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막으려다 VOCs 폭탄..'나쁨' 때도 꼭 환기해야
미세먼지가 많은 날 문을 닫아놓고 계속 공기청정기를 틀어야 할지, 아니면 조금씩 환기를 해주는 것이 좋은지 알고 싶어요(안**)
요즘은 가정마다 한 대씩 공기청정기를 장만하고 있는데 실내에서 얼마나 미세먼지 피해를 줄일 수 있나요?(ha*)
중앙일보 디지털 서비스 ‘먼지알지’에 많은 사용자가 공기청정기와 환기의 연관 효과 등에 관한 질문을 보내주셨습니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에는 창문을 닫아야 할지, 환기를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는 시민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알아보기 위해 취재팀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4명 가족이 거주하는 경기도의 한 아파트(전용 면적 164㎡)를 실험 장소로 정했습니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았던 10월 마지막 주말과 미세먼지가 보통이었던 11월 둘째 주말을 선택해 8일간(10월 31~11월 4일, 11월 8~10일) 실험했습니다. 거실 바닥에서 약 50㎝ 높이로 케이웨더 ‘에어 가드 K’ 미세먼지 측정기를 설치하고 1분 단위로 오염도를 측정했습니다. 측정 항목은 기온과 습도, 미세먼지(PM10), 초미세먼지(PM2.5), 이산화탄소(CO₂),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입니다.
※실험 내용은 영상에서도 확인 가능합니다.
━
삼겹살 구울 때 미세먼지 244㎍까지 치솟아
지난달 31일 주방에서 저녁 식사 준비를 하자 실내 미세먼지(PM10) 농도는 ㎥당 22㎍(마이크로그램, 1㎍=100만 분의 1g)에서 167㎍, 초미세먼지(PM2.5) 92㎍으로 치솟았다. 순식간에 7배가 늘어났다. 측정기는 주방에서 5m쯤 떨어진 거실에서 측정했는데도 영향이 뚜렷했다. 조리 후 환기를 시키고 공기청정기를 가동하고 난 후 2시간이 지나서야 원래 수준으로 되돌아왔다.
10일 저녁 삼겹살을 굽자 실내 미세먼지 농도(PM10)가 2㎍에서 244㎍으로 올라갔다. PM2.5는 101㎍까지 올랐다. 주방 후드를 켜지 않고 환기도 하지 않은 상태라 농도가 급격하게 치솟았다. 후드를 켜고 주방 창문을 여니 농도는 다소 낮아졌다. 계속 고기를 굽는 상황에서도 PM2.5 농도가 55㎍으로 감소했다.
━
장시간 환기 안 하면? VOCs 1099㎍
장시간 환기하지 않았을 때 미세먼지는 오르락내리락했지만, VOCs나 CO₂는 갈수록 상승했다. 지난 3일 공기청정기를 계속 가동하자 실내 미세먼지는 한 자릿수를 유지했다. 하지만 VOCs는 오후 6시 1099㎍으로 ‘약간 나쁨(701~1500㎍/㎥)’까지 상승했다. 지난달 31일 자정 무렵 VOCs는 ‘나쁨’ 범주인 1603㎍까지 상승했다.
사람이 내쉬는 숨으로 증가하는 CO₂는 TV를 보는 등 거실에 사람들이 많이 활동할 때 증가했다가 심야나 이른 새벽에는 감소했다. 지난 2일 오후 9시 30분 CO₂가 1035ppm, 11월 3일 8시 50분 1093ppm까지 올라갔다. 1000~1500ppm이면 ‘약간 나쁨’ 수준이다. 같은 날 자정즈음에는 621~700ppm 정도로 ‘좋음’과 ‘보통(601~1000ppm)’ 수준을 보였다. 거실에 사람이 없는 새벽 시간 동안 실외 공기와 순환이 이뤄졌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환기를 시키면 CO₂와 VOCs 수치는 확실히 내려갔다. 11월 3일 오후 17시부터 환기를 했더니 1853㎍이던 VOCs는 988㎍으로, CO₂는 926ppm에서 771ppm으로 줄었다. 11월 4일 오후 4시에도 825ppm이던 CO₂가 40분 환기 후에 501ppm으로 줄었다.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은 "CO₂는 일의 비능률과 졸음에 영향을 많이 미치고 농도가 높으면 몸에 해롭다"며 " VOCs도 유해물질에 속해 환기를 통해 농도를 낮춰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
미세먼지 심할 때 환기하면? PM10 167㎍
지난달 31일 오후 7시 도시대기 측정망에서 측정한 경기도 고양시의 미세먼지 농도는 PM10 기준 190㎍, PM2.5는 41㎍이었다. 황사가 심해 PM2.5에 비해 PM10이 매우 높은 날이었다. 당일 오후 7시 30분부터 20분 동안 환기한 결과 24㎍이던 실내 미세먼지 농도가 167㎍으로 더 높아졌다. PM10이 150㎍ 이상이면 '매우나쁨' 등급 수준이다. PM2.5 초미세먼지도 13㎍에서 92㎍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CO₂농도는 710ppm에서 536ppm으로, VOCs는 405㎍에서 2㎍으로 낮아졌다.
환기를 마친 후에는 창문을 닫고 공기청정기를 가동했다.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환기 직후 각각 167㎍, 92㎍였으나 20분 가동 후에는 각각 54㎍과 34㎍으로 낮아졌다. 오후 11시 공기청정기 가동을 중단할 때는 각각 15㎍과 12㎍까지 낮아졌다. 미세먼지가 많을 때는 환기 후에 미세먼지가 같이 들어올 수 있으므로 그때 공기청정기를 활용하면 도움이 된다.
같은 시간 환기 이후 줄었던 VOCs는 6㎍에서 20분 후 469㎍으로 증가했고 11시에는 1902㎍까지 늘었다. CO₂는 533ppm에서 615ppm으로, 11시에는 775ppm으로 증가했다. 공기청정기는 미세먼지 줄이는 데만 효과가 있었다.
김윤신 세계맑은공기연맹 대표(건국대 석좌교수)는 “공기청정기는 미세먼지를 10~30% 낮추는 효과가 있지만 CO₂나 VOCs 같은 가스 상태의 물질은 제거할 수 없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은 날이라도 하루에 한두 번 창문을 열고 환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공기청정기는 주기적으로 필터를 교체하거나 청소를 하는 등 제대로 사용해야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는 “공기청정기도 주어진 환경에서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미세먼지 농도를 낮추고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미세먼지의 주요 정책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