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축객령(逐客令)

박진석 2020. 7. 15.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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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석 사회에디터

기원전 237년 훗날 시황제(始皇帝)가 되는 진왕(秦王) 정(政)이 천하를 놀라게 했다. ‘외국인 추방’을 핵심으로 하는 축객령(逐客令)을 발령한 것이다. 축록중원(逐鹿中原) 경쟁의 후발주자였던 변방 후진국 진나라가 단기간에 강국으로 부상한 건 철저한 신상필벌과 적극적인 인재 영입 정책 덕분이었다. 하지만 토목 기술자로 일하던 정국(鄭國)이라는 인물이 한나라 간첩으로 밝혀지면서 외부 인재에 대한 왕의 시선은 곱지 않아졌다. 이들 때문에 찬밥 신세로 전락했던 옛 귀족들의 성화도 극단적 결정의 배경이 됐다.

축객령 시행을 막은 건 향후 명재상이 되는 이사(李斯)였다. 그 자신이 ‘외국인 노동자’였던 이사는 간축객서(諫逐客書)를 통해 “축객은 다른 여섯 개 나라를 이롭게 할 뿐”이라고 설득했고, 왕은 오판임을 인정한 뒤 명령을 철회했다. 참모의 직언과 지도자의 통 큰 수용 덕택에 진나라는 국력 약화를 피했고, 결국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가 됐다.

진시황도 시행하지 못했던 축객령이 2200여년 뒤 해동(海東) 땅에서 부활했다. ‘박원순 미투 의혹’에 대한 조사 방침을 질문한 기자에게 “후레자식”이라는 막말을 퍼부은 여당 대표를 통해서다. 진실을 알고 싶어하던 국민들까지 한순간에 ‘후레자식’으로 만들어버린 이 가공할 발언의 장본인은 진시황보다 한 수 위로 평가받을 만하다. 강압적 조치 없이도 ‘객’들이 스스로 등 돌리고 떠나도록 만들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 전부터 ‘자발적 축객’의 기운은 무르익어왔다. 철저한 진영 논리에 근거해 밀어붙였던 부동산·노동·외교·대북·법무정책 등의 잇따른 실패와 그 과정에서 들통난 표리부동 행태의 누적 때문이었다.

때마침 발표된 대통령 지지율 여론조사는 의미심장하다. ‘부정 평가’의 ‘긍정 평가’ 추월 임박 징조가 감지된 데다가 진보 성향 응답자의 지지율마저 하락세로 돌아섰다. ‘선의로 포장된 지옥행 고속도로’를 걷어내고 실용과 효율, 솔직함을 앞세운 정책들로의 방향 대전환을 하지 않으면 추세 회복이 쉽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이 정권에 이사처럼 직언을 서슴지 않을 참모가 있을까. 지도자에게 진시황처럼 오판을 인정할 용기와 혜안이 있을까. 힘차게 고개를 끄덕거릴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박진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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