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에 말없이 눈물만..봉쇄된 우한 병실, 그곳서 본 것은
"현장에 있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생각 들어
우한 핵심 격리지역의 중증 환자실 앵글에 담아
눈만 나오는 방호복 탓에 옷에 이름 써 상대 식별
지난 23일 오전 10시를 기해 우한(武漢)이 봉쇄됐다. 28일로 교통 폐쇄 엿새째를 맞는다. 외부와 차단된 우한에서 신종 폐렴과의 생사를 건 싸움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중국 관영 신화사(新華社) 사진기자 슝치(熊琦)의 육성과 앵글을 통해 그 현장을 들여다본다.
![우한 의료진이 신종 폐렴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슝치]](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001/28/joongang/20200128104139335qzbb.jpg)
26일 새벽 3시 꿈결에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질병 상황이 심각하다. 우한을 곧 봉쇄한다고 한다.” 나는 매우 놀랐고 이후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바로 어제 우한에서 고향 집으로 내려와 설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한데 곰곰 생각하니 인구가 1000만이 넘는 도시를 질병 상황 때문에 봉쇄를 한다니 기자로서 현장에 있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새벽 일찍 가족에게 몸조심하란 인사와 함께 작별을 고했다.
![지난 23일 우한 봉쇄령이 내려지면서 우한고속도로가 텅 비어 있다. [중국 신화망, 슝치]](https://t1.daumcdn.net/news/202001/28/joongang/20200128104140410tina.gif)
홀로 다시 우한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탔다. 낮 12시 정도에 우한고속도로 서쪽 톨게이트에 도착했다. 줄을 서 있는 운전기사는 마침 체온 측정을 하고 있었는데 봉쇄 명령이 효력을 발동하기 전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다급해 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부터 한편으론 걸으며 한편으론 가장 힘든 시기에 처한 우한 거리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오후가 돼 우한의 집에 도착해 관련 보도를 찾아보니 의료진 모습을 담은 사진이 매우 적다는 걸 발견했다.
특히 핵심 격리지역의 사진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곧장 일주일 정도는 버틸 먹거리 등을 산 뒤 나 자신을 보호할 이런저런 보호 장비도 준비했다. 그리고 다음 날 핵심 격리지역 취재를 마음먹었다.
![우한 중난의원 중증환자 격리병원실엔 환자 상태를 체크하는 모니터와 의료진의 낮은 목소리만 들린다. [중국 신화망, 슝치]](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001/28/joongang/20200128104141668fiaf.jpg)
이튿날 점심 무렵 중난(中南)의원에 도착해 중증 격리병실 청결 구역에서 간호사의 도움을 받아 방호복을 입었다. 간호사가 떠난 뒤 나는 내 직업 생애 중 아마도 가장 아름답지 못할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격리지역으로 향했다.
중증 격리병실 내 소리는 너무 작았다. 환자 상태를 체크하는 모니터 소리와 의료진의 간단한 한두 마디가 전부였다. 한 명의 의료인이 두 개의 병상을 맡아 분주하게 움직였다.
![병상에 누워 두려움에 눈물을 흘리는 노인 환자를 간호사가 손을 잡아 위로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슝치]](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001/28/joongang/20200128104142701qvjm.jpg)
한 노인이 병상에 누워 두려움에 그저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수간호사 마징피에(馬晶瞥)가 이를 보고 다가와 노인의 손을 잡았다. “두려워 마세요. 곧 나을 거예요. 우리가 계속 곁에 있을 겁니다.”
![두꺼운 방호복 탓에 의료진이 서로를 구별할 수 없게 되자 등에 이름을 적고 있다. [중국 신화망, 슝치]](https://t1.daumcdn.net/news/202001/28/joongang/20200128104143883ygjl.gif)
두꺼운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은 눈만 내밀고 있어 서로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격리구역에 들어가기 전 첫 번째로 하는 일이 서로의 방호벽에 서로의 이름이나 별명을 써주는 것이었다. 격리구역에서만 일어나는 ‘신비한 의식’에 해당했다.
![두꺼운 방호복 등에 이름을 쓰고 사랑의 하트까지 그렸다. [중국 신화망, 슝치]](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001/28/joongang/20200128104145093tidh.jpg)
환자 황수리(黃淑麗)는 10여 일의 치료 끝에 열이 가셔 중증의학과 주임 펑즈융(彭志勇)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펑 주임이 설 인사를 하자 그는 두 손을 모아 답례 인사를 했다.
30분 뒤 그는 보통 격리병실로 이송됐다. 떠나기 전 의료진이 “다시는 오지 말라”고 농담을 던지자 그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환자 황수리가 의료진과 손을 모아 새해 인사를 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슝치]](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001/28/joongang/20200128104146284rgqs.jpg)
마스크를 쓴 탓에 안경에 김이 서리고 두꺼운 방호복으로 온몸이 젖었다. 그러나 사명감은 커졌다. 한 컷 또 한 컷을 위해 셔터를 계속 눌렀다. 일이 끝나 격리병실의 의자에 걸터앉게 됐을 때 몸은 지쳤지만, 오히려 마음은 평온해졌다.
![중국 중난의원 중증 격리병실의 의료진이 환자를 체크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슝치]](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001/28/joongang/20200128104147363kaxo.jpg)
나는 기자로서 그저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뿐이지만 여기에 있는 수많은 의료진은 아픈 이가 간절히 바라는 생명의 희망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싸우고 있었다. 격리구역에서 나오니 마침 의료진의 야식 시간이었다.
![중국 의료진이 춘절 전야인 섣달 그믐날밤 가족들이 둘러앉아 먹는 '녠예판' 대신 도시락과 요구르트를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슝치]](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001/28/joongang/20200128104148437glbg.jpg)
간단한 도시락과 요구르트가 보였다. 그들의 웃음소리에 나는 비로소 그들이 먹는 게 ‘녠예판(年夜飯, 섣달그믐날 저녁에 온 식구가 모여서 함께 먹는 음식)’이란 걸 깨달았다. 10분 뒤 이들은 다시 두꺼운 방호복으로 갈아입고 각자의 근무지로 향했다.
![봉쇄령을 맞아 우한시 전체가 생기를 잃어가는 가운데 한 극장 외벽에 '우한 힘내란' 글자가 빛을 발하고 있다. [중국 신화망, 슝치]](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001/28/joongang/20200128104149467xbdg.jpg)
귀갓길에 우한 한슈(漢秀)극장의 외벽에 빛나는 “우한 힘내라(武漢加油)”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불이 꺼진 도시 풍광에서 유독 빛을 발하고 있었다. 쥐띠 해를 알리는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나는 친구들에게 “모든 게 좋아질 것”이란 글을 띄웠다.
베이징=유상철 특파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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