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훈·이정후 "스포츠 금수저? 남모를 스트레스 많아요"
허훈 "아빠는 점프슛, 난 쏘는 슛
못 넘어설 아빠지만 예능은 허당"
이정후 "아빠 몰래 시작한 야구
왼손으로 치면 시켜준다해 연습"
설을 앞두고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농구 대통령’ 허재(55) 아들 허훈(25·부산 KT)과 ‘바람의 아들’ 이종범(50) 아들 이정후(22·키움 히어로즈)를 함께 만났다. ‘스포츠 금수저’로 불려 온 이들이다. 아버지의 스포츠 유전자를 물려받은 건 부인할 수 없는 ‘아빠 찬스’. 하지만 두 사람은 항상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부담감과 싸웠다고 했다. 그리고 노력으로 극복했다. 허훈은 올 시즌 프로농구 국내 선수 득점 1위(평균 16점)다. 최근 올스타전 팬 투표 1위도 했다. 이정후는 지난해 프로야구 최다안타 2위(193개)다. 소속팀 키움을 한국시리즈까지 이끌었다.
Q : 종목이 다른데 친분은 어떻게 쌓았나.
A : 허훈(이하 허) “201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때 처음 만났다. 지난해 3월 농구 플레이오프 때 창원 숙소에서도 우연히 만나며 가까워졌다. 지난달 허벅지를 다쳤는데 정후가 ‘마음 조급하게 먹지 말고 후반기에 잘할 기회가 올 거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정후가 착하다.”
허훈, 올 시즌 농구 득점·팬투표 1위
Q : 서로의 경기를 본 적이 있나.
A : 허=“쉴 때 예능이나 영화를 보는데, 한 번은 TV를 트니까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를 하더라. 정후 경기였는데, 진짜 잘 쳤다. 해설자도 칭찬을 많이 했고.”
이정후(이하 이)=“저도 야구는 전력분석팀이 보내주는 제 타격 영상만 보는데, 어느 날 TV로 훈이 형이 3점 슛을 9개나 넣는 걸 봤다.(지난해 11월20일 DB전). 형한테 연락하니 ‘팀이 졌는데 무슨 의미냐’라고 하더라. 역시 프로구나 라고 생각했다.”
Q : 운동 시작할 때 아버지 반응은.
A : 이=“아빠는 처음에 반대했다. 초등학교(광주서석초) 2학년 때 아빠 전지훈련 간 틈을 타 몰래 테스트받고 시작했다. 놀이로 야구할 땐 우타자였는데, 전지훈련 끝나고 온 아빠가 ‘왼손으로 치면 시켜준다’고 해 왼손으로 연습했다. 지금도 일상에서는 오른손잡이다.”
허=“무조건 왼손이다. 저도 오른손잡이지만 농구도 왼손잡이가 유리하다. (허)웅이 형(DB)이 농구를 해서 나도 따라 했다. 아빠가 처음엔 반대했다. 얼마나 힘든지 알고, 다칠 수도 있고, 거기다 잘해야 하니까.”
Q : 두 사람 스타일을 아버지와 비교하면.
A : 이=“아빠랑 타격 폼이 완전히 다르다. 아빠는 찍어 쳤고, 나는 들어 치는 스타일이다.”
허=“아빠는 점프슛이었고, 나는 올라가면서 쏘는 슛이다. 다르다.”
Q : 아버지 스포츠 유전자를 물려받았나.
A : 이=“체력적으로 확실히 덜 지친다. 멘털(정신력)과 심장도. 경기 때 잘 안 떤다. 몸의 탄력을 물려받아야 했는데. 아빠는 빠른데 난 느리다. 어릴 때는 빨랐는데 갑자기 키가 크면서 몸의 밸런스가 무너졌다.”
허=“아~, 키를 물려받아야 했는데(허훈 1m80㎝, 허재1m88㎝). 정후(1m 85㎝)보다 작다. 정후가 농구하고, 내가 야구했어야 했다.(웃음). 사실 야구공을 무서워한다. 맞으면 아플까 봐 근처에도 안 갔다.”
이=“학교(휘문고) 농구부에서 좀 해봤다. 패스나 레이업 슛은 하는데, 점프슛은 어렵다. 형 정도 몸이면 야구하기에 최고다. 나도 야구공 맞는 건 무섭다.”
Q : 아버지보다 ‘이건 내가 낫다’ 하는 건.
A : 이=“키가 더 크고 더 젊다.(웃음). 뭘 해도 아빠를 넘을 수 없다. 아빠 땐 자유계약선수(FA) 제도가 없었는데, 지금은 잘하면 가치를 인정해준다. 아빠를 넘는 게 목표는 아니다.”
허=“난 아빠보다 키도 작고, 나은 점이 없다. 팩트다. 아빠가 워낙 대단해 (넘어서는걸) 목표로 하지 않았다.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가 기록도 나오고 그러지 않을까 한다.”
Q : 허재는 예능인으로 활약 중이다.
A : 허=“아빠는 허당이신 것 같다. 더 잘할 수 있을 텐데.(웃음) 은퇴 후로 운동을 아예 안 하셨다. 골프 칠 때 걷는 게 전부다.”
이=“아빠가 ‘뭉쳐야 찬다’에 한 번 나간 뒤 사흘을 앓았다. 50대라. 예전엔 정말 멋있었는데, 늙어가는 모습에 마음 아프다.”
Q : 아버지가 조언을 해주나.
A : 허=“농구 이야기는 안 한다. 다치면 ‘왜 다쳤냐’고 묻는 정도다.”
이=“아빠가 야구 얘기하면 제가 자른다. 가끔 ‘(네 야구는) 왜 그러냐’고 하면 ‘집에서 무슨 야구 얘기냐’고.”
Q : 차두리(39·오산고 코치)는 선수 시절 내내 아버지(차범근)의 그늘과 싸웠다고 하는데.
A : 이=“말로 설명이 안 된다. 직접 겪어봐야 안다. 휘둘리고 신경 쓰면 자신만 힘들다.”
허=“누구나 압박감은 있다.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니까. 잘 극복하는 게 중요하다. 노력하고. 전 아이 생기면 힘든 농구 안 시킬 것 같다. 대신 야구?” (웃음)
이정후, 지난해 야구 최다안타 2위
Q : ‘스포츠 금수저’란 말을 들으면 어떤가.
A : 허=“남들은 축복받았다고들 한다. 자부심도 있고 기분도 좋지만, 스트레스도 있다.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덕분에 장수할 것 같다. (하도 욕을 먹어서) 130살까지 살 거다. 아시안 게임이 단단해지는 계기가 됐다. 그 뒤로 승승장구했으니까.”(허재는 당시 아시안게임 농구 대표팀 감독을 맡아 두 아들을 대표선수로 뽑았지만, 동메달에 그쳐 비난받았다.)
이=“솔직히 어릴 땐 짜증 나고 그랬다. 잘못된 행동을 하면 아빠까지 소환되니까. 그런 것 빼면 장점이 더 많다. 요즘 어린 세대는 훈이 형 아버지를 ‘예능인’, 우리 아빠를 ‘야구 코치’로만 안다. 그런데 우리가 잘하면 아버지들 잘했던 게 재조명된다. 그래서 더 좋은 것 같다.”
Q : 설인데 덕담 한마디씩.
A : 이=“형은 시즌 중인데 잘하고 있어서 보기 좋다. 다치지 말고, MVP 타고, 우승했으면 한다. 도쿄 올림픽 선수촌에서 만나서 못다 한 얘기 나눴으면 좋겠다.”
허=“정후는 지금 잘하고 있고, 최고 야구 선수가 될 거야. 새해 복 많이 받고. 선수촌에서 만날 확률은….(남자농구는 올림픽 본선행 미정) 도쿄에서 보도록 하자. 파이팅!”
박린·박소영 기자 〈rpark7@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