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테이블 레스토랑·그들만의 전시..프라이빗 이코노미 뜬다

박수호, 노승욱 2020. 3. 16.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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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리오갤러리는 코로나19의 여파로 열리지 못한 아트바젤 홍콩(Art Basel Hong Kong) 출품작을 삼청동 전시장에서 ‘프라이빗 전시’로 선보이고 있다. 프라이빗 전시란 사전예약을 통해 소수 고객에게만 전시장을 개방하는 전시를 뜻한다. 예약제 운영을 알리자 미술 애호가 사이에서 반응이 뜨겁다. 역시 같은 삼청동 소재 학고재갤러리도 소장전을 열면서 프라이빗 전시를 내걸었다. 우찬규 학고재갤러리 회장은 “코로나19 사태를 떠나 마니아, 컬렉터들이 ‘나만을 위한 전시’에 매력을 느끼면서 한두 시간 단위로 예약해 갤러리를 방문한다. 쾌적하고 밀도 있는 감상, 취향에 부합하는 구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이런 트렌드는 계속될 것”이라 전망했다.

# 요즘 식당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지만 고급 호텔 레스토랑은 상대적으로 타격이 덜한 편이다. 특히 룸은 점심이나 저녁에 만석이다. 조선호텔 관계자는 “식음료 쪽은 코로나19 여파가 있지만 그래도 경제인 중심으로는 삼삼오오 계속 비즈니스 미팅을 이어가는 분위기다. ‘호텔이 상대적으로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인식 덕분에 프라이빗 룸(별실)을 중심으로 꾸준히 예약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호텔 관계자도 “도림, 무궁화 등 주력 레스토랑의 룸 예약은 일주일 전에 이미 차 있을 정도로 소수 위주 미팅은 계속 이뤄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 한국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인 서울스카이는 관광객은 급감했지만 '프라이빗 프러포즈' 부문에서는 명소다. 연중 운영하는 '더 스카이 로맨틱 프러포즈 패키지'는 프리미엄 라운지 바 '123 라운지'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하루 4회 제한, 회당 30만원, 60만원 짜리 상품이 있는데 지난 2월에 이미 전년 동월 대비 280% 이상의 신장률을 보였다고. 3월에도 예약 상황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단다. 이 곳에서 프러포즈를 했다는 30대 직장인 L씨는 "오히려 사람들이 많지 않고 커플만을 위한 프라이빗 서비스에 초점을 맞춰주다 보니 이곳을 선택하게 됐다"고 답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언택트, 즉 비대면 서비스가 유행하고 있다. 대면 접촉을 최소화하면서 ‘일코노미’란 신조어도 돈다. 이와 동시에 나타난 트렌드가 ‘프라이빗 이코노미’다. 지극히 소규모 인간관계 위주로 만남을 지속하는 것. 대외 사정이 어려워지고 대중 장소를 꺼리는 풍토 때문에 생긴 현상으로 풀이한다. 영화 ‘기생충’에서 상류층 부인이 말한 ‘믿음의 연결고리’처럼 검증된 인간관계 중심으로만 움직인다고 이해하면 쉽다.

▶취미 따라 이합집산

▷단골만 가는 ‘스피크이지바’ 각광

아무리 사회적 거리를 둬야 한다 해도 사회활동을 중단할 수는 없다. 소비도 마찬가지. 다만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검증되지 않은 이들과 접촉을 꺼려 한다는 점에서 프라이빗 쇼핑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최근 승기를 잡았다.

고급 백화점, 명품 브랜드는 이런 고객 성향을 공략하기 위해 다양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엄선한 한정판 명품만을 VIP 공간 혹은 호텔 펜트하우스 등 특정 장소에서 예약된 시간에 쇼핑할 수 있는 ‘트렁크쇼’를 선보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쇼핑객이 적은 시간대를 골라 고객과 시간 약속 후 매장에 도착하면 동행해서 제품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퍼스널 쇼퍼 서비스’도 최근 부쩍 예약률이 높아졌다는 게 백화점 명품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 명품업계 관계자는 “외부인과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전용 엘리베이터를 갖춘 펜트하우스나 고급 전시 공간, 매장으로 고객을 초대하고 관련 공간은 방역 등에서 완벽하다는 것을 사전에 이미지나 영상으로 알리는 등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고재갤러리는 주요 컬렉터를 대상으로 따로 예약을 받아 그 시간 동안에는 그들만을 위해 작품 해설을 해주는 ‘프라이빗 전시’ 서비스를 하고 있다. <학고재갤러리 제공>
예약을 통해 한 명 혹은 한 팀의 고객만 받는 식당이나 전시가 주목받는 이유도 비슷하다.

호텔업계에 따르면 호텔 뷔페 업장 매출은 평소 대비 30~35%가량 급감했다. 전반적인 식음 업장 매출 감소분(10~20%)을 크게 웃돌았다. 여러 사람이 음식을 공유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커진 때문이다. 대신 프라이빗 룸을 갖춘 식당은 밸런타인데이를 전후로 점심과 저녁 식사시간 만석을 기록하는 곳이 나오는 등 대조를 이룬다. 그랜드인터컨티넨탈서울파르나스의 일식당 ‘하코네’는 13개의 별실을 보유하고 있으며, 별실이 아닌 홀 좌석도 모두 칸막이로 분리돼 있어 프라이빗한 식사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 호텔 관계자는 “하코네는 별실뿐 아니라 홀 좌석에도 칸막이가 있어 프라이빗한 공간을 찾는 손님들에게 원래도 인기였다. 그런데 코로나19 발생 후 별실을 찾는 손님들이 더 늘어났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에서 낮과 밤에 단 한 팀의 예약만 받아 운영하는 한식당 ‘가가’의 최정숙 대표는 “최근 모임 자체를 꺼리거나 모임이 취소되는 탓에 일부 영향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식당에 비해서는 선방하는 편이다. 외부 서빙 직원을 두지 않고 원테이블이라 다른 고객과 접촉할 일도 적은 만큼 안전성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직격탄을 맞은 외식업계라지만 나만 아는 숨은 맛집 ‘스피크이지바(speak easy bar)’는 꾸준히 손님이 있다는 점도 ‘프라이빗 이코노미’가 자리 잡고 있다는 방증이다.

스피크이지바는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돼 있지 않고 홍보도 하지 않는 은밀한 가게’를 뜻한다. 과거 1920년대 미국에서 금주령이 내려졌을 때 애주가들을 위해 몰래 술을 팔던 비밀스러운 바에서 유래했다. 이들은 간판도 없고 홍보도 거의 안 해 소수 단골손님이 데려와야만 방문할 수 있다. 최근 ‘힙지로’라 불리는 을지로 맛집이 대개 이런 식이다. 인쇄골목, 허름한 구석에 위치한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에서도 4~5층에 위치, 걸어 올라가서도 육중한 철문을 열고 들어가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 을지로 터줏대감으로 불리는 카페 ‘깊은못’이나 ‘물결’, 와인바 ‘5시37분’ ‘결국’이 대표 사례다. 5시37분은 ‘5층’에 있는 ‘37평 가게’라는 의미다. 아무나 못 오는 비밀스러운 가게에 초대받은 손님은 ‘인싸(인사이더)’로 인정받은 기분에 만족감을 느낀다고.

일산의 한 오피스텔 건물 2층에서 간판 없는 칵테일바 ‘리즈’를 운영하는 정준환 사장은 “처음에는 간판도 없고 테이블도 몇 개 되지 않는 작은 바가 성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나만의 아지트 공간을 찾는 20~30대 직장인들이 입소문을 타고 왔다가 또다시 지인들을 데려오는 ‘다단계식 영업’이 이어지고 있다. 덕분에 이제 주말이면 자리가 있는지 미리 전화로 물어보고 오시라 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외출 자제, 피트니스센터 휴관 등 분위기 가운데 ‘홈트족(홈트레이닝族)’이 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온라인 PT앱 ‘마이다노’의 최근 회원 수가 급증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1월 9200명이었던 회원이 올 2월 1만1000명으로 늘었다. 홈트레이닝 외에도 다이어트와 커뮤니티, 살롱문화를 적절히 결합한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마이다노는 다이어트 전후의 실제 사진을 온라인에 올려야 하는 특성상 자연스럽게 여성 고객으로 성별을 제한한다. 앱에 자신의 식단과 운동 기록을 입력하면 담당 트레이너가 다이어트와 관련된 개별 코칭을 진행한다. 매월 8만~10만원이 드는 유료 프로그램이지만 현재까지 누적 수강횟수가 15만건을 넘었다. CEO·아이돌 트레이너로 유명한 박엄지 강사는 “직장 내 유휴공간·가정 내 운동기구를 갖춰두고 자기 시간에 맞춰 맞춤형 식단관리·트레이닝을 원하는 기업인·연예인 수요가 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을지로의 ‘스피크이지바’ 입구. 단골이 아니면 찾아오기 힘들 만큼 간판을 숨겨놨다.

▶왜 프라이빗 이코노미인가

▷워라밸·1인 가구에 개취 소비 지향

전문가들은 그동안에도 취향, 개성에 따라 소수의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문화·구매 패턴이 이미 활성화 추세였다고 했다. 그러다 이번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이 이런 트렌드의 기폭제가 됐다고 전한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2차 세계대전 시절에도 지식인, 예술가 중심의 살롱문화가 형성됐고 프랑스 68혁명(1968년 5월 프랑스에서 일어난 사회변혁운동)이 태동한 배경도 이런 소수 지식인, 취향이 세련된 상류층 중심의 프라이빗 이코노미였다. 한국도 소득 수준이 향상되고 대외 개방이 본격화하면서 구매력 있는 중산층을 중심으로 이런 기류가 만들어졌는데 최근 사태 이후 ‘돈을 더 내더라도 믿을 만한 공간에서 지인 중심’으로 경제활동을 하는 현상이 뚜렷해졌다”고 설명했다.

이는 산업적으로도 중요한 변화 기점으로 해석된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다중이 밀집하는 서비스는 사양길에 접어들 수 있다. 이들은 살기 위해 1인실, 또는 격리된 공간으로 변신을 시도할 것”이라 말했다. 프라이빗 이코노미의 서막이 열렸다는 의미다.

지난해 말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성인 남녀 3421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올해 나를 빛낸 일’ 조사 결과도 프라이빗 이코노미 확산 추세를 명확히 보여준다. 2019년 한 해를 돌아보며 올해 스스로가 가장 잘한 일, 만족하는 일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연애(15.1%)’를 제치고 ‘취미나 특기를 만든 일(18.6%)’이 1위를 차지한 것. 특히 ‘취미나 특기를 만든 일’ 응답률은 20대(21.5%)가 30대(13.7%), 40대(10.7%)보다 높았다.

프라이빗 이코노미가 ‘온라인 경제’가 낳은 파생 현상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오프라인에서는 자신의 의사 표시를 하기 힘들지만, 온라인에서는 익명성에 기대 누구나 의견을 개진한다. 그러다 보면 온라인에서는 정제되지 않은 거친 표현이 오가게 되지만, 오프라인에서는 오히려 더 자신을 숨기고 안정성을 소구하게 된다.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응어리는 자신과 취향이 맞는 이들끼리 모이는 소모임·서비스를 통해 해결하려 한다.”

주윤황 장안대 유통경영과 교수의 생각이다.

특급호텔 펜트하우스에서는 소수 VIP만 모임을 가지거나 명품 브랜드가 신제품을 선보이는 행사를 소규모로 열기도 한다. 사진은 JW메리어트호텔서울의 ‘럭셔리 딤섬 엣 더 펜트하우스’(좌), 점심과 저녁에 한 팀씩만 받는 서울 종로의 원테이블 한식당 ‘가가’(우). <최영재 기자>

▶향후 전망은

▷3~4명 모이는 ‘마이크로 트렌드’ 확산

전문가들은 프라이빗 이코노미가 향후 소비 트렌드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주 52시간제, 1인 가구 증가, 워라밸 중시 등의 영향으로 ‘개취(개인 취향) 소비’를 지향하는 이들이 많아졌다는 분석에서다.

‘트렌드 코리아 2020(공저)’ ‘1코노미’ 저자인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서양에서는 워라밸을 가족 중심으로 추구하지만 우리나라는 개인 단위로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또 1인 가구는 다인 가구보다 개인의 성장과 소확행을 추구하는 소비를 지향하는 편이다.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이런 소비를 추구할 수 있는 시간적 여력도 생긴 만큼, 세분화된 취향 소비를 추구하는 마이크로 트렌드가 더욱 확산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주윤황 교수도 비슷한 의견이다.

“취향이 세분화되며 일반 차 모임 대신 녹차, 보이차 등 특정 차를 즐기는 이들끼리 모이는 식으로 모임의 성격과 대상도 더욱 세밀해질 것이다. 인원도 줄어 동네에서 3~4명만 소규모로 모여 산책을 하거나 소모임을 하게 될 수 있다. 소비자는 이런 소규모 모임 여러 곳에 참여하며 자신의 취향과 가장 잘 맞는 소수 정예와 제한적으로 만나는 ‘모임 세분화’가 이뤄질 것이다.”

프라이빗 이코노미는 주로 VIP 고객 대상의 배타적 유료 멤버십으로 제공하고 있어 ‘그들만의 리그’가 공고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격의 시대’ 저자 김진영 이화여대 교수는 “선진국은 물론 우리나라도 멤버십 레스토랑, 특정 사교클럽 등이 계속 늘어났는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프라이빗 이코노미는 주요 트렌드의 하나로 자리 잡을 것이다. 특히 VVIP층의 이런 경향은 더 강화되면서 계층화를 촉발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일반 소비자 대상으로도 확대돼 더욱 대중화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박진용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한국유통학회장)는 “사람은 인간관계 외연을 확장하려는 사회화 욕구와 신뢰가 보증된 이들과 제한적으로 모이려는 개인화 욕구가 이중적으로 양립한다. 프라이빗 서비스에 대한 니즈는 일반 대중도 마찬가지인 만큼 향후 대중 타깃의 비즈니스도 많이 생겨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 2049호 (2020.03.11~2020.03.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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