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은 30분의 1, 효심은 30배..돌아온 수호신 구성윤
10억대 연봉 포기하고 국내 복귀
홀로 지내는 할머니 걱정에 결단
올림픽 메달로 병역 면제도 희망
![일본 J리그 구단이 제시한 고액 연봉을 포기하고 K리그 대구FC 유니폼을 입은 골키퍼 구성윤. 그가 국내 복귀를 결심한 이유는 홀로 지내는 외할머니 걱정 때문이다. [사진 대구F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006/11/joongang/20200611000601048cehb.jpg)
“(계약을 마치고) 하늘색으로 단장한 DGB대구은행파크(프로축구 대구FC 홈구장) 내부를 바라보는데, 가슴이 뭉클했어요. 내가 정말 대구에, K리그에 왔구나. 말로 표현하기 힘든 느낌이었죠.”
축구대표팀 골키퍼 구성윤(26·대구)은 지난해까지 일본 프로축구 J리그에서 ‘톱 클래스’ 수문장으로 명성을 떨쳤다. 수퍼세이브로 하위권이던 콘사도레 삿포로가 중상위권(2017년 1부리그 승격 이후 12위→4위→9위)으로 올라서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적 시장이 열릴 때마다 고액 연봉을 제시하는 J리그 우승권 강팀의 러브콜이 줄을 이었다. 그의 선택은 K리그행이었다. 지난달 29일 시민구단 대구는 “국가대표 골키퍼 구성윤을 자유계약(FA)으로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등 번호 52번. 삿포로 시절 번호(25번)의 앞뒤를 바꿨다.
![52번이 찍힌 유니폼을 들고 포즈를 취한 구성윤. [사진 대구F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006/11/joongang/20200611000601780bgwg.jpg)
10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구성윤은 “사실 올 시즌을 앞두고 삿포로와 2024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하지만 구단과 상의해 서로 계약을 해지했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으로 대구 행을 결정했다”고 털어놓았다.
K리그로 건너온 표면적인 이유는 입대다. 만 27세를 넘기기 전에 K리그 팀에 등록해야 상무축구단 지원 자격이 생긴다. 올 시즌을 마친 뒤 K리그에 건너와도 되는데, 굳이 한 시즌을 앞당겨 한국 땅을 밟은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퍼졌잖아요. 관련 뉴스를 접할 때마다 어릴 때부터 길러주신 외할머니가 걱정됐어요. 칠순을 넘긴 외할머니가 낡은 집에서 혼자 생활하시다 혹시 편찮으시면…. 도무지 축구에 집중이 되지 않았어요. 하루라도 빨리 한국에 돌아와야 했죠.”
구성윤은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해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졌다. 어머니는 지인 소개로 일본에 건너가 고베의 한식당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외할머니는 그런 그를 키워주신 든든한 보호자였다. 그는 “한국에 돌아온다고 할머니께 연락드렸더니 ‘무슨 일 있나’라고 물어보셨다. 경상도 분이라 무뚝뚝하지만, 속정은 깊으시다”고 말했다.

예정보다 일찍 한국에 돌아오는 바람에 구성윤은 고액 연봉을 포기했다. 삿포로 시절 연봉은 10억원대였는데, 대한해협을 건너자 연봉이 3600만원으로 뚝 떨어졌다. ‘해외팀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한 한국 선수는 K리그에 복귀할 때 해외 진출 당시 신인 대우로 계약한다’는 프로축구연맹 규정을 적용한 결과다. 연봉이 30분의 1토막 났다.
구성윤은 “돈을 먼저 생각했다면 지금 K리그로 건너온 것 자체가 난센스다. 할머니를 가까이서 볼 수 있고, 대구라는 멋진 팀을 만났으니 그걸로 행복하다. 그간 모은 돈으로 지난해 어머니한테 고베에 식당을 차려드렸다. 아직 젊으니 돈은 앞으로 더 벌면 된다”며 웃었다.
내년으로 연기된 도쿄올림픽은 구성윤의 중요한 도전 과제다. 와일드카드(23세 초과 선수)로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대표팀에 합류하기를 기대한다. 물론 메달을 따 병역 면제 혜택을 받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렇다고 그게 전부는 아니다.
![구성윤이 허벅지에 라틴어 숫자로 새겨넣은 리우올림픽 경기 당일 날짜들. 리우에서 경험한 아쉬움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각오의 표현이다. [사진 구성윤]](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006/11/joongang/20200611000603880xwvz.jpg)
그는 “2016년 리우올림픽에 한국 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로 나섰다가 8강 문턱에서 도전을 마쳤다. 조별리그 두 경기와 8강전, 총 세 경기에서 딱 한 골을 내줬는데, 그 실점 하나에 모든 꿈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이후 ‘언젠가 꼭 다시 올림픽 무대를 밟아 리우의 아픔을 씻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전했다. 그의 허벅지에는 리우올림픽에서 출전한 세 경기의 날짜를 라틴어 숫자로 표기한 문신이 있다. 축구 인생에서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구성윤은 “한해 한해 경력이 쌓일수록 유니폼 가슴팍에 달린 엠블럼의 무게감이 커진다. 대표팀이든, 소속팀이든, 나를 불러주고 내가 몸담은 그 팀을 위해 모든 걸 바칠 각오가 돼 있다. 당장은 대구의 상위 스플릿 진출에 ‘올인’할 참이다. 내년 여름 이후 군에 입대하면 군인정신이 더해져 더욱 단단한 골키퍼가 되지 않겠느냐”며 미소를 지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일본 콘사도레 삿포로에서 대구FC로 건너온 축구대표팀 수문장 구성윤. [사진 대구F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006/11/joongang/20200611000604968idqi.jpg)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