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렬 "코로나 시국에 장터 간 이유? 낀 세대 속풀이 필요"
위로 절실한 상인 찾아 고민 듣고자 나서
"우리 세대 즐겁게 사는 법 스스로 찾아야"
“직접 경기 광명시장에 가보니 생각보다 힘든 분들이 더 많더라고요. 코로나19로 결혼식이 미뤄지면서 한복집은 주문이 싹 끊겼고, 딸이 두 달 전에 출산했는데 얼굴 한번 못 보고 음식만 문 앞에 두고 오는 경우도 있고. 그런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웃음을 되찾아드리자 싶었습니다.”
지난 17일 KBS1 ‘6시 내 고향’에서 새 코너 ‘이홍렬의 장터쇼’를 선보인 개그맨 이홍렬(66)의 소감이다. 첫 방송 전 서울 서소문에서 만난 그는 “원래는 무대도 크게 만들고 크게 할 생각이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날짜도 계속 미뤄지고 규모도 축소돼서 아쉬웠다. 그런데 직접 가서 상인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더 절실해졌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코너는 이홍렬이 지난 1월 가수 전영록이 진행하는 ‘섬마을 하숙생’을 찾으면서 기획됐다. 두 사람은 중학교 동창으로 절친한 사이다. “어떻게 보면 저희가 낀 세대예요. 보릿고개를 직접 겪진 않았지만 가난이 뭔지를 아는 세대고, 부모를 모셨지만 자식들에게 기댈 순 없는 노후준비가 안 된 세대죠. 그래서 더 즐겁게 사는 법을 스스로 찾아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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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도 부모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2015년 시작한 연극 ‘여보, 나도 할 말 있어’ 지방 공연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3년 전 목에 무리가 와서 평상시에는 말을 아끼지만, 무대에 올라가면 모든 걸 쏟아낸다고. “제 좌우명이 ‘그날은 온다’예요. 34살 늦깎이 대학생이 됐을 때도 공부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졸업하는 날은 반드시 오잖아요. 그걸 늘 염두에 두고 있으면 과정을 즐길 수 있는 거죠.”
그는 연극 중 꼭 전달하고 싶은 대사로 “부모도 자식을 기다려주지 않지만, 자식도 부모를 기다려주지 않아. 애들 금방 커”를 꼽았다. 1979년 TBC 라디오 ‘가요대행진’ DJ로 데뷔한 그는 “신인 시절 배우 신영균을 인터뷰하며 배운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가족사진 찍기를 32년째 실천하고 있다”며 이 방법을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 당시 신영균 선생님이 앨범을 보여주는데 30여장의 사진에 지난 30년이 그대로 담겨 있더라고요. 아이들이 커 나가는 모습도 감동적이지만, 내가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겠다 하는 답을 어렴풋이 찾을 수 있어요. 이미 결혼한 지 몇 년 지나서 못한다고요? 그럼 옛날에 가족사진을 찍었던 장소에 가서 그대로 찍어보는 방법을 추천하죠. 91년도에 일본 유학 당시 찍은 가족사진을 27년 만에 재현했는데 1년 동안 그걸 준비하는 내내 행복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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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인기 신기”
그가 추구하는 웃음의 본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소외되는 사람 없이 함께 웃을 수 있는 개그를 지향한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로 2년 연속(1993, 1994) MBC 코미디 부문 대상을 받을 때도, SBS ‘이홍렬쇼’(1996~2001)를 진행할 때도 출연자들을 아우르는 역할을 했던 그는 MBC ‘코미디의 길’(2014)이나 tvN ‘최신유행 프로그램 2’(2019) 등 후배들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에도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페이크 다큐라는 새로운 형식도, 중년 유튜버라는 설정도 장애가 되지 않았다. 2018년부터 유튜브 채널 ‘이홍렬TV’를 운영 중인 그에게는 낯설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촬영 장비도 많아지고 편집 기술은 발전했지만, 코미디의 기본이나 웃음의 포인트는 그대로인 것 같아요. 바보 캐릭터도 맹구나 영구 이전에 배삼룡도 있었고, 윤부길도 있었죠. 최근 스탠드업 코미디가 주목받고 있는데 제가 데뷔했을 땐 전부 혼자 개그를 했었으니까요.”
유튜브에선 17년간 함께한 반려묘와의 이별을 담은 ‘풀벌 이야기’와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하는 ‘강화아재’ 등을 직접 제작해 선보이고 있다. SBS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2000~2002)의 짧은 영상을 보고 찾아온 어린 팬들도 있다. “신기하죠. 제가 젊은 친구들과 경쟁할 순 없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따뜻한 재미를 주는 영상을 꾸준히 올리자는 원칙을 지키다 보니 새로운 소통 창구가 되더라고요. 이 나이에 MCN 회사(크리시아미디어)와 계약도 하고.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성과는 자연히 따라오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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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례 121쌍 목표…후원만 하면 누구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홍보대사를 22년째 하고 있는 그는 “개그도, 나눔도 죽을 때까지 이어나가고 싶다”고 했다. “남한테 웃음을 주는 일도, 마음을 나누는 일도 향수와 비슷한 것 같아요. 남한테 뿌리면 나한테도 몇 방울 튀거든요. 숫자가 주는 에너지도 크죠. 일단 목표를 세우면 그걸 이뤄나갈 수 있는 동력이 생기니까요.”
2012년 국토종단을 통해 3억원 모금에 성공해 남수단에 자전거 2600대를 선물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그의 다음 목표는 에티오피아 어린이 돕기다. 한국전 참전용사 6037명 중 전사자 숫자(121명)만큼 후원하기 위해 121쌍 주례 프로젝트에 나섰다. 그가 결혼식 주례를 보고 답례로 신혼부부나 양가 식구들이 새로운 후원자가 되는 것이다.
“옛날엔 아는 사람만 주례를 봤는데 요즘은 결혼을 많이 안 해서 모르는 사람도 해요. 결혼식 전에 한번 보면 아는 사람이 되잖아요. 필요하면 연락주세요. 지금까지 44쌍을 했으니 갈 길이 멀거든요. 이걸 하다 보면 누가 제일 즐거울까요. 저예요. 제 기록을 스스로 경신하고 있잖아요. 하하.”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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