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0톤 쓰레기를 15억 주고 사는 전남..신안 섬마을의 사연

진창일 입력 2019. 12. 15. 14:00 수정 2019. 12. 16. 16: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플라스틱 아일랜드> 2. 쓰레기 맴도는 동북아 바다
전남 신안군 자은도에 '한자 상표' 쓰레기
일본어 비닐 쓰레기도 해변가에 밀려들어
전남 바다 아래 남은 쓰레기 약 6만t 추정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전남 신안의 섬마을에 연이어 도착하고 있다. 해양 쓰레기 이야기다.

5일 전남 신안군 자은면 내치해변에 중국글씨가 있는 어구와 페트병이 해변에 널려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섬마을에 '한자 상표 쓰레기'
지난 5일 찾은 전남 신안군의 자은도 내치해변. 모래 해변 구석에는 밀물 때 올라온 쓰레기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쓰레기 더미 사이로 한자로 쓰인 플라스틱 물통(생수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단 10여 분만에 한자 상표 플라스틱 물통 15개를 찾았다. 해외 유명 연예인의 얼굴 사진과 사인이 새겨진 플라스틱 물통도 있었다.
5일 전남 신안군 자은면 내치해변에 중국글씨가 있는 어구와 페트병이 해변에 널려있다. 신안-프리랜서 장정필
5일 전남 신안군 자은면 내치해변에 중국글씨가 있는 어구와 페트병이 해변에 널려있다. 신안-프리랜서 장정필

한자가 쓰인 플라스틱 물통들은 물을 다 마시고 버린 듯 텅 비어 있었다. 오랜 시간 바다를 떠다니다 건너온 듯 해초가 묻어 있는 물통, 빛에 바래 포장지가 하얗게 변색한 물통, 방금 뭍으로 올라온 듯 비교적 깨끗한 물통까지 각양각색이다. 손 세정제 용기나 주방 세제 통도 있었다.
지난 5일 전남 신안군 내치해변에서 찾은 한자가 쓰여진 플라스틱 쓰레기. 중국에서 판매되고 있거나 'SHANGHAI'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쓰레기들이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5일 전남 신안군 내치해변에서 찾은 한자가 쓰여진 플라스틱 쓰레기. 중국에서 판매되고 있거나 'SHANGHAI'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쓰레기들이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5일 전남 신안군 자은면 내치해변에서 쓰레기 더미 사이에 파묻혀 있던 한자가 쓰여진 생수병.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5일 전남 신안군 내치해변에서 찾은 한자가 쓰여진 플라스틱 쓰레기. 중국에서 판매되고 있거나 'SHANGHAI'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쓰레기들이다. 프리랜서 장정필
한자가 쓰인 검은 구 형태의 어구도 있었다. 지난달 25일 중국 상하이 인근 양쯔강 하구 '난후이' 지역 쓰레기 더미 속에서 기자가 직접 목격했던 검은 구 형태의 어구와 모양이 같았다. 상단부에 한자가 쓰인 점도 일치했다.
지난 5일 전남 신안군 양산해변에서 찾은 검은 부표. 상단부에 한자가 쓰여져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5일 전남 신안군 양산해변에서 찾은 검은 부표. 상단부에 한자가 쓰여져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한자 적힌 어구, 중국서 본 어구와 같아
지난해 10월 전남도 의뢰로 동아시아 바다공동체 오션(OSEAN)이 발간한 '전라남도 해양 쓰레기 발생량 조사 최종보고서'에는 한자가 적힌 검은색 어구가 어디서 왔는지 짐작할 수 있는 설명이 있다.
지난달 25일 양쯔강 하구 난후이 지역에서 찾은 검은 구 형태의 어구. 상단에 한자가 표기됐고 두 개의 고리가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진창일 기자

당시 오션은 무안군·신안군·진도군 등 해안 4곳에서 검정 구 형태 '부표' 30개를 채집해 조사했다. 그 결과 중국 부표는 2개의 반구를 접합한 형태로 광택이 없고 숫자나 글자의 표식이 있는 특징을 확인했다. 또 두 개의 고리가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반면 국산 부표는 광택이 있고 매끈하고 고리가 마주 보는 형태다.
전남 신안군 자은면 양산해변에 중국글씨가 있는 어구와 페트병이 해변에 널려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오션은 최종 보고서를 통해 2018년 10월 기준 전남 바다에 해양 쓰레기 약 8만7000t이 남아 있고 매년 약 2만6000t의 해양 쓰레기가 새로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이중 약 1만3000t이 중국에서 바람과 조류를 타고 한국으로 건너오는 것으로 추정했다.

중국산 '괭생이모자반'도 상륙
신안군 자은도 해변은 지난해 중국산 괭생이모자반으로 뒤덮이기도 했다.
지난해 1월 전남 신안군에 몰려든 중국산 괭생이모자반. 곳곳에 해양쓰레기도 뒤섞여 있다. [사진 신안군]
지난해 1월 전남 신안군에 몰려든 중국산 괭생이모자반. 곳곳에 해양쓰레기도 뒤섞여 있다. [사진 신안군]
지난해 1월 9일부터 11일까지 중국 저장성에서 대량 양식한 1800t의 괭생이모자반이 중국에서 불어오는 편서풍과 조류를 타고 신안군 등 전남 해역에 상륙했다.

식용이 아닌 괭생이모자반이 4000㏊에 달하는 신안군 김 양식장에 달라붙어 어민들이 피해를 봤다.
신안군 자은도 어민들은 당시 "괭생이모자반이 해변에 쌓이면 꼭 중국 글씨가 써진 쓰레기가 섞여 있다"고 했다.


일본 비닐 쓰레기도 밀려와
지난 5일 전남 신안군 자은면 내치해변에서 찾은 일본 글씨가 쓰여진 비닐 쓰레기. 일본어와 함께 'L'이란 글자가 쓰여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일본어가 쓰인 쓰레기도 있었다. 내치해변과 이곳에서 약 3㎞ 떨어진 양산해변에서 찾은 고무장갑 비닐 쓰레기다. 둘 다 같은 상표로 크기를 구분한 듯한 'L', '2L'이란 문구만 달랐다.
지난 5일 전남 신안군 자은면 양산해변에서 찾은 일본 글씨가 쓰여진 비닐 쓰레기. 프리랜서 장정필

신안 자은도에서 만난 한 주민은 내치해변을 "해양 쓰레기들이 시도 때도 없이 몰려오는 곳"이라고 했다. 또 "내치해변이나 양산해변은 물길을 가로막는 '곶'이나 섬도 없어 밀물 때 쓰레기들이 그대로 해변으로 올라온다"고 했다.

우리 어민이 바다에 버리는 해양 쓰레기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해양 쓰레기는 국내 어선 혹은 양식장에서도 발생하는 것이다.

전남도 해양 쓰레기 보고서는 매년 전남 해역에서 국내 어선이 버리는 폐어구와 생활 쓰레기 등이 연간 7989t, 양식장에서 버리거나 유실하는 폐부표와 부속 어구 등이 4191t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 5일 전남 신안군 내치해변에 버려져 있던 폐그물.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5일 전남 신안군 내치해변에 버려져 있던 폐어구 더미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5일 전남 신안군 내치해변에 버려져 있던 '비료살포기'.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5일 전남 신안군 자은면 내치해변에 버려져 있던 폐그물과 어구. 프리랜서 장정필

내치해변은 어민들이 물고기를 잡을 그물을 칠 때 부표로 사용하는 커다란 스티로폼 덩어리들도 가득했다. 이곳은 모래사장이기 때문에 어민들의 선박이 머물 수 없다.
쓰레기들이 쌓인 곳은 배가 지날 수 없는 좁은 굴다리를 지나야 해 어선이 들어올 수도 없다. 주변 길도 험해 사람이 접근하기도 힘들다. 그래도 쓰레기는 있었다.
지난 5일 전남 신안군 자은면 양산해변에 널려 있는 쓰레기들이 만조 때 파도 물결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전남 바다 아래 해양 쓰레기 6만5000t
현재 어장과 항만, 양식장 등 전남 바다 아래 가라앉아 있는 해양 쓰레기는 약 6만5817t으로 추정된다. 섬에는 2만1370t의 쓰레기가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신안군 자은도 내치해변과 양산해변 모래사장은 해양 쓰레기의 습격이 한두 해 일이 아닌 듯 화석층의 단면처럼 플라스틱병과 스티로폼, 비닐이 박혀 있었다.
지난 5일 전남 신안군 자은면 내치해변에 해양 쓰레기들이 널려 있다. 일부는 오랜 시간이 흐른 듯 땅 속에 파묻혀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돈을 주고 쓰레기를 산다. 전남도는 어선이 조업 중에 건져 올린 폐어구와 로프의 경우 40L 마대 기준 4000원, 연안·근해통발은 개당 250원에 산다. 올해는 2140t의 해양 쓰레기를 15억3400만원에 사들일 계획이다.

수매사업뿐만 아니라 해양 쓰레기 수거처리, 정화사업 등을 통해 5년간 수거한 해양 쓰레기도 1만8600t이다. 하지만 해양 쓰레기는 아직도 섬에 상륙하고 있다.

신안=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