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미성년자 노예계약' 칼 빼든 공정위.. e스포츠계 직권조사

문동성 기자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2019. 12. 4.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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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SPA·프로게임단 우선 착수

공정거래위원회가 e스포츠계의 불공정 계약 관행에 대한 직권 조사에 나선다. 프로게이머에 대한 강압 이적 의혹이 불거진 이른바 ‘카나비 사태’ 이후 프로게임단이 미성년자에게 ‘노예 계약’을 강요했다는 비판이 거셌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청년 세대의 불공정 문제에 대한 개혁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대통령 발언 이후 정부가 불공정 문제에 ‘칼’을 빼든 첫 사례다.

공정위 관계자는 “최근 불거진 e스포츠계의 불공정 계약은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직권 조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4일 밝혔다. 직권 조사는 불공정 행위가 중대할 경우, 위반 행위가 전국에 걸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실시한다. 공정위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공정위는 불공정 조항이 지적된 한국e스포츠협회(KeSPA)의 표준계약서와 이를 사용하는 프로게임단의 계약서를 우선 조사한다는 입장이다. KeSPA는 2003년 시작된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때부터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게임단에 배포해 왔다. 몇 차례 수정된 이 계약서에 선수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항들이 포함된 사실이 최근 처음으로 드러났다(국민일보 2일자 8면 참조). 일부 게임단은 KeSPA 표준계약서를 개악해 자체 ‘노예 계약서’를 만들기도 했다. 국내 대회인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에 참가한 프로게이머 27.5%는 19세 이하 미성년자이며 평균 연령은 20.8세다. e스포츠 팬들은 어린 선수들의 처지를 ‘스무살 노예’라는 말로 비판해 왔다.

공정위는 이후 e스포츠계 전반으로 조사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리그오브레전드(LoL)’ 게임단 ‘그리핀’은 ‘카나비’(게임상 닉네임) 서진혁(19)군 등 소속 선수들과 불공정 계약을 맺은 사실이 있다. 이 계약을 토대로 서군을 중국으로 강압 이적시키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업계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불공정 계약은 그리핀만의 일이 아니다”며 “업계에 만연해 있는 게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업계를 전반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며 “만연한 불공정 계약을 일소해 공정거래 질서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정위 조사로 불공정 계약이 시정된 사례는 그간 많았다. 공정위는 2008년 연예인들의 ‘노예 계약’이 논란이 되자 10대 대형 연예기획사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했다.

공정위 게임 업계 불공정 조사, 청와대 의중 작용한 듯

조사 후 과도한 사생활 침해 및 무상 출연 등 10개 유형의 불공정 조항을 삭제토록 권고했다. 모두 합쳐 204명의 연예인이 당시 소속사와 계약을 수정 체결했다.

프로야구계의 불공정 계약 문제는 2016년 일부 시정됐다. 공정위는 프로야구 10개 구단이 사용하는 선수 계약서를 조사한 뒤 훈련비용을 선수에게 전가하는 등의 불공정 조항을 문제 삼았다. 프로야구단은 해당 조항을 모두 삭제했다. 공정위는 2017년에는 투자비용의 2~3배를 위약금으로 규정한 연예인 연습생 계약서를, 지난해에는 웹툰 가격을 회사가 임의로 결정하는 조항이 포함된 웹툰 작가 계약서를 조사해 불공정 조항을 시정토록 했다.

공정위의 이번 직권 조사 결정은 상당히 신속하게 이뤄졌다는 평가다. 서군의 불공정 계약 문제가 불거진 지 열흘 만에 결론을 냈기 때문이다. 팬층이 특정 연령대에 집중된 e스포츠계는 상대적으로 사회적 주목을 덜 받아 왔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불공정 계약 문제가 불거진 뒤에도 정부 개입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배경에는 대통령의 의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20대 젊은층의 기대에 전부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며 “고용 문제 등 여러 과정에 내재돼 있는 불공정한 요소들에 대해 각별히 노력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불공정 문제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전했다.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도 나섰다. e스포츠계의 불공정 계약 문제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정부 답변 대상이 됐다. 청와대는 문체부와 답변 내용을 준비하고 있다. 답변은 1월 중 이뤄질 예정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미성년자 및 20대 프로게이머들의 권익 보호 방안을 면밀히 파악하고 있다”며 “대표적인 것이 정부 표준계약서인데 별도 법안이 발의돼 있는 만큼 그 법안이 빨리 통과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법안 통과에 대비해 내부적으로 표준계약서 작성 준비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별도로 박양우 장관은 내년 상반기 발표할 e스포츠 등에 대한 중장기 계획에 선수등록제 등 불공정 계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포함시킬 계획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민일보 보도를 보면 구단 측이 나이 어린 프로게이머들을 상대로 제대로 된 설명 없이 부당한 계약을 맺은 사례들”이라며 “연예인들의 ‘노예 계약’과 유사해 보인다. 청원 답변을 할 때 불공정 계약 문제를 포괄해 다룰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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