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 썼지만 흙탕물..'내린천 비극' 범인은 인삼·감자밭
경작지 늘면서 토사 흘러내리는 양 증가
주민들, 관광객 감소와 농업 피해 호소
“1급수에서만 사는 열목어로 가득해 ‘물 반 고기 반’이란 말을 듣던 내린천인데…. 하천이 흙탕물로 변하자 열목어도 사라졌습니다.” 지난 15일 오후 강원도 인제군 상동리 인제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인북천ㆍ내린천 살리기 포럼’에 참가한 이은수(68) 전 인제 기린면 미산 2리 이장이 흙탕물 피해를 호소하며 한 말이다.
이씨는 “내린천으로 놀러 온 관광객들이 흙탕물이 흐르는 것을 보며 해결할 방법이 없느냐고 되묻는 상황”이라며 “흙탕물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흙탕물을 여과해 방류할 수 있는 기술 도입 등을 검토해 달라”고 말했다.
1급 청정수가 흐르던 인제군 인북천과 내린천이 흙탕물로 변하면서 주민들의 속앓이를 하고 있다. 래프팅 등 레저스포츠로 유명한 이곳 하천의 생태계 파괴는 관광객 감소와 농작물 피해 등 주민 생활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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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작지 규모 대형화 하천으로 흘러내리는 흙 증가
인제군은 상류 고랭지 작물 경작지 규모가 커지면서 재배지에서 흘러내리는 흙이 인북천과 내린천을 흙탕물로 변하게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기준 인북천 유역 양구 해안면 만대지구의 경작지는 3404곳으로 1680㏊에 달하고, 내린천 유역 자운지구의 경작지는 3748곳, 1142㏊다. 경사도가 10∼20도로 가파른 이들 경작지에선 주로 인삼, 감자, 무, 배추 등 고랭지 작물이 재배되고 있다.
강원도와 한국수환경관리연구소가 공개한 ‘2018 소양호 상류 비점오염원 관리대책 시행계획’에 따르면 양구군 해안면 인삼 경작지의 토사유실 가능 추정치는 29만7480t에 달했다. 이어 감자가 23만8307t으로 뒤를 이었다. 지난해 양구군 해안면 작물별 재배지 면적은 인삼이 4.73㏊로 가장 많았고, 감자가 2.79㏊, 벼 1.44㏊, 과수 1.42㏊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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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지 계단식 평탄화 등 대책 마련 절실
이날 포럼에 발제자로 나선 한국수환경관리연구소 장창원 박사는 “농산물 생산을 위한 지속적인 객토, 손ㆍ망실된 저감시설 보수의 어려움 등으로 자운지구 흙탕물이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며 “자운지구 경작자 전체의 동의 후 대규모 경지정리 사업을 통해 기존 농경지를 계단식으로 평탄화하고, 농경지 수로망과 침사지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비사업으로 축소된 농경지 면적이 10% 이상이면 일부를 보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원연구원 김문숙 박사는 “그동안 저감 사업은 완충 식생, 사면 보호, 우회수로, 대형 침사지, 유속 저감, 옹벽, 돌망태였다”며 “그러나 저감시설 기능 유지와 관리 체계 미흡, 농업 기계화에 따른 밭뙈기 면적의 대형화 등으로 저감 사업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고 주장했다. 포럼 참석자들은 상류 고랭지 재배지의 경우 경사도와 넓은 면적 등으로 저감시설 설치만으로는 흙탕물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2015년 10월 인북천 유역 만대지구와 가아지구, 내린천 유역 자운지구를 비점오염원 관리지역으로 재지정했다. 2017년~2026년까지 발생원 관리, 유출경로 관리대책, 비구조적 대책 등의 관리방향을 설정해 추진 중이다. 또 토사 유출의 주된 오염원인 고랭지 밭의 무분별한 객토로 매년 고랭지 밭의 지형정보가 변경됨에 따라 경작행위 관리 및 관리지역 모니터링 등 체계적인 오염원관리를 위해 ‘고랭지밭 지리정보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인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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