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한명숙 사건' 자체 진상조사 나설 듯
(서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검찰의 증언조작 의혹으로 번지고 있는 한명숙(76)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법위반 사건에 대해 법무부가 먼저 진상조사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 전 총리 사건은 과거 유죄가 확정된 재판에서 증거로 채택됐던 한신건영 전 대표인 고(故) 한만호씨의 비망록이 최근 일부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당시 검찰 조사에 강압이 있었다는 의혹과 함께 정치권의 재조사 요구가 커지고 있다.
특히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넸다고 검찰 수사과정에서 진술한 한씨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한 배경을 두고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과 당시 검찰 수사팀이 진실 공방을 벌이는 모양새다.
법무부 관계자는 26일 "한 전 총리 사건에 대한 후속조치 계획이 확정되는 대로 관련 내용을 발표하겠다"고 전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 2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구체적인 정밀한 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공개된 비망록에서 한씨는 추가 기소에 대한 두려움과 사업 재기를 도와주겠다는 검찰의 약속 때문에 조사에서 한 전 총리에 돈을 건넸다고 거짓 진술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씨는 구속수감돼 있던 2010년 70여차례의 검찰 조사를 받았다.
뒤이어 수사 당시 한씨와 구치소에 함께 수감돼 있다 한 전 총리 사건 재판 때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동료 수감자 2명을 검찰이 회유하고 사전에 연습까지 시켜서 거짓 증언을 하게 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이에 대해 수사팀은 비망록이 재판 과정에서 증거로 제출돼 엄격한 사법적 판단을 받은 문건이며 법원에서 거짓으로 판명됐다는 입장이다. 또 강압 수사는 없었고 동료 수감자들과 접촉한 건 한씨의 위증 경위를 밝히기 위해서였다고 해명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여권 등에서 '한명숙 사건'을 갑자기 들고나온 배경에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인 검찰개혁 드라이브를 끌고가는 데 필요한 동력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당시 수사와 공판에 참여한 검사들을 7월 출범하는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대상으로 삼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당 대표 시절 한 전 총리 사건에 대해 "정치적으로 억울한 사건"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해찬 대표는 언론 인터뷰 등에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한 전 총리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관련, 재판거래 의혹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법무부의 재조사나 공수처 수사를 재심 청구로 가는 우회로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재심은 문턱이 높아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재심은 검사 등이 직무에 관한 죄로 확정판결을 받았을 때 가능하다. 수사팀이 한씨를 회유나 협박해 진술을 받아낸 혐의(위증교사·직권남용)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돼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관련 범죄의 공소시효는 7년으로 이미 지나 현재로선 기소 자체가 어려워 보인다
검사 징계 시효도 지나 감찰도 쉽지 않다. 법조계에서도 현재로서 할 수 있는 대응은 법무부의 진상조사가 최선이라는 관측이 많다.
만약 법무부의 자체 진상조사에서 당시 수사팀의 수사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확인된다면 검찰개혁의 명분을 확보하는 건 물론 재심 등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법원은 2015년 한 전 총리에게 유죄를 확정했지만 일부 대법관들은 반대의견에서 "검사가 한씨의 진술이 번복되지 않도록 부적절하게 애쓴 흔적이 역력한 사안"이라며 검찰의 강압수사 가능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법무부와 검찰, 법원은 명예를 걸고 스스로 진실을 밝히는 일에 즉시 착수하라"고 촉구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후 라디오 인터뷰 등에서 법원과 검찰을 겨냥해 '무조건 결백하다, 제대로 했다'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각 기관 수뇌부에서 의심해 볼 여지도 있다고 생각하고 한 번 더 들여다보고 조사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 한 전 총리 사건을 자체적으로 조사하기 위한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추 장관은 국회에서 한씨의 비망록에 대해 "고도의 수사기관의 기획되고, 수십차례 수감 중인 증인을 불러내서 협박하고 회유한 그런 것들로 채워진 것으로 안다"며 "과거 수사 관행이 설령 덮어졌다 하더라도 더 이상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법무부 안팎에서는 법무부가 자체적인 진상조사단을 꾸리는 방식이나 대검찰청을 통해 검찰 내부에서 먼저 진상조사를 하도록 특별지시를 내리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조사단에 외부 전문가를 포함시킬 수도 있다.
법무부가 진상조사에 착수하면 비망록에 대한 검증을 비롯해 한씨의 잦은 소환과 별건 압박 의혹, 재소자 회유 여부 등 검찰의 증언조작 의혹 전반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당시 수사·공판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치적 논란이 되는 한 전 총리 사건 판결의 정당성에 조사의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검찰의 강압수사 의혹을 규명하고 검찰개혁 측면에서 제도를 개선하는 쪽에 집중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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