠르고 정확한 배송 서비스를 제공해온 택배 노동자들의 몸과 마음은 더 이상 버텨낼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 택배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말을 막으려는 사람들과 제도 앞에서 자신을 말할 수 있는 자, 목소리가 있는 자로 스스로를 만들어내고 사회가 그 목소리를 듣도록 만들어내고 있다. 견고해 보이는 현실에 어떻게 해서든 균열을 내고, 계속해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이들의 용기 있는 투쟁에 깊은 존경을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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