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에 함께 집 지은 30대 셋 "역세권보다 사람권"

윤경희 2020. 8. 2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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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이서 집 짓고 삽니다만』 저자 3인
부부이면서 친구 관계 한지붕 살림
전세금·대출 쥐어짜 3억대 집 장만
부딪칠 땐 '혼자 시간갖기'로 맘 풀어
강화도 산자락에 공동으로 집이자 서점·게스트하우스인 ‘책방 시점’을 짓고 사는 돌김, 우엉, 부추(왼쪽부터). 우상조 기자

한국의 집값은 연일 최고가를 갱신 중이다. 젊은 세대의 신조어 ‘영끌(집을 사려면 영혼까지 끌어모아야 할 만큼 대출을 받아야 한다)’에는 내 집 마련의 어려움이 고스란히 담겼다. 도심을 떠나 강화도에 공동주택을 짓고 사는 30대 세 명의 얘기를 담은 『셋이서 집 짓고 삽니다만』이란 책이 화제가 된 것도 이런 시대 상황 때문일 터다.

책의 주인공은 조은선(부추), 김민정(우엉), 안병일(돌김)씨. “평등하고 편안한 관계를 맺기 위해” 세 사람은 어느 날 저녁 식탁에 오른 반찬을 보고 각자의 별명을 짓고 이름 대신 서로를 부른다. (※이하 이들의 뜻대로 별명 사용).

부추와 우엉은 대학 선·후배 사이, 부추와 돌김은 부부 사이다. 부부와 아내의 친구인 세 사람은 함께 여행을 가고 독서 팟캐스트를 운영할 만큼 돈독한 사이다. 삶에 대한 가치관과 취향이 잘 맞았던 이들은 “함께 살면 어떨까” 생각했고 전등사가 있는 강화도 정족산 자락 아래 2층집을 지었다. 자주 오던 여행지이자 세 사람의 아지트인 서점 ‘국자와 주걱’이 있는 곳이라 선택한 장소다.

이곳의 메인 공간인 1층 풍경. 이들은 긴 테이블에 모여 앉자 마자 그간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상조 기자

지난 17일 잔디밭과 텃밭, 툇마루와 마당까지 있는 2층 단독주택을 찾았다. 택호는 ‘책방 시점’. 세 명의 이야기가 담긴 곳(視點), 셋이 살면서 시도한 작은 시작점(始點), 현재를 소중하게 여기자(時點)는 의미다. 1층은 서점과 북스테이(책을 마음껏 읽으며 머물 수 있는 숙박시설)로 운영 중이고, 2층이 세 사람의 주거 공간이다.

건축 비용을 물었다. 돌김은 “사람들은 왜 우리가 이런 집을 지었는지는 묻지 않고 자꾸 집값만 묻는다”며 “그런 대화가 싫어서 책을 썼다”고 했다. 실제 책에는 이 집을 마련하기까지의 녹록지 않았던 과정이 자세히 적혀 있다. 부추·돌김 부부의 전세금 7500만원과 우엉의 전세금 5000만원이 기본 자금. 여기에 ‘생활공동체’이자 ‘대출공동체’로서 함께 돈을 융통해서 총비용은 대지 1억2100만원, 건축비 2억6000만원이 들었다. 2016년 땅을 산 후 세 사람은 각종 대출은 다 받았다고 한다. 대지 매입 2년 뒤에 집짓기 첫 삽을 뜰 수 있었고, 이사 직전엔 지낼 곳이 없어 ‘국자와 주걱’ 서점 주인집에서 지내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다.

“대학 시절부터 우울하면 습관처럼 이사를 다녔다”는 우엉, “햇빛 좋은 공간에서 살고 싶었다”는 부추, 군인 부모를 따라 수없이 이사한 탓에 “안락한 집에 정착하는 게 꿈”이었다는 돌김이다. 우엉은 “세월호 참사 등 우울한 사회 문제를 겪을 때마다 ‘역세권’보다 서로를 위로해줄 ‘사람권’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마당의 나무와 잔디는 이들이 직접 심고 가꿨다. 우상조 기자

초등학교 교사인 우엉과 부추는 함께 인근 학교에서 일하고, 신문사 기자였던 돌김은 일을 그만두고 서점·북스테이를 맡아 운영한다. 집 일은 공평하게 나누되 하고 싶은 사람이 하는 게 원칙이다. 예를 들어 식사 준비는 그날 하고 싶은 사람이 하되, 아무도 하고 싶지 않으면 함께 외식한다.

“하루하루 내 결정대로 살아요.” 돌김이 말했다. 서점을 관리하고 텃밭을 가꾸는 등 할 일은 많지만, 그날 스스로 해야겠다 결정한 것을 하며 사는 ‘자기 주도적 삶’이 됐다는 이야기다. 부추는 “햇빛의 양으로 시간을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을 달라진 점으로 꼽았다. 그는 “혼자 살던 자취방이나 여기 오기 전 인천 신혼집은 해가 잘 들지 않아 시계가 없으면 도통 시간을 알기 힘들었다”며 “해가 잘 들어 참 좋다”고 했다.

우엉은 “엄청난 인파에 밀려 곤욕스러웠던 출퇴근 시간이었지만, 지금은 행복하다”고 했다. 또 그는 “배달음식을 먹지 않게 된 것도 달라진 점”이라고 꼽았다. 텃밭에서 키운 20여 종의 작물로 직접 요리해 먹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부딪칠 수밖에 없을 때, 서운함이 느껴질 때 어떻게 해결하냐 묻자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자기만의 시간을 충분히 갖는다”고 답했다. 그러면 서운한 감정은 어느새 녹아 버리고 서로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는 것. “함께 살되 각자의 시간이 최우선이다.” 세 사람이 함께 잘 사는 비결이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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