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왜 그리 열을 냈는지.. 고꾸라졌다 초심 되찾았죠" [인터뷰]

권남영 기자 2020. 6. 2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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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논란 딛고 신곡 '결혼생각' 발표
신곡 ‘결혼생각’으로 컴백한 래퍼 산이가 최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소속사 세임사이드컴퍼니 사무실에서 진행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했던가. 래퍼 산이(본명 정산·35)는 스스로 “성숙해졌다”고 얘기했다. 꼬박 1년 반 전, 페미니즘 열풍 속 뜻하지 않은 논란의 중심에 섰던 그다. 지금 돌아보면 후회스럽기도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냐, 말하며 그는 옅은 미소를 띠었다.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소속사 세임사이드컴퍼니 사무실에서 최근 만난 산이는 비교적 밝은 모습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유쾌한 농담도 곁들였다. “바닥을 치고 일어섰다”는 그에게는 어떤 단단함 같은 게 묻어났다. 그를 다시 일으킨 건 음악, 그리고 곁을 지켜준 사람들이라고 했다.

산이는 한껏 들뜬 얼굴로 신곡을 소개했다. 지난 21일 미니앨범 ‘룩! 왓 해픈 투 러브?!(Look! What Happened To Love?!)’는 꽤나 만족감이 큰 작업이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앨범에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공유하는 6곡이 수록돼 있다. 20~30대가 공감할 만한 현실적 이야기를 담았다.

앨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경쾌하고 밝다. 타이틀곡은 달달한 멜로디에 솔직한 가사를 얹은 ‘결혼생각’. 대다수 수록곡들에 산이 특유의 ‘싱잉랩(Singing Rap·노래하듯 음정을 타는 랩)’이 가미됐는데, 이번에는 랩보다 보컬의 비중을 크게 늘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곡의 완성도는 물론이거니와, 산이의 강점인 ‘대중성’을 잡은 앨범이라 할 수 있겠다. 그는 “어렵거나 무거운 주제 말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기분 좋은 음악을 들려드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는 음악을 대하는 그의 ‘초심’과도 맞닿아있는 것이었다. 그와의 대화를 문답식으로 정리해봤다.

래퍼 산이. 페임어스 레이블 제공


-싱글이 아닌 미니앨범을 발표한 게 꽤 오랜만인데, 밝고 친숙한 곡들이 담겼네요.
“최근에 좀 우울한 곡들이 많았는데,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10년을 넘게 랩을 해오면서, 산이라는 아티스트가 랩으로 보여줄 수 있는 건 이미 많이 소진됐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뭔가 새로운 게 없을까 고민을 하다가 ‘노래를 해보는 건 어떨까’ 싶었죠. 계속 부르다 보니까 재미도 있더라고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었어요. 요즘은 랩보다 노래가 재미있는 게 사실이에요.”

-총 6개의 곡들이 담겼는데, 각 수록곡을 소개해주신다면요.
“전체 곡들이 사랑의 사이클을 그려요. 남녀가 만나 애틋한 감정이 생겨 사랑하게 되고 그러다 마음이 식어 현실적인 것들을 이야기하다 헤어지고 결국 후회하게 되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를 노래로 엮었죠. 1번 트랙은 ‘데이드리밍(Daydreaming)’이라는 노래인데, 이렇게 날씨 좋은 봄날 너의 손잡고 걸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는 내용이에요. 2번 트랙 ‘사람마음’은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밤새 통화하며 애정이 싹트는 미묘한 감정들을 녹였어요. 30대 넘어서 그런 감정들을 끄집어내려니까 너무 어렵더라고요(웃음). 3번 트랙 ‘자쿠지(Jacuzzi)’는 완전히 사랑이 뜨거워진 상태를 표현했고, 4번 트랙 ‘결혼생각’은 사랑하지만 결혼할 자신은 없는 현실적인 마음을 담았어요. 그 다음 5번 트랙이 ‘헤어지고 바로 쓴 노래’이고, 마지막 6번 트랙이 후회를 담은 ‘아이엠 서치 언 애스홀(I’m such an asshole)’이죠. 이번 앨범이 파트1이고, 현재 파트2도 준비 중이에요. 처음 시도해보는 시리즈물인 셈이죠.”

-앨범의 방향성을 대중적으로 잡은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항상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을 좋아해요. 어려운 곡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그냥 딱 들었을 때 듣기 좋은 음악이 좋아해요. 듣기 좋은 노래는 트렌드에 관계없이, 시대를 불문하고 항상 듣기 좋잖아요. 어렵거나 무거운 주제 말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기분 좋은 음악 혹은 감정에 와닿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어요.”

-인터뷰이로 출연했던 영화 ‘리스펙트’(2018)를 본 적이 있어요. 당시 대중적 음악과 힙합신 내 위치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균형이 잡힌 상태인가요.
“사실 예전엔 의식을 많이 했어요. 힙합신에서도 인정받고 싶고, 대중에게도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싶고. 그때는 ‘난 둘 다 잘하는데 그러면 안 돼?’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둘 다 너무 좋거든요. 그래서 다 잘하고 싶어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니까 굳이 남의 눈치를 봐가면서까지 음악을 해야 하나 싶더라고요.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는 생각이에요.”

-대중에게, 그리고 힙합신에서 인정받았을 때 각각 다른 기쁨을 느낄 것 같아요.
“대중적인 건 돈이랑 연관이 돼있으니 아주 소중하죠(웃음). 신이랑 연결이 돼있는 건 아무래도 명예 쪽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했을 때 그 음악들이 저에게 돈을 벌어다준 적은 없거든요. 아무리 음악이 중요해도 먹고 살지 못하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거죠. 제가 싫어하는데 억지로 돈을 벌려고 대중적인 음악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자체를 너무 좋아한다는 게 다행이죠. 이런 고민은 저뿐만 아니라 많은 아티스트들이 하실 거라 생각해요.”

래퍼 산이. 윤성호 기자


-이런 고민이 가장 컸던 시기는 언제인가요.
“30대 초반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힙합 음악에 권태기를 느꼈던 것 같아요. 누구를 내려 까고, 욕하고, 비싼 차 자랑하고, 돈 자랑하고, 그런 게 너무 겉멋 같고 다 부질없이 느껴졌어요. 너무 세속적이고 유치해 보이는 지경까지 갔죠. 내가 좋아하던 음악이 그거였는데 갑자기 변해버려서 저조차도 혼란스러웠죠. 말 그대로 권태기였던 것 같아요. 지금은 다시 좋아졌어요(웃음).”

-경계를 두지 않고 자유롭게 음악을 하고 싶다는 얘기로 들리네요.
“네. 저는 다 보여주고 싶어요. 분명 그걸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하나만 해, 왜 반만 걸쳐’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개의치 않으려고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며 사는 거죠 뭐.”

-대중적인 음악 안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하시는 것 같아요. 피처링 곡도 유독 많고요.
“혼자서 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여럿이 함께 오픈마인드로 뭉쳤을 때의 시너지가 되게 큰 것 같더라고요. 예전에는 저 혼자만 잘난 줄 알고 친구도 안 만들고 그냥 작업만 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푹 고꾸라지면서 ‘혼자의 힘보다 여럿이 함께하는 게 강하구나, 팀을 이길 수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페임어스(FameUs·멤버 산이 얼돼 말키 비오)’라는 레이블도 만들게 된 거예요. 같이 하는 게 훨씬 재미있더라고요. 혼자 하는 건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요.”

-‘고꾸라졌다’던 시기가 언제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무래도 제가 다 소진이 됐을 때겠죠. 신곡이 나올 때마다 무조건 음원 차트 1위를 찍었었는데, 어느 순간 차트 100위 들어가는 것도 어려워지는 순간이 온 거예요. ‘뭐지? 세대가 바뀐 건가? 내가 지는 건가? 내가 소진된 건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본인으로서는 많이 좌절하기도 했을 텐데, 그 시기를 어떻게 극복해낼 수 있었나요.
“주위 사람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그래서 팀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 혼자였으면 우울증에 걸렸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난 실패자야, 난 이제 끝났어. 난 더 이상 못해. 이렇게 잊히는 가수가 되겠구나.’ 그런데 같이 음악 하는 친구들을 만나다 보니까 생각이 바뀌었어요. 물론 순위에 연연하긴 하지만, 그렇게 크게 중요하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성실히 근면하게 꾸준히 하면 또 좋은 시간이 오리라 믿었어요.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건 진리잖아요.”

래퍼 산이. 윤성호 기자


-과거 불거졌던 논란과도 연관이 있었을까요(*산이는 2018년 말 온라인상에서 극단적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커뮤니티 워마드, 메갈리아 등과 갈등을 빚으며 ‘여혐 논란’에 휩싸였고, 반대 의견을 가진 래퍼들과 연일 ‘디스 곡’을 발표하며 설전을 벌였다.).
“그때는 크게 왔었죠. 왜 그렇게 잠도 못 자가며 열을 냈는지 모르겠어요. ‘어떻게든 질 수 없어, 내 신념을 밝혀야 돼’ 치기어린 감정에 빠져있었던 거죠. 그때 제가 한창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뒀을 때였는데, 지금은 뉴스도 안 봐요(웃음). 그렇게 너무 무리를 하니까 몸이 고꾸라지고 몸을 못 움직이니까 정신적으로 가더라고요. 지금 돌아보면 그 기간이 저에게는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였어요. 그때 내가 뭘 잘못했는지 지금은 알죠. 만약 그런 일이 다시 생긴다면 좀더 지혜롭고 성숙하게 행동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그 시기가 후회스럽기도 한가요.
“솔직히 후회스럽지 않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인 것 같아요. 왜냐면 내가 가만히 있었으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테니까요. 다시 돌아간다면 당연히 안 그러겠죠. 근데 이미 일은 일어난 것이고, 그것에 대해서 지금 후회를 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어요. 인생은 게임이 아니잖아요. 지난 과오에서 뭔가를 배우고 깨닫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가늠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힘든 시기였을 텐데,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나요.
“데뷔 이래 가장 힘들었던 때였어요. 3~4개월 동안 진짜 누워만 있었죠. 처음으로 내 의지대로 될 수 없는 게 있구나, 느꼈어요. 다행히 주위에 고마운 분들이 계서서 일어날 수 있었어요. 그땐 괜한 ‘아티스트부심’에 빠져서 경솔하게 행동했던 것 같아요. 호되게 혼났죠. 애초에 저는 많은 분들을 즐겁게 해드리고 싶어 음악을 한 건데, 초심에서 많이 벗어났던 것 같아요. 너무 이상한 쪽으로 가버렸던 거죠. 아직도 제 노트에는 ‘내 노래가 외롭고 고된 친구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적혀있어요.”

-본인도 ‘음악이 위로가 되는 순간’을 겪었었나요.
“그럼요. 어릴 적 미국으로 이민 갔을 때 정말 음악이 유일한 친구였어요. 그때 음악이 제게 엄청난 위로가 됐기 때문에 저도 (다른 이들에게) 똑같이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새벽에 버스를 타보면 학생들도 있고 출근하시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그때 그분들이 듣는 음악이 내 음악이었으면, 지치고 힘든 그들에게 잠시 힘들 걸 잊고 시간 때우는 용도라도 됐으면 좋겠어요. 그게 음악을 시작했던 초심이거든요. 다시 그걸 찾아 좋은 음악들을 만들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래서 요즘 만드는 음악들이 밝아졌나 봅니다. 앞으로 그리는 음악 방향이 있다면요.
“요즘은 참 좋아요. 페임어스라는 크루 친구들도 생기고. 모든 일이 다 잘 돌아가는 건 아니지만 뭐 목숨 걸 일도 아니잖아요(웃음). 부딪혀보고, 또 부딪혀가며, 그냥 즐겁게 음악 만들면 되는 거죠. 매번 기쁠 순 없지만, 이따금 드는 우울한 생각들은 잘라내려는 편이에요. 주춤할 시간이 없어요. 우울할 때면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노력을 하죠. 음악도 계속 생각없이 만들고 있어요. 작업실 벽에 ‘Don't think too much(돈 띵크 투 머치·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말자)’라는 문구를 붙여놨어요. 좋으면 쓰고 아니면 버리고. 자유로워지니 오히려 작업도 잘 되더라고요(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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