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타워 디자인 저작권자 유동룡..12년만에 명예 되찾았다
17일 현판식..장녀 "바로잡아 다행"
“아버지는 완공된 경주타워의 모습을 보고 화를 많이 내셨습니다.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하셨죠. 지금이라도 지난날의 잘못된 과거가 바로잡혀 다행입니다.”
경북 경주시 천군동 경주세계문공화엑스포공원 안에는 특이한 모양의 건물 하나가 서 있다. 황룡사 9층 목탑을 실제높이 82m(아파트 30층 높이)로 재현해 음각으로 새겨놓은 경주타워다. 17일 오후 경주타워 앞에 선 고(故) 유동룡(1937~2011·예명 이타미 준) 선생의 장녀 유이화 ITM건축사무소 소장은 “지난날의 잘못된 과거가 바로잡혔다”고 했다. 무슨 말일까.
이날은 경주타워 앞에서 세계적인 건축가 유 선생의 업적을 기록한 현판을 거는 행사가 열렸다. 가로 1.2m, 세로 2.4m 크기의 현판에는 유 선생의 각종 수상 기록과 대표작이 기록됐다. 경주타워 앞에 세워진 현판의 의미를 찾으려면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이하 엑스포)가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상징 건축물 설계 공모전’을 진행한 때다. 이 공모전에 유 선생은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이라는 이름으로 경주타워 설계안을 출품한다. 결과는 전체 2위인 우수상. 상금 1000만원을 받았다.
3년이 지난 2007년 8월. 유 선생의 제자 한 명이 완공된 경주타워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유 선생이 출품한 설계안과 매우 흡사한 모습으로 경주타워가 세워지면서다.
엑스포 측은 공모전 1위 당선작을 토대로 경주타워 디자인을 추진했지만 5번의 설계심의위원회를 거친 결과는 첨성대를 상징화한 당선작과는 차이가 컸다.
유 선생 측은 2007년 10월 공모전에서 당선된 건축사무소를 상대로 저작권법 위반에 대해 형사소송을 제기했지만 2008년 2월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이 났다. 이듬해인 2009년 6월 엑스포를 상대로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항소심까지 가서 손해배상 판결이 났고, 2011년 7월 대법원이 판결을 확정하면서 엑스포는 유 선생 측에 4200여만원을 배상했다.
유 선생은 확정 판결 한 달 전인 2011년 6월 세상을 떠나 자신의 명예가 회복되는 순간을 지켜보지 못했다.
엑스포는 판결 이후 경주타워 우측 바닥에 유 선생이 경주타워 설계를 했다는 내용의 표지석을 설치했다. 하지만 표지석이 눈에 잘 띄지 않고 표면이 심하게 닳아 유 선생 유가족이 지난해 9월 성명표시 재설치 소송을 제기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저작권 인정과 적극적인 수정 조치 등을 지시하면서 소송은 취하됐다.
이 지사는 “엑스포가 문화예술인의 저작권 보호에 앞장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과거에 지적재산을 침해하는 일을 해 매우 유감스럽고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유 선생의 명예회복은 물론 그의 정신을 계승하는 데 앞장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엑스포도 유 선생을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타계 10주기를 맞는 내년에 특별 헌정 미술전 등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경주=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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