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문용이 수많은 '도시방랑자'에게 건네는 위로

윤태호 입력 2019. 11. 7.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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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피아니스트 문용, 지난 9월 세 번째 앨범 < #도시파라솔 >

[오마이뉴스 윤태호 기자]

피아니스트 문용을 만났다. 지난 9월 소셜 펀딩으로 빛을 본 앨범 < #도시파라솔 > LP를 품에 안은 그는 설레는 표정으로 수기 넘버링을 하고 있었다. 스트리밍 시대에 완성도 높은 피지컬 앨범을 만들겠다며 느리고 불편한 과정까지 감수한 결과물이다.

LP가 막 발매된 지금이 그와 이야기를 나눌 적기라고 판단한 기자는 한 달 전부터 준비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기자가 잘못 알고 있거나 조금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을 던져도 당황하지 않은 그는 특유의 상냥한 톤으로 깊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새 앨범 엘피를 들고 포즈를 취한 피아니스트 문용
ⓒ 문용
   
Part 1. 도시파라솔 엘피 제작기
 
- 드디어 앨범이 나왔어요. 가을 초입에 만나 이야기 나누게 될 줄 알았는데 어느새 겨울을 바라보는 11월이네요.
"송구스럽습니다. (웃음) 엘피 제작이 변수가 많아 시간이 더 걸렸어요."
 
- 엘피가 나오기까지 과정이 꽤 험난했죠.
"작곡과 연주는 물론 디자인, 업체 접촉까지 모든 과정을 직접 맡아서 누굴 탓하긴 어려워요. 스스로 짊어진 고생이죠. 그래도 사람들을 직접 상대하니까 중간 과정 없이 제가 원할 때 빠른 답변을 들어서 좋았습니다. 사실, 녹음할 때 의도했던 커팅이 한 번에 너무 잘 나와 순조롭겠다고 봤는데, 늘 변수가 있네요. 지난 앨범처럼 커팅을 세 번이나 한 것은 아닌데 마더 마스터에서 발견한 노이즈를 두고 제조 공장과의 기 싸움이 있었습니다. 줄곧 마음을 졸였는데 최종적으로 받은 엘피에서 문제가 해결된 것을 확인하니 마음이 놓이더군요."
 
- 재미있는 일은 없었나요?
"레커 마스터에 '#도시파라솔' 한글 각인을 요청했는데 담당자가 알파벳이 아니라 알아보기 어려워 사고가 날 수 있다며 거절했습니다. 그렇지만 한글이 서툰 사람이 남기는 한글이 의미있으니 그려도 좋다고 설득했죠. 그러자 커팅 엔지니어 조(Joe)가 오히려 신나서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미국인이 난생처음 그려본 한글 글씨체가 너무 귀여워서 타투로 남길 걸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습니다."
 
- 지난 9월 음원이 나왔는데 그때와는 기분이 전혀 다를 것 같아요. 오래 구상한 고심작이잖아요. 턴테이블에 처음 LP를 걸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LP를 처음 받았을 때 인쇄물이 기대보다 잘 나와서 만족스러웠습니다. 원화를 그려주신 오석원 작가님도 직접 보시고 무척 기뻐하셨어요. 하지만 앨범 전체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초조하고 불안했어요. 5년간 제조사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데, 최종 결과물을 받아도 결함이 있거나 대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전 직원이 수습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유사한 상황이 생기지 않길 바랐어요."
 
- 음원과 LP의 차이를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디지털 음원은 작업 중에 모니터링한 게 곧 결과물로 이어져 믿음직합니다. 반면 변수가 적어 감흥이 덜해요. 반면에 LP는 제한과 변수가 많은데, 지지고 볶는 과정 때문인지 최종 결과물에 대한 애정과 감흥이 남다릅니다. 특히 이번 앨범은 A 사이드, B 사이드가 각각 18분 대로 거의 같아서 아주 마음에 들어요."
 
- 앨범 커버에 '환경 개선을 위해 수익금 일부를 Carbonfund.org에 기부하여 50그루의 나무를 심었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어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예전에 'CD, 레코드 혹은 MP3 중 어떤 것이 더 지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PVC로 제조하는 바이닐 레코드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내가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를 만들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 그런 생각 때문에 완성도에 더 집착하신 게 아닐까요? (웃음)
"그런 것 같아요. 아무튼 LP 공장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상쇄하기 위해 수익금 일부를 어느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 단체에 연락해보니 탄소 발자국을 상쇄하는 법은 계산이 복잡하다며 간단히 나무를 심는 방법을 추천하더라고요. 그래서 펀딩 금액 일부를 기부해 약간의 나무를 심었어요."
 
 문용의 세 번째 앨범 < #도시파라솔 > 커버
ⓒ 문용
 
Part 2. 새 앨범과 마을 라디오 이야기
 
- 새 앨범의 톱 트랙 '도시방랑자'를 계속 반복해서 들었어요. 불안한 모습으로 지금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 되묻는 현대인의 고독한 삶이 그려졌습니다.
"보통은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던가요? (웃음) 앞서 말씀드렸듯이 잠시 음악가의 꿈을 미루고 출퇴근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내가 갈 길을 매일 고민하면서 내일이면 또 같은 곳을 향하는 게 처량하다고 생각했어요. 서서히 데워지는 물에 담긴 개구리처럼 '암살' 당하는 것은 아닐까 두렵기도 했고요. 그래서 저는 A 사이드 라벨에 있는 '퇴사자'의 모습으로 뛰쳐나왔는데, 세상에는 처절한 고민과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원점으로 돌아 가버리는 도시방랑자가 꽤 많겠죠. 이 곡이 그분들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 '암살'의 아코디언 사운드가 피아노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만드셨나요.
"대략 8년 전에 보컬 곡을 염두에 두고 우쿨렐레를 퉁기다 쓴 곡이에요. 보사노바를 생각했는데 멜로디가 조금 무서운 거 같아 잘 어울릴 법한 탱고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발음 원리를 알기 위해 잠시 유아용 아코디언을 가지고 놀았어요. 괜찮으면 실제 녹음에 써보려 했는데 튜닝이 정교하지 않은 데다 금방 고장이 나버렸어요.

전화위복인지 '피아노 앨범이니 되도록 피아노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사운드를 가공해봤는데, 그럴듯한 사운드가 나와서 사용하게 됐어요. 때마침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자극한 실험정신도 한몫했죠. 영화에서 퀸이 'Seven Seas of Rhye'를 녹음할 때 괴상한 시도를 많이 하는데, 그 장면이 인상 깊었거든요."
 
- 몇 년 전부터 거주 중인 해방촌에 애정을 담아 '해방촌의 별'이라는 곡을 만들었죠.
"아름다운 마을에 사는 '별보다 빛나는 사람들'에 관한 찬사입니다."
 
- 이 곡을 들으면서 밤하늘을 봐야 할 거 같았는데, 하늘의 별이 아니었네요.(웃음)
"서울에서는 천문대를 찾지 않는 이상 별 보는 게 어렵지 않을까요? (웃음) 해 질 무렵 N서울타워나 소월길에 올라가면 하늘에는 별이 잘 보이지 않는데 그 아래 더 밝은 조명들이 내려다보여요. 문득 밝게 빛나는 조명보다 사람들이 더 빛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 이슈로 잠시 얼룩지기도 했지만, 이곳을 아끼고 지키는 분들 덕에 해방촌의 매력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 마을 미디어 용산 FM에서 '피아니스트 문용의 다정한 영화음악'을 진행하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죠?
"원래 국민 TV 라디오 '사운드오브뮤직'의 코너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프로그램이 종방됐어요. 아쉬운 마음이 남아있었는데 김춘광 님의 마을 라디오 특강을 듣고 관심이 생겼어요. 이후 황혜원 국장님의 끊임없는 러브콜 끝에 망설였던 용산 FM '해방촌이다'에 출연했고, 그 일을 계기로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어요."
 
- 최근에 공개방송하신 걸 봤는데 재밌더군요.
"재미있게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어떤 게 재밌었는지 궁금해지네요. (웃음)"
 
- 함께 진행하는 만게님과의 호흡이요. (웃음) 재주가 참 많으신 거 같아요.
"대단한 만게님이죠. 하하. 그분이 음악은 못 해서 다행입니다. 선곡과 주제 선정 같은 건 주로 제가 하고 방송 분위기는 만게님이 만들어요. 자연스럽고 무난한 진행을 선호하는 저와 달리 무리수를 잘 두는 편이라 재미가 있죠. 얼마 전 한글날 기념으로 '순우리말 이름짓기' 이벤트를 했는데 저도 정말 재미있게 지켜봤어요."
 
- 오랜 팬이라면 문용의 화려한 연주를 기억하고 있을 거예요. 저는 밴드에서 활동하셨을 때보다 더 과격하고 실험적인 앨범 하나 내실 줄 알았어요.(웃음)
"화려했나요? (웃음) 마음 한편으로는 과격하고 실험적이고 싶어요. 구상 중인 프로젝트는 많은데, 어느 것을 시의적절하게 꺼낼지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같은 스타일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니 늦기 전에 시도해 봐야죠. 취향은 점차 화려함보다는 차분함으로, 포르티시모보다는 피아니시모로 기울어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장담은 못 하겠습니다."
 
- '잘 부탁합니다'라는 곡은 기교보다는 주법에 더 높은 비중을 두고 다양한 사운드를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데요.
"주선율 멜로디를 어떻게 받쳐내고 반주해야 할지 고민했어요. 최대한 건반을 살살 눌러 톤이 날카롭지 않도록 한 게 주법의 특징입니다. 가끔 건반을 살살 건드리기만 해도 애프터 터치 없이 해머가 장타를 날려버리는 세팅의 피아노가 있는데, 그런 피아노는 살살 연주하려 해도 톤이 날카로워서 저에겐 아주 곤욕입니다.

곡 제목은 한·중·일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언어문화라는 생각이 들어 붙여봤는데요, 세 나라가 어떻게 굴러가는 사회인지 살짝 엿볼 수 있는 말이라 재밌어요. 기교에 관한 질문을 받으니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네요. 앨범 제작비 부담을 덜어보려고 상금이 걸린 오디션에 참가했는데, 떨어졌어요. (웃음) 현장에서는 칭찬만 들은 터라 떨어진 이유가 너무 궁금해서 피드백을 받았는데, 연주력 점수가 낮았던 모양입니다. (웃음)"
 
- 하지만 지금처럼 연주하는 게 더 어렵잖아요.
"기교를 뽐내지 않고 지금처럼 연주하는 게 결코 쉽거나 편하지 않죠. 그건 확실해요."
 
- '도시파라솔'도 화려함과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앨범 타이틀인 만큼 가벼운 말장난으로 남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을 썼어요. 그래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말장난으로 '파도'를 등장 시켜 '도시파라솔'과의 대비 효과를 노렸습니다. (웃음) 상당히 정적인 곡이라 사람들이 이런 음악을 들을까 궁금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놀랐습니다. 역시 사람들 마음을 읽기란 어렵네요. 이 곡에서는 피아노 현을 두들겨 팀파니 효과를 냈는데 무척 마음에 들어 '태움: 줄을 위한 볼레로' 싱글에 비슷한 방식으로 팀파니 사운드를 넣었습니다."
 
- 앨범 작업 전에 세운 룰 같은 게 있었나요.
"곡이 지나치게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걸 경계해서 적절한 제한을 두는 걸 선호해요. 이번 앨범에서는 '리듬 있는 음악 만들기', '다양한 사운드 도입', '피아노를 우선 활용하기' 같은 룰을 세웠습니다. '암살'의 아코디언 사운드도 그런 룰을 바탕으로 나왔어요."
 
- 조금 우스운 이야기 같은데 저는 순수한 피아노 앨범이라는 게 아주 마음에 들었어요. 한두 곡에는 게스트 보컬이나 일렉트릭 기타, 댄스 비트 같은 걸 넣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 시도가 나쁜 건 아닌데 개인적으로 편하게 곁에 두고 들을 연주 앨범을 원했거든요.
"요새는 그런가요? 제가 트렌드에 어둡고 얼리아답터는 커녕 뭐 하나를 사면 다 떨어질 때까지 쓰는 사람이라 미래 이야기 같아요. 피아노 앨범이니 당연히 피아노로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이렇게 말하면 왠지 촌스러워 보일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렇다면 1집에 보컬 트랙이 있는 건 비밀로 해야겠네요. (웃음)"
 
- 사실 제가 아직 1집을 못 들어봐서... (웃음) 활동 기간과 비교해 발표한 음악이 적다고 생각하는데 다음 앨범은 조금 덜 기다려도 되겠죠?
"두 번째 앨범을 내기까지 8년, 세 번째 앨범은 4년이 걸렸으니 다음 앨범은 2년으로 줄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다작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왕성하게 창작하는 분들이 부러운데, 적더라도 유의미한 작품을 내는 걸 중시하는 성향이 쉽게 바뀌지는 않겠죠. 그래도 2년까지는 어떻게 줄여 보겠습니다."

Part 3.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톤 스튜디오에서 연주하는 문용
ⓒ HanGyeol Yi
 
- 지난 앨범들 이야기를 조금 더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1집 <소년의 꿈>은 밴드 활동과 결별하는 굿바이 앨범 성격이 강했어요. 마지막에 'Goodbye'라는 곡을 수록했는데, 새 앨범에 '안녕'이라는 제목으로 새롭게 편곡해 넣었어요. 헤어짐과 만남을 동시에 뜻하는 말인데 다시 만났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죠. 마지막 곡이니 첫 곡으로 돌아가 다시 만나도 좋겠네요. (웃음) 2집 < UND >는 머리가 둘이 될 정도로 직장인과 음악인 사이에서 고민한 흔적을 담았어요. 생업과 병행하다 보니 발표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이렇게 돌아보니 제가 12년이나 활동한 중견 피아니스트 같네요.(웃음)"
 
- 레이지본 시절도 빼놓을 수 없죠. 인기가 대단했잖아요.
"저 같은 사람이 레이지본 명성에 묻어 한국 인디 음악사 한 페이지에 슬쩍 숟가락을 얹은 듯해 죄송하네요. 마치 '펑크 삼국지'처럼 크라잉넛, 노브레인, 레이지본이 있었죠. 세 밴드를 혼동하는 분들 덕에 저처럼 덜 유명한 사람은 덕을 보기도 했어요. (웃음)"
 
- 아쉽게도 밴드는 오래 가지 못했어요.
"밴드가 깨졌을 때 시간을 버리고 헛수고했다는 생각이 들어 정신적 고통이 컸어요. 그때 어머니께서 제가 또래 친구들보다 다양한 경험을 했다는 걸 일깨워주셨어요. 2002년 월드컵 당시 시청 앞 광장 무대에 섰다는 건 영광이죠.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오프스프링 내한 공연, 서태지 공연 오프닝 무대에 섰던 것도요. 좋은 추억으로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 재결성한 레이지본에는 합류하지 않으셨죠.
"2011년에 제안을 받았는데, 음악을 잠시 접고 미래를 위한 노동을 막 시작하던 때라 무척 난처했어요. 추억으로 간직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려 하니 두렵기도 하고, 시기도 적절하지 않아 거절했습니다. 이미 앞으로 나아갈 길의 가닥을 잡은 것도 컸죠."
 
- 일찍이 문용의 연주력을 알아본 게 퀸 트리뷰트 밴드인 영부인 밴드 같은데요.
"퀸 팬클럽에서 활동하던 중학생 때 저는 학교를 대표하는 피아노 반주자였어요. 영부인밴드 결성 초기에 연습실을 놀러 갔는데, 그때 'Seven Seas of Rhye'를 연주했어요. 그 모습을 본 밴드 창립 멤버 정관훈 님이 멤버로 영입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는 이야기를 해줬어요."
 
- 몇 년 전 영부인밴드에 다시 합류해 지금도 함께 공연하고 있는데, 퀸을 연주하는 건 여전히 재미있나요?
"공백기를 갖고 돌아오니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고 새로이 해석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더 재밌습니다. 경험치를 쌓고 돌아왔더니 어떻게든 그걸 써먹고 싶어져서 점차 연주의 밀도를 높여가고 있어요."
 
-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뜨거웠잖아요. 인기에 편승해 '퀸 피아노 연주 앨범' 하나 내주길 내심 바랐는데, 안 내시더라고요. (웃음) 실제로 이런 제안을 받은 적이 있죠?
"약삭빠르게 그런 걸 해야 주목도 받고 돈도 벌 텐데, 그럴 생각이 없는 저를 보니 피식 웃음부터 나왔어요. 때맞춰 책을 내고 퀸 테마 술집을 열어 재미를 보는 사람도 있었는데 말이죠. 제가 영부인밴드 공연에서 종종 피아노 솔로를 연주하기 때문에 내심 뭔가를 기대하는 분위기 같은 게 있긴 해요. 주로 의상 환복이나 돌발상황에 시간을 벌기 위해 연주하는 건데. (웃음) 퀸은 뭘 어떻게 해도 욕먹는 종목이라 내공이 더 쌓일 때까지 퀸 피아노 연주 앨범은 묵혀둘 생각입니다. 원곡의 밀도에 미치지 못하면 스스로 만족하지 못할 거 같기도 해요. 남들이 잘 도전하지 않는 곡을 해내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 히트곡만 연주하는 게 아니라면 더 특별하겠네요. 프로젝트가 꼭 성사되면 좋겠어요.
"새 앨범을 전시하고 있는 춘천 상상마당에 엊그제 방문했는데, 마침 현장에 피아노가 있어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연주했어요. 갑자기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새삼 퀸의 인기를 실감했어요. 묵혀두더라도 이 열기가 식기 전에 꼭 도전해보고 싶어졌어요."
 
- 10월 중순에 노들섬에서 영부인밴드 공연이 열렸어요. 그날 부친상을 겪었는데도 공연을 하셨죠.
"간단히 말씀드리면, 계약서를 쓰고 선금까지 받았으니 무대에 안 오르면 계약 위반이라 공연을 했습니다. 제발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길 바랐는데, 기어이 생기고 말았죠. 상주인데도 아버지가 가장 싫어하는 일을 그 시점에 하게 되어 끝까지 제대로 불효한 셈입니다. 부친 상중에 공연했다고 하면 손가락질하실 분도 있을 거라고 봅니다만, 저의 선택이었으니 제가 감당해야겠죠."

- 많이 힘들었겠어요.
"복잡한 감정으로 공연을 했는데 그때는 무사히 공연을 마치는 게 제 기준에서 프로페셔널 하다고 생각했어요. 만약 그때 무대에 안 올랐다면 여러모로 밴드에 불이익을 안겼을 거고요. 다행히 가족장으로 치러 찾아오는 손님이 많지 않았고, 가족들도 사정을 듣고 다녀오라며 이해해주셨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 이번에도 소셜 펀딩이 성공해서 333개의 LP를 제작하게 됐어요. 목표액을 달성했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말았지'라는 가사로 대신하겠습니다. (웃음) 솔직히 앨범을 하나 더 낼 상황은 아니었어요. 조바심은 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포기하기 직전이었죠. 그런데 동창 하나가 찾아와 적은 금액이지만 저를 믿고 매달 후원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해줬어요. 친구를 보낸 뒤 눈물이 났고, 응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여기서 멈추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도전했습니다. 저를 믿고 후원해주신 모두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네요. 용기를 준 친구는 말할 것도 없고요."
 
- 곧 연말인데 공연 계획이 있으신가요?
"앨범 발매 콘서트를 준비 중입니다. 함께 라디오를 진행하는 만게님과 공개방송처럼 해보려고요. 앨범을 녹음한 톤 스튜디오에서 12월 14일에 할 예정인데, 한국의 수많은 명반이 탄생한 곳이니 많이 와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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