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한시간 전 영하 1.7도, 가랑비 '블랙아이스' 참극 조건

김윤호 2019. 12. 1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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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매연과 먼지가 뒤썩여 검은색으로 보이는 블랙아이스. [중앙포토]
14일 오전 3시 48분 경북 군위군 일대. 땅이 살짝 젖을 정도의 '가랑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군위군 일대의 기온은 영하 1.7도. 바람은 시속 4.7㎞. 땅에 내린 비는 곧장 살얼음으로 변했다.

한 시간쯤 뒤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상주-영천고속도로 영천 방향 상행선(상주 기점 26㎞). 화물트럭 등 차량 10여대가 추돌했다. 앞서 달리던 화물트럭이 순간적으로 도로를 달리다 미끄러지면서, 후미에 있던 다른 화물트럭이 연이어 추돌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이 사고로 차량 6~7대가 불에 탔고, 운전자 등 6명이 사망했다. 또 10여명이 상처를 입고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다. 비슷한 시각 사고 지점에서 5㎞ 정도 떨어진 고속도로 하행선에서도 차량 20여대가 연쇄 추돌해 1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쳤다.

경찰이 추정한 사고 원인은 '블랙아이스'. 땅이 살짝 젖을 정도의 '가랑비'가 이런 참극을 부른 것이다. 겨울철 도로 위 저주, 도로의 살인마로 불리는 '블랙아이스' 참극이 올겨울 또 발생했다. 지난해 꼭 이맘때인 12월 11일에도 전남 장흥군 장동면 남해고속도로 장등2터널(영암 방향 49㎞ 지점) 부근에서 화물차 등 차량 17대가 추돌했었다. 이 사고 원인 역시 블랙아이스로 추정됐었다.

빙판길 제동거리 [중앙포토, 자료]
블랙아이스는 아스팔트 또는 콘크리트 포장 표면의 작은 틈새로 스며든 눈이 비가 얼어붙어 얇은 얼음층을 만드는 현상으로, 다리 위나 터널 출입구, 그늘진 도로 같은 곳에서 자주 발생한다. 즉, 순간적으로 블랙아이스가 생긴 구간은 빙판길이 된다는 의미다.

차량이 일반 도로를 달리듯 속도를 올려 블랙아이스 구간을 지나가면, 중심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차량은 겨울철 빙판길을 달릴 때 '체인'을 감거나 '스노우 타이어'로 교체하고, 저속 운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블랙아이스 교통사고, 즉 빙판길 교통사고는 마른 도로 사고보다 치사율이 2배가량 높다. 제동거리도 4배 넘게 길어진다. 본지가 지난해 12월 한국교통안전공단에 취재해 확인한 데이터에 따르면, 3년(2015~2017년)간 노면 상태별로 교통사고 발생현황을 분석한 결과, 마른 도로에서는 19만8000여건의 사고로 3700여명이 숨져 치사율이 1.87%였다. 치사율은 교통사고 100건당 사망자 수다.

반면 빙판길에서는 1120여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해 41명이 사망했다. 치사율이 3.65%로 마른 도로의 1.9배나 됐다. 빙판길에서는 핸들 조작이 어려운 데다 제동 거리도 길어지기 때문이다. 공단에서 노면 상태별로 제동거리를 실험한 결과, 일반승용차가 시속 50㎞로 주행 중 브레이크를 밟을 경우 마른 도로에서는 11m 정도 지난 뒤 멈춰섰다. 하지만 빙판길에서는 48.3m나 더 지나갔다고 한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겨울철 비나 눈이 오고 난 이후엔 블랙아이스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방어운전을 하며, 도로를 달려야 한다. 타이어와 브레이크도 늘 점검하는 것이 최소한의 안전장치다"고 조언했다.

대구·상주=김윤호·신혜연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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