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반동적인 아리랑이라니.. 그 이름도 '애국 아리랑'
[오마이뉴스 이준희 기자]
아리랑과 민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생각, 오늘날은 거의 상식이 되어 있다. 하지만 아리랑이 처음부터 그런 민족의 노래였던 것은 물론 아니다. 특정 지역에서 일상의 노래로 불리던 지역 민요 아리랑이 한반도 곳곳으로 퍼지기 시작한 때는 19세기 후반부터였고, 대중성을 갖춘 아리랑이 민족성까지 품게 된 때는 1920년대 이후였다.
1945년까지 식민지 상황을 견디고 이겨내는 데에 아리랑이 민족의 노래로서 기여한 바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때로 당대 상황을 왜곡하거나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한다. 예컨대, 아리랑이 자유롭게 듣거나 부를 수 없는 금지곡이었을 거라 믿는 많은 이들의 생각과 달리, 당시 음반이나 방송 등 매체에서 아리랑에 제약이 가해진 흔적은 그리 많이 확인되지 않는다. 그리고, 민족의 노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오히려 그에 반하는 내용이 담긴 특이 아리랑도 소수이지만 분명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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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 아리랑> 음반 딱지 |
ⓒ 이준희 |
서백리아 변두리에 밤새는 님아/ ○○의 ○○ 것은 ○○ 달이냐
○○바늘에다 명주실을 끼워/ 사랑 애자 나라 국자 애국의 글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가 여기로구려
옥으로 부서지려 휘○는 ○○/ 장고봉 상상봉에 대화송 되겠소
총대 메고 배낭 지고 넘는 고개는/ 대동아 새 동포에 평화가 온다
간단한 피리 반주에 맞춰 <긴아리랑>처럼 느릿하게 부르는 곡조이지만, 널리 알려진 그 어떤 아리랑과도 다른 독특한 가락이기도 하다. 부분적으로 명확하지 않은 대목도 있으나, 채록된 가사만으로도 노래의 대강을 살피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다.
서백리아는 시베리아의 한자 표현, 장고봉은 1938년 여름에 일본과 소련이 일시 전투를 벌인 두만강 하류의 언덕이다. 1942년 당시 소련과 일본 사이에 긴장이 여전했던 만주 어딘가로 일본군이 되어 출정한 남자의 애국, 그 남자를 그리며 후방에서 '대동아'의 평화를 기원하고 수를 놓는 여자의 애국. 그러한 정경을 노래한 곡이 바로 <애국 아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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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사자 박영호와 가수 장옥화 |
ⓒ 이준희 |
일본의 침략전쟁 수행에 부응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대중가요를 통상 군국가요라 이르는데, <애국 아리랑>은 자료 미확보로 인해 지난 2017년에 민족문제연구소와 옛가요사랑모임 유정천리에서 제작한 군국가요 선집 음반에도 수록되지 않았다. 이번에 확인된 내용으로 보면, 만주 개척이민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아리랑 만주>(1941년)나 가사 일부에 군국주의 내용을 슬쩍 반영한 <신작 아리랑>(1942년)에 비해 <애국 아리랑>의 표현 정도가 한층 더 노골적임을 알 수 있다. 그야말로 군국의 아리랑을 대표하는 곡으로 꼽을 만하다.
<애국 아리랑> 음원은 국악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음악의 교차로>(22:00~24:00)를 통해 오는 19일 목요일에 공개될 예정이다. 음반에 손상이 있어 녹음 상태가 좋지는 않지만, 전문가의 일차적인 복원 작업을 거쳐 가사 채록이 가능할 정도로는 다듬어졌기에 이번 공개가 가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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