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사외이사 5대 뉴 트렌드 | 조윤제·정동채 등 친여 인사 대기업行 30세 여성 AI 전문가 등 신선한 인물도
이번 주주총회 시즌에 신규 선임된 사외이사 면면을 살펴보면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흐름이 포착된다. 여성 비중이 늘고 인권·노동 전문가가 급부상했다. 또한 실무 전문가가 대거 영입됐다. 과거 수차례 사외이사를 맡았던 경력직 사외이사 인기가 높았던 반면 철학·수학 교수 출신의 ‘이색 사외이사’도 눈길을 끈다.

1. 재계 불어닥친 女風
여풍이 거세게 불었다.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영향 때문이다. 이번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따르면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인 주권상장법인은 이사회의 이사 전원을 특정 성(性)의 이사로 구성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앞으로 자산총액이 2조원을 넘는 기업은 최소 여성 이사 1명 이상을 이사회에 둬야 한다는 뜻이다. 개정안은 오는 8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지만 3월 주주총회 때부터 선제적으로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한 기업이 많다.
눈에 띄는 곳은 삼성 계열사다. 총 7개 계열사가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했다. 삼성SDI는 김덕현 법무법인 진성 변호사를, 삼성물산은 제니스 리 김앤장법률사무소 고문을, 삼성SDS는 조승아 서울대 경영대 교수를 영입했다. 또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김유니스경희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삼성전기는 여윤경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삼성카드는 임혜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를 각각 선임했다.
특히 삼성중공업은 여성 전문 인력이 드문 조선업체에서 선제적으로 여성 사외이사를 영입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삼성중공업은 조현욱 더조은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삼성중공업 측은 “조 사외이사는 회사법을 전공한 법률가로서 최근 강조되고 있는 기업의 법적 책임과 준법경영 기조에 맞는 경영 의사 판단을 할 수 있는 적임자다. 다년간의 지방법원 판사, 부장판사 경험과 다양한 분야의 사회활동을 두루 거친 법조인으로 주주·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을 통해 주주권익 보호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선임 이유를 밝혔다.
여성 사외이사 모시기에 열을 올리는 건 삼성만이 아니다. 코스피 시가총액 2위 SK하이닉스는 최근 주총에서 한애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철강업계에서는 세아베스틸이 윤여선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장을 영입하며 여풍에 합류했다. 한화솔루션은 어맨다 부시 세인트오거스틴캐피털파트너스 파트너를 사외이사에 선임했다. 한화솔루션은 자산 2조원 이상 한화그룹 계열사 중 유일하게 여성 등기임원을 보유한 회사가 됐다.
전통적으로 ‘유리천장’이 높은 금융권도 여성 사외이사 모시기에 힘쓰고 있다. 신한금융지주회사는 3월 26일 윤재원 홍익대 경영대 교수를 신규로 선임했다. 2011년 전성빈 서강대 경영대 교수가 물러난 이후 9년 만에 선임된 여성 사외이사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내 200대 상장사 등기임원 중 여성은 100명 중 3명에 불과했다. 등기임원 1444명 중 39명이 여성 등기임원으로 전체 2.7%에 그쳤다. 국내 200대 상장사 중 여성 등기임원이 1명도 없는 곳 역시 전체 84%로 나타났다. 반면 미국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200대 기업 등기임원 중 여성 등기임원 비중은 28.4%, 총 2410명 중 684명이나 된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외이사는 경영진이 그 기업과 관련된 다양한 관점들을 직접 청취할 수 있는 주요 채널이다. 소비자 절반을 차지하고 또 현상에 대해 남성과 다른 참신한 관점을 제공할 수 있는 여성 사외이사 참여는 바람직하다. 유럽 등 진보적인 성향이 강한 일부 나라에서는 한시적으로 여성 사외이사 비율을 법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한시적 조치를 고려해볼 만하다”고 설명했다.

2. 인권·노동 전문가 관심 ‘부쩍’
이번 사외이사 선임의 또 다른 트렌드는 인권과 노동 전문가 부상이다. 근래 노동자 처우와 인권에 대한 기업 관심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는 추세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정부 코드와 맞는 ‘친여(親與) 인사’를 우선 고려한 결과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삼성SDI가 신규 선임한 김덕현 변호사와 박태주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이 대표적이다. 김덕현 변호사는 판사 출신으로 노무현 정권 시절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을 지내고 한국여성변호사회장 등을 역임했다. 박 선임연구원은 참여정부 때 청와대 노사개혁TF팀장을 맡았고 이번 정부 들어서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이 있다는 공통점도 눈에 띈다.
삼성물산은 정병석 한양대 경제학과 특임교수를 신규 선임했다. 참여정부 때 고용노동부 차관을 역임한 고용·노동정책 전문가다. 삼성전자는 아예 신임 이사회 의장에 기획재정부·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낸 박재완 사외이사를 선임했다.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 이사회의 대표 자리에 고용노동부 장관 출신 인물을 선임한 것은 상징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 밖에도 롯데케미칼은 고용노동부 기획조정실장과 서울지방노동위원장, 한국기술교육대 고용노동연수원장을 역임한 전운배 법무법인 광장 고문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현대백화점은 노민기 전 노동부 차관을 사외이사로 재선임, 오는 2022년까지 임기를 연장했다. 한진칼은 최윤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최 교수는 노동법 전문가로 2014년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3. 전문성 강화…적장도 OK
사외이사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한 가지는 기업 경영 전반에 필요한 전문지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올해 새로 선임된 사외이사를 살펴보면 실무 부문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인사가 유독 눈길을 끈다. 특히 금융권에서 이 같은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은행에서는 과거 ‘적장’이었던 경쟁사 최고경영자(CEO)를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KB금융지주는 올해 주총에서 권선주 전 IBK기업은행장을 신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권 전 행장은 행원으로 입행해 리스크관리본부장과 금융소비자보호센터장을 거친 국내 첫 여성 은행장이다. 지난 2016년 기업은행장에서 물러나고 나서는 한국금융연구원 초빙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왔다. 사실상 4년 만에 금융권 복귀다.
씨티은행은 최근 지동현 전 KB금융지주 부사장을 신임 사외이사로 모셨다. 조흥은행 부행장을 거쳐 LG카드 부사장을 지낸 그는 KB국민은행 연구소장, KB금융 전략 담당 부사장을 역임한 뒤 지금의 KB국민카드를 만든 인물이다. 당시 KB금융에서 카드사설립기획단을 이끌었던 그는 이후 KB국민카드에서 경영관리 담당 부사장을 맡았다.
은행뿐 아니다. 증권사도 올해 금융 전문가들을 사외이사로 대거 선임했다. 미래에셋대우가 영입한 조윤제 서강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가 대표적이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 경제분석관, 재정경제원 장관 자문관, 노무현정부 대통령 비서실 경제보좌관을 역임했다. 주영국 대사와 주미국 대사를 지내며 글로벌 정세 파악에 탁월하다는 평가다. 이젬마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 영입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그는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중소기업창조경제확산위원회 위원, 금융위원회 신성장위원회 위원, 금융위원회 혁신금융 민관합동 TF 위원 등을 역임한 재무·회계 전문가다.
NH투자증권은 홍석동 전 NH농협증권 부사장과 정태석 전 광주은행장을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홍석동 사외이사는 농협중앙회 자금시장부장과 자금운용부장을 거쳐 NH농협증권 부사장 등을 지냈다. 정태석 사외이사는 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위원, 교보증권 대표이사, 광주은행장 등을 지냈다. 금융감독원 부원장을 지낸 전홍렬 사외이사와 삼일회계법인 고문인 박상호 사외이사가 재선임되면서 NH투자증권은 5명의 사외이사 중 4명을 금융 전문가로 채웠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대학교수나 관료 출신 사외이사가 많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실무 전문성을 갖춘 인사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금융당국이 지배구조 안정을 위해 이사회의 권한과 책임을 강조하면서 달라진 풍경이다. 특히 앞으로 코로나19로 인한 자본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돼 금융 전문가를 찾는 수요는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4. 구관이 명관? 경력직 ‘인기’
주총을 앞두고 재계에서는 때아닌 ‘구인난’이 벌어졌다. 기업들이 저마다 신규 사외이사 영입전에 뛰어들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실제 국내 기업 상당수가 사외이사 인력풀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 주총에서 ‘경력직 사외이사’가 화두로 떠오른 이유도 여기 있다. 다른 기업에서 다년간 사외이사 경험을 쌓은 인물이 신임 사외이사에 대거 발탁된 것이다. 이전 회사에서 자격 검증이 이뤄진 만큼 리스크가 적은 데다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선임 안건이 통과되기도 보다 수월하기 때문이다. 임기가 끝난 사외이사들을 ‘돌려 막기’ 하는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2~3개 기업 사외이사를 겸임하는 이도 여럿 된다. 현행법상 공무원과 지방 공기업을 제외하고는 사외이사 겸직에 대한 규제가 없다.
LS ELECTRIC이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한 최종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2014년 3월부터 맡아왔던 SK하이닉스 사외이사 임기가 만료되자마자 바로 LS ELECTRIC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 현재 그는 두산건설 사외이사도 맡고 있다.
진에어 신임 사외이사로 선임된 정중원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도 ‘전문 사외이사’라고 부를 법하다. 정 고문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롯데손해보험 사외이사, 2017년 차바이오텍 사외이사, 2018년부터는 팜스코 사외이사로 재직했다.
현대백화점은 고봉찬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를 3월 신규 사외이사로 선택했다. 고 교수는 2012년부터 무려 8년간 신도리코 사외이사를 맡아왔다. 2017년 임기가 시작된 현대차증권 사외이사에도 재선임됐다. 신도리코 사외이사 임기는 2021년 3월까지였으나 최근 사임계를 제출했다.
현대미포조선은 유승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를 신규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회계 전문가인 그는 2008년부터 2015년까지 7년간 한올바이오파마 사외이사를, 2015년부터 올해 3월까지 5년간 KB국민은행 사외이사를 역임했다.
최근 한진칼에서 사상 첫 사외이사로 이사회 의장에 선임된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SK텔레콤, 현대캐피탈)을 비롯해 박영석 자본시장연구원장(SKC, 롯데정보통신), 이동명 전 의정부지방법원장(동양, DPC)은 이미 각각 다른 기업 두 곳의 사외이사로 일하고 있다. 대한항공 사상 첫 외부 출신 이사회 의장을 맡게 된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도 마찬가지다. 현재 CJ대한통운과 SK브로드밴드 사외이사로 활동 중이다.
5. 수학·철학…순수학문에 주목
학계 출신 사외이사는 기업 경영과 관련된 학문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교수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번 주총에서, 경영과 무관해 보이는 ‘순수학문’ 전공 교수를 사외이사로 모셔온 기업들이 있어 관심이 쏠린다.
한화그룹 지주사 ㈜한화는 이석재 서울대 철학과 교수를 신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한화가 인문학 출신을 사외이사로 선임한 것은 20년 만에 처음이다.
이 교수는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석사를 거쳐 미국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철학과에서 부교수를 거쳐 지금은 서울대 인문대 철학과 교수로 있다. 2013년에는 철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로저스(ROGERS)상’을 수상한 바 있다.
재계에서는 이번 인사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경영 방침에 따른 변화라고 풀이한다. 김 회장은 올해 경영 목표로 ‘정도경영’의 전사적 실천을 주문하며 기업 상생과 사회적 가치를 강조한 바 있다. 한화 이사회는 “이 교수는 서양 근대철학계 영향력 있는 전문가다. 한화의 경제적 가치와 더불어 ‘함께 멀리’의 사회적 가치 향상을 위해 신규 사외이사로 추천했다”고 밝혔다.
한화그룹이 SK의 사회적 가치 관련 사업을 분석·적용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 교수는 현재 재단법인 최종현학술원 이사도 역임하고 있다. 최종현학술원은 SK그룹 비영리 공익재단으로 이사장은 최태원 SK 회장이다.
엔씨소프트는 수학과 교수를 사외이사로 영입해 화제를 모았다. 최영주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가 주인공이다. 한국여성수리과학회장과 대한수학회 학술 부회장을 역임한 인물로 수학계에서는 저명인사다. 정수론을 바탕으로 정보통신과 보안 융합 연구에서 뛰어난 연구 성과를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과 수학은 일견 생경한 조합처럼 보이지만 사실 꽤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정밀한 캐릭터와 치밀한 게임 스토리를 구성하는 데 수학적·과학적 사고가 필수 소양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최 교수는 수리 전문가로서 깊은 이해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사회의 다양성을 제고하고 적극적으로 의사를 개진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화제의 최연소 사외이사
90년생 카카오 사외이사, 박새롬 성신여대 조교수

카카오는 지난 3월 25일 제주도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신규 사외이사로 윤석 전 삼성액티브자산운용 대표이사, 최세정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와 함께 박 교수를 선임했다. 박 교수는 1990년 2월생으로 역대 국내 대기업 사외이사 중 최연소이자 첫 1990년대생이다. 그동안 카카오는 이사회뿐 아니라 임원 연령대를 점차 낮추며 젊은 피를 수혈해왔다. 박새롬 교수가 사외이사가 되면서 평균 연령이 더 낮아지게 됐다.
2018년 서울대 공대 산업공학과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서울대 수학기반산업데이터해석 연구센터 연구원을 거쳐 지난해 9월부터 성신여대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로 인공지능(AI)과 보안, 기계학습, 통계학습, 데이터마이닝(대용량의 데이터 속에서 유용한 정보를 발견하는 과정) 등에 대해 연구 중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박 교수 등 여성 사외이사 비율을 확대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외이사를 선임함으로써 사업 방향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 대해 폭넓은 조언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노승욱·나건웅·박지영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53호·별책부록 (2020.04.08~04.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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