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 신사옥 중정은 놀라운 공간"

이은주 2020. 3. 3.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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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버그돌-유현준 교수 대담
국제 건축계의 파워 인사 버그돌
유현준과 경복궁 경회루도 방문
"도시에 작은 공원 더 늘어야"
아모레퍼시픽 서울 용산 신사옥 5층 중정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배리 버그돌 컬럼비아대 교수와 유현준 홍익대 교수. 이 중정은 영국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건물의 중간층을 과감하게 비우고 한옥의 마당 개념을 도입해 조성했다. 일반인에게도 활짝 연 건물 내부 1~3층의 ‘통 큰’ 공공 공간과 달리 빌딩 속 3개의 정원은 사원들만 이용할 수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미국 컬럼비아대 건축사 교수로, MoMA 건축·디자인 부문 수석 큐레이터(2004~2017)를 지낸 배리 버그돌(Barry Bergdoll·65)이 최근 화성시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다. 2010년 첫 방문 이후 지난 10년간 예닐곱 차례 방한한 그는 미국 건축계의 ‘한국통’으로 꼽힌다. 지난해 9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국제 건축계의 파워 인사다.

공식일정에 앞서 그는 서울 경복궁과 아모레퍼시픽 용산 신사옥을 찾았다. 한국의 전통 건축과 2017년 완성된 대규모 오피스 빌딩인 두 건축물을 둘러보는 일정에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가 함께했다. 아모레퍼시픽 사옥은 버그돌 교수가 골랐고, 경회루는 유 교수가 추천했다. 두 사람이 ‘우리가 살고 싶은 도시’를 주제로 대화하며 나선 산책에 기자가 동행했다.

먼저 찾은 곳은 영국 출신의 데이비드 치퍼필드(David Chipperfield·66)가 설계한 아모레퍼시픽 사옥. 유 교수는 저서 『어디서 살 것인가』에서 이곳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사옥”으로 꼽은 바 있다. 묵직한 정육면체 형태로 이 건물의 중간중간 층 사이에는 한강·용산공원·남산 등을 향해 일종의 창 역할을 하는 큰 규모의 빈 공간(Void)이 있고, 특히 5층과 11층, 17층에는 5~6개 층을 비워내고 조성한 정원(중정)이 있다. 일반 사옥 빌딩과 달리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확 트인 1~3층의 아트리움 공간도 특별하다. 유 교수는 “마당이 있는 한옥을 3차원의 오피스 사옥으로 잘 해석한 공간 구조”라고 평했다.

아모레퍼시픽 용산 신사옥의 5층 중정. [사진 아모레퍼시픽]
아모레퍼시픽 용산신사옥의 아트리움 공간. [사진 아모레퍼시픽]

버그돌 교수는 “이 건물은 아마도 치퍼필드가 설계한 것 중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높은 비율의 열린 공간을 가진 건물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퍼블릭 공간이 워낙 커서 다목적 문화 공간처럼 보일 정도”라고 덧붙였다.

유 교수는 “아쉬움도 있다”며 “탄성을 자아내는 멋진 빌딩 속 정원, 특히 5층 중정을 일반인들도 보고 경험할 수 있게 열었더라면 훨씬 더 강력한 디자인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옥은 한 기업의 소유이지만 디자인에 따라 조직원의 창의성과 공동체 의식, 그리고 소통 방식 등 기업 문화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오로지 밀도만을 높이기 위해 숨 막히게 사무실로 채운 사무 빌딩은 감옥과 유사한 학교 디자인과 다를 게 없다. 그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직원들, 그 건물을 매일 바라보고 오가야 하는 사람들의 삶을 배려한다면 우리 사회에는 퍼블릭 공간에 대한 개념을 장착한 사옥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버그돌 교수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오피스 빌딩으로 케빈 로슈(Kevin Roche·1922~2019)가 설계한 뉴욕의 포드 재단 빌딩(Ford Foundation Building·1969년 준공)을 꼽았다. 작은 연못과 수목원 등의 퍼블릭 공간을 품고 있다. “그곳엔 12층 규모의 아트리움을 둘러싸고 사무실들이 배치돼 있습니다. 아트리움 안 아름다운 정원은 두 길 사이의 지름길이어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드나듭니다.” 버그돌은 “언뜻 보기엔 엄청난 공간이 낭비된다는 인상을 주지만 수학적으로 계산해보면 그렇지 않다”고 했다. 탁월한 디자인이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터전을 제공하고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베리 버그돌과 유현준 교수가 20일 경복궁 경회루에서 대담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20200220

두 사람은 경복궁 경회루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이어갔다. 경회루는 조선 후기 연회장으로 지어진 곳이다. 2층에 올라서니 낮은 기와지붕들이 풍경화처럼 펼쳐졌다. 버그돌 교수가 물었다. “경회루가 특별히 한국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유 교수는 “한국 전통건축의 특징을 가진 것은 맞지만, 경회루를 그 이유만으로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답했다. 그는 “한옥이 훌륭한 것은 그 시대의 재료, 기술적 한계에서 만들어 낸 최선의 답이기 때문”이라며 “현재 한국사회의 밀도, 사회적 문제, 기술, 그리고 예산 등의 요소들이 ‘21세기의 한국적인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답했다.

두 사람에게 좋아하는 도시를 꼽아달라고 했다. 버그돌 교수는 파리와 런던을, 유 교수는 로마와 뉴욕을 꼽았다. 버그돌 교수는 파리와 런던에 대해 “공원이 어디에나 가까이 있고, 상업적 거리와 주택가가 조화롭게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유 교수는 “로마는 역사와 건축의 결이 층층이 쌓여 있는 곳이어서 매력적”이고, “뉴욕은 공간 소비 측면에서 삶이 풍요롭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뉴요커들은 작은 집에 살아도 공원과 광장, 미술관, 도서관 등 도시 곳곳의 공간들을 거의 무료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버그돌 교수는 미국 최초의 계획도시인 조지아주의 사바나를 언급했다. 그는 “도시엔 작은 공원 22개가 골고루 분포해 있고, 다섯 블록마다 한 블록씩 정원이 있어 몇 블록만 지나면 매력적인 장소들이 눈앞에 펼쳐진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사람이 건물을 만들고, 그 건물들이 다시 사람을 만든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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